[ 만 가지 역사 속 인사이야기, 人事萬史 ] 삼국지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오래 읽은 책 중 하나입니다. 서기 184년 황건적의 난을 시작으로 280년 진나라의 삼국통일까지 약 100여 년 간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삼국지는 나관중에 의해 소설로 재탄생하며 지금까지 그 인기를 잇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게임이나 만화, 영화 등 다양한 매체로 소비되고 있습니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 조조, 조운, 여포, 원소, 하후돈, 사마의, 손책, 주유 등 각자 매력을 가진 사람이 약 천여 명도 넘게 나옵니다. 그 중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삼국지 인물은 누굴까요? 각자 개인차가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부터 제갈량을 가장 선호하곤 하였습니다. 똑똑한 천재라서 좋아한 걸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갈량을 좋아하는 이유는 똑똑한 재능, 훤칠한 외모에 더해 신선과 같은 신비로운 모습, 그리고 절대적인 충성심 때문일 겁니다. 제갈량은 자신이 모시던 유비가 죽고나서도 끝까지 충성심을 다합니다. 그의 이런 모습은 그가 쓴 「후출사표」에 나오는 '국궁진췌 사이후이(鞠躬盡瘁 死而後已, 몸을 굽혀 힘써 일하고 죽은 뒤에야 그만둔다.)'라는 문장으로 요약되곤 합니다. 제갈량이 유비에게 몸을 의탁했을 때 유비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47살의 리더인 유비는 변변한 땅 없이 형주의 유표에게 신야라는 작은 성을 빌려 주둔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휘하에는 관우, 장비, 조운과 같은 이름난 장수들이 있긴 했지만 병사라곤 수천 명이 고작이었습니다. 반면 유비와 적대적인 세력이었던 조조는 당시 중국 13개 주 가운데 9개를 가지고 있었고 병사는 수십 만, 아니 백 만에 육박했습니다. 조조를 제외한 군주들도 모두 1개의 주 정도는 가지고 있었지요. 지금으로 예를 들면, 20대에 창업한 이후 47살이 되도록 실패만 경험한 스타트업 대표가 하필 우리나라 제일의 대기업 그룹과 척을 진 상황입니다. 대표가 창업을 할 때마다 대기업에서는 갖은 방법을 써 폐업으로 몰고 갔지요. 한가지 위안이라면 아무리 실패를 해도 임직원들이 대표 곁을 떠나지 않는 모습이랄까요? 대출을 받고 마이너스통장을 만들더라도, 오늘 서울에 살다 내일 부산으로, 모레 광주로 가더라도 이 직원들이 끝까지 같이 하고 있는 스타트업입니다. 물론 매출은 없습니다. 한 가지 눈치채셨겠지만 유비는 마성의 매력을 지녔습니다. 그런 그가 세 차례나 제갈량이 사는 초가집에 찾아갔습니다. 당시 제갈량은 27살로 형주 유력 호족들과 혼맥으로 연결되어있긴 하였으나 어쨌든 애송이입니다. 이름은 그런대로 널리 알려져있었지만 주변에는 그저 자뻑하기 좋아하는 괴짜청년 정도로 알려져 있었지요. 그런데 유비는 이런 제갈량을 세 번이나 찾아갑니다. 아무리 스타트업이라지만 그래도 대표입니다. 더군다나 유비는 당시에 전국적으로 명성도 꽤 있는 상태였습니다. 특히 대기업 총수인 조조의 안티테제로 부상하면서 조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곧 유비의 팬이 되어버리곤 했습니다. 제갈량은 아마 고민했을 것입니다. 내 몸을 맡겨도 될만큼 괜찮을까? 기반도 없는 사람인데 내가 인생을 걸어도 될까? 그런데 웃음짓는 유비 뒤로 관우 전무와 장비 상무가 험상궂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제갈량은 기반이 없다면 자신이 만들면 되고, 기회가 없으면 자신이 찾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제갈량은 유비의 손을 잡고 역사에 이름을 내보입니다. 제갈량은 천하삼분지계를 내보이며 유비를 천하의 중심에 세울 수 있다는 대전략을 발표합니다. 제갈량의 PT를 본 유비는 감동하며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여러분이 회사의 대표라면, 아니 혹은 구성원이라면 이제 막 들어온 27살 짜리의 전략에 얼마나 공감하실 수 있을까요? 설령 그것이 듣기 좋고 정말 비전이 있는 전략이라 해도 얼마나 공감하실 수 있으실까요? 아마 저라면 힘들 것 같습니다. 어디서 주워들은거 가지고 버릇없이 군다고 생각할 거에요. 관우와 장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둘은 중국 전역에서 싸움 잘하기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나이도 40대 후반에 접어들었고 나름대로 경험도 많이 쌓았죠. 그런데 애송이의 말이 들릴 리 없습니다. 관우와 장비는 유비에게 항의합니다. 불만 가득한 관우, 장비에게 유비는 '선생과 내가 만난 것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이오. 그대들은 아무 소리 마시오.' 라며 딱 잘라 말합니다. 고사성어 수어지교의 유래입니다. 사실 인사에 몸담고 계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제갈량과 같이 뛰어난 인재는 굉장히 많습니다. 스펙도 좋고 학벌도 좋고 대화를 나눠보면 아, 정말 천재인가? 싶은 신입사원도 많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제갈량이 되진 못합니다. 그들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마음 가짐이 잘못 되어서는 아닙니다. 바로 유비가 보여준 '믿음'을 똑같이 보여주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굉장히 고차원의 개념이며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리더가 아니면 주는게 의미있을까? 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재는 자신에게 주는 기대와 믿음만큼 일을 합니다. 만약 제갈량이 똑똑하다고 해서 유비가 그에게 일만 시켰다면 제갈량은 기회를 틈타 도망갔을 지도 모릅니다. 혹은 믿음을 주는 척 하면서 제갈량이 제안한 것과 다르게 행동하거나 그를 기만하였어도 역시 도망갔을 것입니다. 젊은 직원들에 대한 소통의 문제로 고민을 겪는 HR리더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어쩌면 그들은 표현을 하지 못할 뿐, 제갈량같은 팀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석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믿음을 주는 건 어떨까요? 그 믿음이 생각지도 못한 행운으로 우리 회사에 도움을 줄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