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말정산] 앞으로 올 사랑, 정혜윤
<앞으로 올 사랑>에서 정혜윤이 말하는 '사랑'은 결국 에로스적인 사랑만은 아닐 것 같다. 모두가 거리를 두고 타인을 경계하고 조심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어떤 사랑을 말할 것인가. 사람만이 아니라 사회를, 세상을 향한 어떤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며 그것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정혜윤의 문장은 아주 술술 부드럽게 읽히는 소위 '쉬운' 문장이라기보다 문장 내 곳곳에 쓰인 단어들의 의미를 음미하고 이 자리에 어떻게 혹은 왜 이러한 서술을 가져다 썼을까 같은, 읽고 난 뒤의 생각이 읽을 때의 과정만큼이나 중요해지는. 그런 문장인 것 같다.
서로에게 상처 낸 이들이 자신의 마음에 화상을 입으면서까지 다른 사람의 마음이 되어보는 영화. "가면서 결정하자"라는 말은 내 인생의 대사가 되었다.
정혜윤의 문장들을 읽으면서 '좋은 이야기'를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더 직접적으로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온라인에서 두드러지는 이야기들은 많은 경우 그렇지 않은 쪽이어서. 암묵적이고 간접적이고 은근하고 표 나지 않는 그런 것들 말고. '뚜렷한 맥락의 직접 발화'가 줄 수 있는 종류의 힘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에게 혼란을 주는 복잡하고 애매모호한 단어들이 있다. 정체성, 사랑, 행복, 자유. 이 단어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내가 너를 필요로 한다는 것. 나 혼자서는 아예 성립조차 불가능하다는 것. 이 모든 게 우리가 맺는 '관계'의 문제라는 것. 그리고 코로나 시대는 그 관계 안에 우리가 거의 생각하지 않고 살았던 박쥐나 야생동물, 자연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려준 셈이다." (21쪽)
행복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놀라운 우여곡절 끝에 정직한 통로를 거쳐서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그 정직한 통로라는 말이 얼마나 심오한 것인지 마음으로 알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길을 잃으면 메모장을 펼쳐보겠다. 메모를 하는 우리 마음은 집으로 돌아가려고 조약돌을 뿌리는 헨젤과 그레텔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달빛에 비친 조약돌은 우리를 가야 할 곳으로 인도할 것이다.
"천지 사방에서 육체의 온도를 재고 있을 때 나는 다른 온도, 우리의 몸을 몸 이상으로 만들어주는 영혼의 온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영혼의 온도는 몇 도가 적합할까? 영혼이 섭씨 몇 도일 때 인간은 건강하게 서로 지키고 살리고 사랑하면서 살 수 있을까?" (22쪽)
"문학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게' 도와준다. 그 연쇄작용으로 우리는 삶도 더 잘 '읽어내게' 된다. 우리는 늘 상황을 잘 읽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순간을 살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의미는 얼마 뒤에야 따라온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그러나 모든 행복한 이야기에는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이 있고 모든 불행한 이야기는 잘못 보는 데서 시작된다." (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