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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9 짙은 하늘빛 블라인드가 서서히 내려갈 무렵, 책상 위에 펼쳐진 노트를 덮어두고 전원 버튼을 눌렀습니다. 뒤돌아보지 않은 채 말이지요. 허연 입김이 눈에 차오르는 차가운 퇴근길 연약한 눈송이들이 손잡으며 양 어깨에 잔잔히 내려앉았어요. 이겨내야 하는 부담을 혹은 산더미처럼 쌓인 짐을 쓸어내리듯 말이에요. 무거운 마음 조금이나마 슥슥 털어내고 열차문에 기대어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어요. 투명한 유리창 너머엔 깜깜한 어둠뿐이었지만, 저 멀리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서있는 가로등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또 흐르는 강물은 가로등 불빛을 머금은 윤슬로 수놓아져 있었지요. 작은 바퀴를 달고 쉴 새 없이 달리는 열차 안에서 까슬한 마음을 사포질 하듯 어르고 달래어 나와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습니다. 보다 먼저 올라가기 위해 가위바위보하며 뛰어가는 아이들, 구부정한 허리에 뒷짐 지어 조심스레 발 디디는 어르신, 손글씨 빼곡한 필기 노트를 넘기며 시선을 떼지 못하는 학생들이 보였어요. 그러다 문득, 모양은 다르지만 실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는 저 높은 곳이 어렴풋하지만 각자의 속도로 이 순간에 집중하니 정상에 닿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서두르거나 뒤를 보며 속상해하지 말아요. 또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꼭대기를 보며 다그치지 않기로 해요. 바라보는 곳이 있다면 나아가고 있고, 천천히 걸어 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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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유저님의 글 정말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섬세한 필체에서 담아낸 여정과 생각, 그리고 파악하는 시선.. 너무나 음미가 깊었습니다. 끊임없이 달려가야 하는 삶에서 잠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천천히 나아갈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그 과정이 여유로움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하루에서도 그런 여유로움을 잃지 않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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