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한 내용을 모두 잊지 않으려는 생각은 먹은 음식을 모두 체내에 간직하려는 것과 같다.” - 소펜하우스 < 책을 읽어도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이 있다. > 누군가는 단 몇 십 권의 책 만을 읽고도 이 책에서 이 구절을 읽었고, 저 책에서 저 구절을 읽었다는 이야기로 수만 권의 책을 읽은 양 과시하는 독서가임을 자랑하는데 언제나 책을 곁에 두고 읽었다 자부하는 나는 그 책을 읽은 것도 같은데, 저 책도 내가 읽기는 읽었기에 연결은 되는데 몇 페이지 어디에 어떤 글귀가 있었고,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명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전달자로서 신뢰성은 떨어지고 전달하려 했던 의미만 뭉게구름처럼 희미하게 기억날 뿐이다. 어떤 책은 일고 난 뒤에 그 벅찬 감동이 사라질 새라 가슴에 새기고 필사도 해보고 내용 확인도 해보지만 결국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이 희미해지고 내용이 기억나질 않는 순간의 반복과 반복이다. 그저 읽었다는 느낌과 어떤 감동을 느꼈는지 줄그었던 표시와 지금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메모들을 끄적였던 것을 보면 내가 이 책을 읽긴 읽었구나 할 뿐이다. 한때는 이런 기억력의 한계에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책을 읽는 방법이 잘못된 것일까? 혹은 내가 진정 책이 좋아 읽는 것이 아니고 활자 중독이라 행간의 의미는 이해 못하고 그저 글자만 줄줄 읽어나갔기 때문에 기억을 못하는 것이 아닐까? 의문에 의문을 더하며 책 읽기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진 적도 있었다. 누군가는 책 읽기란 하나의 과시적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고 읽은 내용을 써먹고 은근히 자랑하기도 하는, ‘나 이런 책도 읽었다.’, 이 정도로 책을 많이 읽는 독서가라 자랑하며 자신의 역량보다 더 높은 역량으로 평가되어지고 호응 받는 것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나름 책을 읽었다 생각하는 나는 읽고 또 읽어도 책을 향한 앎을 향한 간절한 목마름이 가시질 않고, 그저 좋아 읽는 책 읽기가 자랑하기 위한 책 읽기로 변질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한다. 가장 순수해야 할 독서 또한 하나의 스펙, 자랑거리로 치부되는 듯해서 속상하고 또 속상하다. < 책에 편견을 버리기 위한 독서모임 참여! > 책을 읽는다는 것이 그저 즐겁고 행복해 혼자 책을 생각하고 미소 짓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혼자만의 책 읽기에 흠뻑 젖어 있던 나는 어느 순간 혼자 하는 독서가 잘못하다 보면 편견과 선입견으로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내가 원하는 것만 보고, 똑 같은 책이라도 저자의 의도 혹은 다양한 관점과 상관없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그것에 대한 생각의 깊이는 있을 있으나, 다양하게 확장되기는 어렵겠구나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혼자 하는 독서의 문제점을 발견한 나는 밖으로 눈을 돌렸고 한 권의 책을 읽고 함께 그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한 구절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생각들을 공유하고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한 권의 책을 같이 읽고 생각을 나누는 모임들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읽으면서 나 자신과 내 삶을 연결지어 생각하고 질문하고 사색하는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새 내 마음속 어디엔가 저장되어 나 자신을 성장 발전시킨다. 어떤 책을 읽더라도 그 책과 예전에 내가 읽었던 어떤 책과 연결지어 보며 조금 더 깊은 생각을 하게 되거나 조금은 다른 생각들로 확정되기도 하는 지식의 넓이, 그것이 커지는 것이었다. 단지 한 단어를 들었을 뿐인데 그 단어 하나만으로 생각에 생각을 연결하여 확장해나가는 능력, 그것이 여태 내가 열심히 해왔던 책 읽기의 결과물이었다. 책이란 그렇게 무의식에 녹아들어 나를 만들었다. 내가 읽는 대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도 책을 읽으며 생각하는 힘을 키워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읽은 책의 내용을 잊어버려도 괜찮다. 좋은 생각을 담고 있는 책이라면 당신의 마음에 좋은 영향을 받았을 테니까. 좋은 지식을 다룬 책이라면 지식의 넓이가 확장되엇을 테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성장하고 있을 테니까. 한 권의 책을 읽었다는 결과도 중요하고 성취도 중요하지만 책을 통해 질문하고 생각하고 곱씹어 보는 과정이 있어야지만 성장할 수 있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성장하고 생각할 수 있는 힘은 키워진다. 내 가치관과 내 생각들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나란 사람은 내가 읽은 책들의 결과물이자 내가 읽은 책들의 산 증거였던 것이다. 내가 어떤 책을 읽었고, 몇 천 권, 몇 만 권을 읽었다 말하지 않아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알게 되는 깊이와 넓이, 그것이 나를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 책을 읽을 나만의 장소를 확보하라! > 가끔 퇴근 후 다른 약속이 없을 때 책을 들고 커피숍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차를 마시면서 흘러나오는 낮은 음악 소리를 벗 삼아 책을 읽고 올 때가 있다. 이런 날은 정말 행복하다. 사무실과 집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그것도 커피숍에서 책을 읽는 시간은 정말 멋진 시간이다. 다만 너무 시끄럽지 않은 커피숍을 찾는 편이다. 그래야 여유로움을 맘껏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린 창가의 달빛을 보며 책을 읽는 즐거움에 따질 빠질 때는 더없이 행복하다. 커피가 식어도 모를 정도로 책에 빠져드는 것이 좋아서 알람을 맞춰 놓지 않으면 안 된다. 집에 갈 시간을 맞춰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날, 읽던 책을 마저 다 끝까지 읽고 가게 되면 정말 날아갈 듯 기쁘다. 다 읽은 책이 책장을 메울 때 내 마음도 가득 채워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평일 저녁에는 커피숍에 가서 책을 읽는 것보다 곧바로 집으로 올 때가 많다. 집에 오면 직장인의 삶이 아니라, 아빠와 남편의 삶이 시작된다. 제2의 직장으로 출근한 것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내 마음의 위로를 얻거나 아이에게 필요한 책을 읽어주기도 했고 아이와 번갈아 소리내어 가며 함께 책을 읽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아이도 자라서 같이 책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서로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도 무척 기분 좋은 시간이다. 남편은 소파에 앉아서 아이와 나는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 책을 읽는데 이때 우리들의 행복 지수는 만점이다. 나는 이번 겨울 집에서 나만의 공간인 서재에서 책 읽기에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식탁에 앉아서 책을 읽었는데 주방 바닥이 따뜻하여 결국 바닥에 앉아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책을 읽으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배 깔고 엎드려 책을 읽다가 잠든 적도 있었다.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잠이 들고, 가끔 일찍 얼어 나서 아침 독서를 하기도 한다. 책을 읽는 시간과 장소를 정해 놓고 읽을 수도 있겠지만 바쁜 일상 중에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여 책을 일었을 때의 작은 즐거움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책을 읽을 틈이 언제, 어디에서 생길지 몰라 늘 여러 권의 책을 넣고 다니느라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니긴 하지만, 책이 있어 행복하고 자투리 시간에도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