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의 환경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ngagement의 사전적 정의는 ‘약혼’이다. 어원을 살펴보면, 중세시대 기사가 목숨 걸고 임하는 결투에서 도전의 표시로 땅에 던지는 담보(gage)처럼, 결혼을 담보(gage)로 서로의 관계 안쪽(en)으로 엮이는 것이므로 ‘약혼’을 Engagement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조직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일정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gage)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맺고(en) 정서적으로 몰입한 상태를 의미한다.
나는 9년간 컨설팅 업무를 하며 여러 기업과 4-5년 이상 연속성을 띄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장기간의 리더십 그룹코칭을 운영하며 다양한 유형의 조직원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종종 ‘저 사람은 정말 일에 몰입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이들을 발견하곤 했다. 몰입 수준이 높은 직원들은 확실히 ‘인지(사고)/감정/행동’ 측면에서 보통의 사람들과 두드러진 차이를 보여주는데, 공통적으로는 자신의 커리어와 조직의 성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 일을 잘하고자 하는 동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러한 관찰의 경험을 토대로 다소 애매하고 함축적이었던 ‘Engagement 몰입’의 개념을 나의 언어로 재정의 할 수 있었다.
“몰입(Engagement)이란 나에게 주어진 일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싶다는 강한 의지로, 자발적 동기에 의해 자신의 잠재력/시간/에너지를 최대로 발휘하는 상태이다”
많은 사람들이 매력적으로 느끼는 브랜드/서비스에는 자신만의 직업의식으로 일에 몰입하는 매력적인 사람들이 있고, 이들의 일에 대한 태도와 가치가 곧 브랜드/서비스의 철학과 정신으로 자연스럽게 이식된다. 이는 구성원들이 높은 몰입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문화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기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주요한 과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몰입’과 관련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학자들의 논문과 저서가 많이 존재하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이론과 외국 기업의 사례를 우리의 현실에 바로 적용하기에는 다소 이질감과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았기에, 9년 간 다양한 기업에서 보고 듣고 관찰한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원들의 ‘몰입’에 영향을 미치는 4가지 요소를 정리해보았다.
의미감/영향력 : 상사가 아닌, 최종 User를 위해 일한다
약 5년 이상 고몰입 기업과 일반적인 몰입도를 유지하는 기업에서 동시에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두 집단 간의 조직문화 차이점을 관찰할 수 있었다.
(물론 고몰입 조직이라고 해서, 그 집단에 소속된 직원들이 모두 '높은 몰입'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조직과 비교했을 때, 평균적으로 '높은 몰입'을 보이는 직원수가 '보통/낮은 몰입' 상태의 직원 수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몰입 조직과 보통의 조직 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차이점은 ‘일’, 그리고 ‘성과’에 대한 암묵적 믿음이었다.
고몰입 조직의 구성원들은 ‘일’을 할 때 최종 User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에 집중했기에 기획서나 보고서의 분량과 보고 방식이 매우 간결했고, 결과물의 초안을 검토할 때도 최종 User 관점에서 사고하고 피드백하는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다소 무리한 목표나 어려운 과제가 주어지는 경우에도 ‘최종 User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것에 동의가 이뤄지면 적극적으로 방법을 찾아 목표를 달성했다.
이와 반대로 일반적인 조직은 ‘일’을 할 때 상사를 어떻게 만족시킬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단적인 예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약 한 달 이상 보고서(계획안)를 ‘Version.20’까지 만들며, 임원의 선호에 맞게 목차/단어/표 등을 수정했던 경험이 떠오른다.
구성원들이 ‘성과’를 정의할 때도 전자의 경우 ‘최종 User가 인식하는 가치’ 일 것이고, 후자의 경우 ‘상사가 주는 성과평과 등급’ 일 것이다.
페이스북 조직문화에서 강조하는 “Focus on impact” 는 ‘최종 user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로 해석된다. 지극히 당연한 한 문장 같지만, 의외로 이 문장이 살아 숨 쉬는 기업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구성원들은 상사를 위해서가 아닌 최종 User(고객)를 위해서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때, 보다 높은 의미감을 경험한다. 또한, 상사가 아닌 최종 User(고객)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조직에 속해 있을 때 마음 편히 내 일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율성 : 과정은 자율, 결과는 책임!
23살, 첫 직장에서 겪었던 경험이다. 당시 내 사수는 옆자리에서 수시로 내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며, 자신이 쓰는 툴과 방식을 권하고, 그렇게 따르지 않을 때마다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어느 조직이나 자신의 통제 욕구/불안을 ‘마이크로 매니지먼트’ 방식으로 표출하며 시시각각 일의 진척 사항을 보고받기 원하고, 일을 하는 과정에서의 수단과 방법까지 지시하는 상사들을 볼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상사와 일하는 구성원들이 점점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사람으로 흑화 하는 것을 종종 보았다.
구성원들이 내 일에 Ownership을 갖기 위해서는 업무 수행 과정에서 방식과 도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필요하다.
본인이 스스로 선택하면 초반에는 시행착오와 시간 낭비를 겪을지라도,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기 위해 이것저것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며 끝내 결과물을 만들어낼 것이며, 이 과정에서 자신만의 업무 방식과 노하우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는데, 업무 수행 과정에서의 ‘자율성’이 결과물에 대한 ‘자유’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사전에 동료들과 합의한 데드라인, 결과물의 완성도 등 서로 약속한 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몰입을 떨어트릴 수밖에 없다. 내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의 ‘자율성’은 업무 몰입을 높이는데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것을 왜곡해서 해석하거나 남용할 때 동료들의 몰입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정리하자면, 모두가 높은 몰입을 유지하면서 팀의 시너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체 조직 구성원들, 혹은 프로젝트의 멤버들과 ‘자율성’의 의미와 허용범위에 대해 합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합의 절차를 거쳐 만들어진 규범(일하는 방식에 관한 약속, Culture Deck)을 모두가 공평하게(대표, 팀장, 구성원 전직원이 예외 없이) 지켜 나간다면, 점차 자율과 책임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성장 : 도전하고, 실패하고, 학습하며, 끝내 성공한다
“구성원들이 ‘실패해도 괜찮아, 안되면 말지’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목적이 없는 실패이죠.”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에서 가장 혁신적인 연구개발 조직을 맡고 계신 팀장님께서 그룹코칭 중에 하신 말이다. 최근 경영진의 전폭적인 관심으로 모든 것이 풍족한 환경에서 연구를 하다 보니, 이전에 비해 학습하고 성취하려는 의지가 없어진 것 같다는 아쉬움을 표현하신 것이다.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 ‘두려움 없는 조직’ 등 최근의 조직문화와 관련된 도서들이 하나 같이 ‘심리적 안전감’을 강조한다.(심리적 안전감이란 구성원들의 마음속에 ‘실패해도 비난받지 않는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여러 기업에서는 실패가 왜 중요한지, 실패를 통해 어떻게 학습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실패’를 권장하고 찬양한다.
하지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점은 고몰입/고성과 조직은 ‘심리적 안전감’과 동시에 ‘높은 책무감’을 갖고 있었고, '목적 있는 실패'를 반복하며 실패를 성공으로 연결시켰다.
‘실패를 통한 학습’ 원리를 우리 조직에 제대로 접목시키고 싶다면 단순히 '실패를 통해 배우자'를 넘어서, 구성원들이 조직이라는 안전망 안에서 매우 도전적인 과제를 설정하고,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환경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조직문화팀은 구성원들의 도전과 실험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실패를 지속적으로 추적/발굴하고, 조직 전체의 학습과 성장의 기회로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조직 전체가 함께하는 실패 리뷰 세션을 통해, '왜 이 과제를 시도했는지, 무슨 일이 왜 벌어졌는지, 이를 해결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시행착오를 통해 새롭게 시도한 것/앞으로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실패가 조직 전체의 학습 장면이 되고, 함께 배우는 경험이 많아지면 구성원들이 자신의 업무에서 실패를 통해 학습하고 성공하는 방법을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관계 : 좋은 사람과 함께 일한다
“힘들어도, 야근을 해도 괜찮아요. 팀장님이랑 파트장님이 너무 좋으니까, 함께 한다고 느껴지니까”
조직 진단 결과가 월등히 높게 나온 팀의 구성원을 인터뷰하면서 들었던 답변이다. 가끔 리더십/조직문화 진단 데이터의 숫자를 해석 때 내가 예측하고 상상했던 가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리더에 대한 신뢰는 팀에 대한 소속감과 업무 몰입도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우리 팀에 주어진 자원이나 처한 상황이 타 팀에 비해 절대적으로 어려운 조건에 놓여있을지라도, 리더와 동료들이 좋으면 현재의 고난과 역경에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았다.
인간은 감정적 동물인지라(일종의 착시일 수도 있지만), '동료'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좋으면, 이 '조직'에 소속되어 ‘일’ 을 하는 게 즐겁고 좋다고 느낀다. 나 역시, 이전 회사가 바쁠 때는 야근과 밤샘, 주말 출근, 지방 출장이 일상이었지만 회사에 인생 친구들과 맛있는 것 먹고 수다 떨고 자주 웃으면서 그 시간을 즐겁게 이겨낼 수 있었다.
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구성원들의 몰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상사가 아닌 고객에 집중하는 문화를 조성하고, 실력과 태도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하여 사람을 채용하고, 성숙한 리더를 선발/육성하며, 일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어쩌면 이미 다 알고 있던 것들,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요소일 수도 있고,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느껴지는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본이라 생각되는 것들을 완벽에 가까운 수준으로 지켜 내기 위해, 이상과 현실의 갭을 메꾸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조직만이 구성원들의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고, 그러한 조직의 구성원들이 일을 대하는 태도와 열정, 진정성은 우리가 만드는 브랜드와 서비스에 고스란히 투영될 것이다.
물론 이 글의 내용이 모든 조직에 딱 들어맞는 '정답'은 아니다. 내가 주로 학습하고 현실에 적용했던 '리더십/조직문화' 분야에서는 정답은 없고, 상황과 맥락에 맞는 최선의 대안만이 존재한다. 나의 경험이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의 대안을 찾아가는데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21년, 6월에 초안을 쓰고
2024년, 7월에 다듬었습니다.
최경은 in 인살롱 ・ 2024.07.23 AI와 Data의 시대, 무엇을 먼저 해야 할 것인가?
Tech 보다 Domain, 문제의 본질을 바라봐야...
2024년 하이파이브 2일 차 개발자 데이에서 한기용 대표님 강의에서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는데 주위에서는 다들 아는 유머였다.
Gen AI로 인하여 미국에서는 많은 젊은 개발자들이 Gen AI로부터 직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좌충우돌하고 있는데, 한국에 와서 들어보면 다들 "Gen AI의 시대에 무엇을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한다고 한다.
비단 개발자만의 우스개는 아니다. 특히 우리 사회는 뭐든지 학습으로 닥쳐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다가올 AI의 시대, 아니 이미 눈앞에 닥친 AI의 시대에 ChatGPT를 학습하고자 책도 사서 공부하고, 유튜브로도 학습하고, 온라인 강의도 듣는다.
같은 콘퍼런스의 다른 연사님이 김송규 교수님의 '데이터는 예측하지 않는다'를 추천하셨는데 그리 두껍지 않음에도 Data와 관련한 여러 가지 insight를 주었다. 개인적으로 메모해 둔 구절을 조금 인용해 보자면,
많은 양의 데이터를 다룰 줄 아는 능력 보다 언제 써야 하는지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데이터 문제를 해결하는 최고의 방법은 데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평균은 의미 없는 허수의 수일 수 있다.
예측 모델은 과거의 사건이 미래에도 재현된다는 가정하에서 의미가 있다. 즉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데이터사이언스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잘 수집하고 잘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서 적은 노력으로 측정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가장 크게 고개를 끄덕인 부분은 가장 마지막 부분이다. '문제의 본질' 바로 그것이다. 임직원에게 ChatGPT 활용능력을 높이기 위해 고민한 적이 있다. 가장 처음 벽에 부딪힌 부분이 바로 'ChatGPT로 무엇을 하라고 할 것이냐'에 있었다. 내가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있어야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 사용할 Something이 없는 상태에서 다이아몬드로 만든 도구를 가져다주어도 사용할 방법이 없다. 무엇을 해결하고자 하는지. 그 무엇에 대한 고민 없이는 데이터사이언스이든 ChaGPT든 공염불에 불과하다.
올해 3월 26일 자 한경 기고글 중 Mercer의 김주수 부사장님의 글이 있다. 사용하기 어려운 빅데이터보다 시계열적으로 추적하는 롱데이터에서 의미를 찾으라는 내용이다. 짧은 글이지만 최근 유행하는 People Analytics를 고려하는 HRer라면 일독을 권한다.
나에게 이 글의 메인테마보다 크게 와닿았던 구절은 "데이터 수집에 들이는 노력이 헛되지 않으려면 올바른 질문을 해야 한다."이다. 아마도 어느 정도 직장생활을 하셔서 일이 돌아가는 방식을 깨달으신 분이거나, 디자인싱킹을 비롯한 애자일방식 (너무 러프하게 묶어버렸지만) 또는 고객중심의 사고에 익숙하신 분들은 너무나도 자주 그리고 익숙하게 들어왔던 'Define' 즉 '문제의 본질'이 바로 나에게 최근에 연이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부분이다.
요약하자면 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서인지 꽤 오래전 신입사원 시절에 보았던 선배들보다 지금 나의 업무의 종류와 깊이는 무척 넓고 깊다. 단순히 해치우듯이 처리해서는 그 일이 면역이 되어서 다시 유행하는 독감처럼 다시 돌아오거나 나 개인 또는 조직에 아무런 성취도 성과도 주지 않고 스쳐 지나갈 뿐이다. 이 일의 '본질' 또는 '목적' 또는 'value proposition'을 달성하도록 다양한 tool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 tool이 AI이든 Data이든 다르지 않다.
얼마 전 회사 동호회 활동을 함께 하는 임원분께서 HR팀장에게 해 주신 말이 있다. AI의 시대, 사람하고 비슷해지는 AI를 잘 다루려면 사람의 이해가 중요하다. 인간이 쌓아온 지적재산이 바로 인문학이기에 소설을 많이 봐야 한다. 특히 HR 하는 사람이라면...
소설보다는 다른 종류의 서적(리더십이나 AI, 역사? 이런 걸 주로 본다)이 손에 잘 집히다 보니 머릿속의 이해와 달리 마음이 가는 말은 아니지만, 아마도 올해 남은 기간이나 내년 어딘가 즈음에서 이 말도 확 하고 가슴깊이 울리지 않을까 싶다.
상쿤 in 인살롱 ・ 2024.07.22 조직에서의 상실과 애도 다루기
첫 아티클로 어떤 주제를 다룰까 많이 고민하다가, 많은 분들에게 아직 낯설 수 있지만 꼭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주제인 <조직에서의 상실과 애도>에 관한 내용으로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쉽게 나누지는 못했던 상실과 애도에 관한 이야기,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상실과 애도, 무엇일까요?
상실과 애도라고 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아마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과의 영원한 이별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지 않을까 싶은데요. 사실 상실의 범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그 종류 역시 다양합니다. 이사로 인한 주거지 및 기존 대인관계의 변화, 헤어짐, 절교, 실직, 퇴직, 이혼, 질병, 재산상의 손실 등은 모두 주요한 상실에 해당합니다.
사람마다 살면서 경험하는 상실의 종류나 시기는 다를 수 있지만, 우리 삶에 있어서 상실은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와도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는지가 우리가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칩니다.
'상실'과 '애도'는 하나의 세트와 같습니다. 상실을 겪은 개인은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 과정을 거칩니다. 이때 우리가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는 애도가 모든 사람에게 비슷한 형태와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성향이나 과거 경험에 따라 애도 방식은 사람마다 매우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상실에 관해 말하기보다는 혼자 깊이 간직하는 것을 더 편안하게 여길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가까운 사람들과 자신의 상실에 관해 나누면서 위로를 받고 싶어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은 말이나 글보다는 그림이나 다른 방식을 통해 표현하고 싶어할 수도 있겠죠.
애도 기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의학 및 심리학계에서는 애도에 관한 연구를 통해 애도의 단계와 적절한 애도 기간에 관한 기준을 제시해왔습니다. 보통 6개월~1년 정도를 적절한 애도 기간으로 상정하고, 그 이상으로 애도가 길어지면 복합비애(Complicated Grief, CG)처럼 비정상적이고 병리적인 반응으로 간주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보다 최근에는 애도의 기간을 정해놓기보다는 애도를 '완결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move on)' 것이 아닌 삶에서 계속되는 여정, 과정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차츰 등장하고 있습니다*.
조직에서의 상실과 애도,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이렇게 상실과 애도가 모든 사람의 삶에서 일어나는 경험인 데 반해, 조직에서는 아직까지 상실과 애도를 개인적인 영역의 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정신건강의 중요성에 관한 인식의 확산과 함께 국내에서는 조직 구성원의 심리적 안정과 생활 전반에 관한 지원을 위한 근로자지원서비스(Employee Assistance Program, EAP)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되었습니다. 많이들 알고 계시고 활용하시기도 하는 사내외 심리상담 지원제도, 컨설팅, 코칭, 구성원들의 생활안정을 위한 재정, 법률상담, 의료서비스 등 근로자지원서비스는 생활의 전방위적 영역에서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도록 구성됩니다. 물론 조직 규모나 가용 예산에 따라 지원할 수 있는 서비스 범위가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이런 노력을 통해 직무만족이나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를 최소화하고 안정적이고 건강한 생활환경 속에서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된 취지입니다.
보다 최근에는 직접적으로 직무만족이나 생산성처럼 전통적으로 일과 연결된다고 생각되었던 영역만 아니라 구성원의 정서관리와 마음건강 같은 보다 근본적인 영역까지 도움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 개념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회사 안에서의 역할이나 행복에 관한 것만 아니라 회사 밖에서의 행복, 전반적인 삶의 질이 궁극적으로는 성과와 생산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대한 이해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상실과 애도에 관한 조직 차원에서의 고민이나 접근은 찾아보기가 어려운데요. 예를 들어, 사별을 경험한 구성원에게는 일반적으로 5일간의 경조휴가와 함께 장례지원서비스가 제공됩니다. 심리상담 서비스가 제공되는 경우라면 애도를 위한 상담을 진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실과 애도 자체에 대한 조직 차원에서의 상시적 교육이나 심리적 접근은 아직까지 미비한 편입니다.
구성원들을 위한 인문학 강좌나 실무교육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다양한 옵션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실과 애도에 관한 강의나 세미나 혹은 구성원들끼리 서로의 상실과 애도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장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비단 사별과 같은 무거운 주제가 아니더라도 생애주기에서 겪게 되는 이별이나 관계적 변화, 직무 이동이나 전직, 퇴직 시기를 앞두고 있는 구성원들을 위한 교육, 이들이 느끼는 정서적, 신체적, 물리적 변화 등을 나눌 소통과 교류 기회가 부족한 것입니다.
시청역 사고, 우리 모두의 상실과 애도
얼마 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같은 은행에서 근무하는 동료와 선후배 4분, 시청 직원 2분, 병원 직원 3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매일에 충실했을 희생자들의 삶을 안타까워하며 전국민이 추모하고 애도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사고를 보며 희생자들과 가장 가까이 지냈을 유족분들과 직장분들에 관한 생각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매일 얼굴을 보며 함께 일했을 동료분들과, 비록 직접 알지는 못했을지라도 같은 조직으로서의 소속감과 슬픔을 공유할 많은 이들의 얼굴을 그려보았습니다. 그리고 희생자들을 떠나보낸 조직에서는 이 분들을 어떻게 애도하고 기려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직생활을 하며 우리는 수많은 상실과 애도를 경험합니다. 때로는 나 자신이 겪는 상실과 애도일 수도 있고, 가깝거나 먼 동료 누군가가 겪고 있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마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상실하고, 애도하는 그 과정을 그저 마음으로 삼키며 애써 태연한 얼굴로 각자 할 일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상실과 애도는, 그저 각자가 해결해야할 개인적 영역의 일이라고 치부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상실과 애도는 개인만의 영역이 아닙니다. 조직에 속한 개인이 겪는 상실과 애도, 또 조직 전체로서 경험하는 상실과 애도 모두 궁극적으로는 조직에서 함께 공유되고 필요한 도움과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문화와 제도가 자리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상실과 애도를 일상적이고 보다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에 관련된 교육과 세미나, 구성원간 소통의 자리(온라인/오프라인 플랫폼) 등을 마련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또, 조직 차원의 추모나 상실에 대해서는 기념일이나 관련 행사 등을 통해 공식적인 기록과 기억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
이런 제안에 관해 혹자는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조직은 이익을 추구하는 곳이지, 구성원의 정신건강이나 케어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당장 산적한 이슈들을 해결하기에도 시간과 자원이 부족한데, 이런 것까지 챙겨야 하는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아직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혹은 시기상조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성원 각자가 경험하는 삶의 주기에 따른 다양한 상실과 그에 수반되는 몸과 마음, 환경의 변화가 궁극적으로 조직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실과 애도를 삶의 모든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개인과 조직은 여러 위기 상황에서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습니다. 개인과 조직 차원에서의 '위기관리 능력', '회복탄력성'이 모두 향상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죠.
조직 차원에서의 상실과 애도 다루기, 아직은 더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언젠가 조직에서 구체적으로 적용되고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실행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봅니다.
*샌드버그셰릴, & 그랜트애덤. (2002). 옵션 B. 현대문학.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13795189
jieun kim in 인살롱 ・ 2024.07.22 교육담당자들의 경력관리의 과거와 현재!
기업에 교육담당자로 커리어를 쌓고 있는 분들을 기준으로 과거와 현재를 제 경험을 기준으로 풀어 봅니다.
[현재 시니어들의 경력 Path, 과거형]
우선 요즘은 작은 기업에서 시작해 조금씩 큰 기업으로 커리어를 쌓고 계신 분들이 많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하지만 20여년 전 만해도 참 드문 일이었습니다. 첫 직장에서 오래 일하다 퇴직하고 개인사업이나 자영업을 하곤 했죠. 특히 교육담당자의 경우는 컨설팅회사나 전문강사로 경력을 이어가곤 했습니다.
HRDer로 일하다가 보면 일하는 특성이나 업무적합성에 따라 팀장, 임원으로 성장하는 General Manager Track이 가장 보편적인 경력경로였습니다. 하지만 아주 큰 대기업이 아니면 부장, 임원까지 포지션이 부족하다 보니 중간에 인사(HRM)으로 직무확장하거나 회사 밖으로 눈을 돌리곤 했습니다.
(HRDer의 경력)
- 일반관리자 Track : 팀장 → 임원(연수원장)
- 전문가 Track : 과정개발자, 강사 → 외부 컨설팅 회사
- 직무전환 Track : HRM 경력으로 전환 → 인사 리더
[요즘 주니어들의 경력 Path, 현재형]
최근 공채가 줄다보니, 작은 기업부터 시작해 수시로 이직을 하며 조금씩 큰 기업으로 발전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요즘 만난 분들 중에는 7~8년차에 3~4번째 직장 경력을 갖고 있으며, 스타트업, 1인 HRer로 시작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 계열사 HR담당자로 발전하는 경우도 종종 발견합니다.
과거 처럼 일반관리자나 강사, 과정개발하는 컨설턴트를 희망하기 보다는 조직문화 담당자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HRM까지 경험하신 분들 중에는 HRBP의 직무를 받는 경우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옛날 사람인 저로써는 주니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은 되지만, 제가 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젊은 HRBP를 많이 만날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중요해 지는 HR(D)의 역할]
과거에는 기업의 교육담당자는 과정기획과 개발자, 사내강사 정도로 구분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런 역할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업의 요구나 변화의 빠르기로 보면 현재 역할은 제한적이라고 봅니다.
앞으로는 조직문화나 조직개발, 변화관리에 대한 역량이나 스킬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업의 경영자나 현업의 임원들은 과거처럼 집합교육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짧게 1~2시간 빠르게 치고 빠지는 Short Skill 교육을 기획하고 시행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현업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에 대한 솔루션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꼭 HRBP 직무가 아니더라도 노무이슈나 현업채용 말고 조직개발 솔루션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채용브랜딩에 중요한 기업의 조직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변화관리'의 방법론과 Intervention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직무의 효용성이 더 이상 유지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은 HRDer의 경력개발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앞으로는 제가 살아남기 위해 최근에 해 봤거나 하고 있는 일들을 중심으로 글을 적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비 피해 없으시길 바라며, 더운 여름 잘 보내요~)
윤석원 in 인살롱 ・ 2024.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