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에 빠진 회사 구하기, 나는 어디서 부터 시작하였나?
“여기 모인 임직원 000명이 대표 보다 훨씬 현명하고 유능하다고 저는 믿습니다.”회사 대표로 취임한 첫날 이렇게 직원들에게 이야기했다. 취임 전에, 회사는 바닥 없는 늪으로 가라앉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직접 파악해 보니 상황은 더 나빴다. 인건비는 급상승하고, 매출의 하락추세는 멈추지 않았다. 수익성의 악화는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벗어나보려는 몇 차례 시도는 이미 실패로 끝난 터였다. 바닥에 구멍이 난 배가 서서히 가라앉는 듯 했다. 더구나 M&A 이후 새로 투입된 직원들은 기존 직원들과 서로 갈등하며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조직은 제 기능을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기업조직은 경영자의 입장에 볼 때 영화 “아이언맨”에서 토니 스타크가 입었던 “아이언맨 수트” 와도 같다. 평범한 신체능력을 가졌던 토니는 이 수트를 입으면 하늘을 날고, 엄청난 힘과 민첩성을 가지고 악을 응징한다. 평범한 사람도 기업조직이라는 수트를 입으면, 큰 능력을 발휘하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수퍼 히어로가 되기도 한다. 경영자의 능력은 그의 수트의 질, 즉 지휘하는 조직의 힘에 좌우된다. “포노 사피엔스(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인류)”라고 불리는 신 인류를 창조한 스티브 잡스가 “애플”이라는 강력한 수트를 입지 않고 아이폰으로 세계를 바꾸는 것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생사를 건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터에서도 지휘관의 성과는 조직의 능력에 달려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어느 나라의 전투 조직이 가장 강력하였을까? 미국의 군사학자 “트레버 드푸이”가 그의 저서 “전쟁의 이해”에서 1943년부터 1944년 사이에 연합군과 독일군이 벌인 81번의 교전을 분석했다. 병사의 수와 장비, 작전과 지형요인 등을 동등하게 수정하여 분석한 결과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독일군 100명은 각각 영국군 145명 미군 132명 소련군 200명과 동등한 수준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 참전했던 독일군, 미군, 영국군 24개 사단의 전투효율 분석결과는 더 충격적이다. 미군 88사단이 5위를 차지한 것 외에는 1위부터 10위까지 9개사단이 모두 독일군이었다. 미국 할리우드가 만들었던 2차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매우 놀라운 결과다.전후 군사 전문가들은 오랜 연구 끝에 그 비결이 독일군의 독특한 “임무형 지휘체계”에 있다고 결론지었다. 임무형 지휘체계의 핵심은 이렇다. 첫째, 상급부대는 하급부대에 달성해야 할 목표를 철저하고 정확하게 공유한다. 그 공유는 상하간의 치열한 의사소통을 통해 이루어 진다. 둘째, 목표 달성 수단과 방법에 대해서는 예하 지휘관들에게 최대한의 재량권을 부여한다.독일군 중에서도 임무형 지휘체계를 가장 잘 활용하여 하급지휘관에게 전술적 재량권을 보장한 지휘관이 사막의 여우로 알려진 롬멜이다. 롬멜 장군이 예하 지휘관에게 간섭하는 경우는 자신과 공유한 전략목표에 반하여 공격이나 기동에 소극적일 때에 한하였다. 북아프리카에서 롬멜의 독일군은 공격이나 대응속도가 기존 상식을 완전히 뛰어넘을 정도로 빨랐다. 영국군은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롬멜사단에게 매번 패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수많은 연구보고에 따르면, 독일군 조직은 고위 장성들의 성향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었지만 다른 나라 군대들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덜 권위적이었다. 연구, 토론, 비판이 그 어느 나라 군대보다 자유로웠다.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 가진 독일군의 경직된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독일군 사단의 강력한 전투력의 비결은 바로 임무형 지휘체계가 잘 정착된 것에 있었다.나는 눈 앞의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과정에서 회사 조직을 임무형 지휘체계로 재편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동시에, 상처 입은 조직원의 회복 및 재배치, 필요한 역량의 부분적 외부 수혈, 및 내부의 숨은 인재 발굴은 당연히 병행되어야 하는 필수 작업이었음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수트의 수리 정비작업인 셈이다.임무형 지휘체계로의 재편 첫째 단계는, 내부 커뮤니케이션 강화를 통한 목표의 확실하고 철저한 공유였다. 이 과정에서 평가제도가 차별보상을 위한 사전 단계라는 생각을 과감하게 버렸다. 평가제도에 늘 포함되는 업무 목표설정은 반복 피드백을 통한 소통의 도구로 작동되도록 노력했다. 기존의 상대평가제도 자체도 부작용이 클 뿐 아니라 피드백 주기가 매우 길어 소통 툴로 무의미하므로 절대평가에 가깝게 수술했음은 물론이다.*(그저 미국에서 유행했다는 이유만으로, 또는 유명 컨설팅회사에서 만들어준 제도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고민 없이 수입품 인사제도를 적용해서는 곤란하다. 상대평가는 갓난아이 때부터 엄마 아빠와 다른 방에서 혼자 잠을 자며 자라난 개인주의적인 미국인들에게 어느 정도 효과적인 제도일지 모른다. 하지만 서너 살이 되도록 엄마의 품에 잠들며 성장한 한국인들의 조직에 그대로 적용하면서 부작용이 없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인사담당이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하며 인사제도를 기획하고 운영하여야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둘째, 각 계층별 리더들이 자신들이 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명령형 지휘체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지속적인 신뢰의 표현으로 자율권을 행사하도록 반복 확인시켜 주고 격려해 주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물론 이러한 작업은 짧은 순간에 마법처럼 이루어 지지 않는다. 많은 이야기와 설득이 필요하고 경영자가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며 시간이 걸린다. 지금까지도 변화는 진행 중이고,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렇게 조직이 수리되면서 침몰하던 배 같던 회사는 바닥의 뚫어진 구멍을 수리하고 순항을 시작했다. 조직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던 사람들이 큰 성과를 내면서 회사의 실적에 크게 기여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은 개선된 성과 위에 덤으로 얻는 보상이었다.도입 성격의 첫 번째 글이라서 많은 이야기들을 생략하였습니다. 다음부터 개별 이슈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다루어 보겠습니다.
인살롱 in 인살롱 ・ 2021.04.22 HR담당자, 어떻게 일할 것인가?
**과거의 성공경험과 전문성이 더 이상 성과를 이끌지 못한다.**지난 경험과 지식은 사회와 사람의 성숙도, 경쟁 환경, 사업의 특성, 기술 발전에 따라 변화의 속도와 수준이 다르다.농경사회에서의 경험과 지식은 변화의 속도와 수준이 급격하지 않았다.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를 맞이한 국가라면 변화의 속도와 수준이 매우 빠르며, 과거의 성공경험과 지식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2020년은 한 마디로 코로나19 정국이었다.코로나19가 몰고온 위기요인이 대부분이었지만, 긍정적 측면도 있다.디지털 환경으로의 급격한 변화이다.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블록체인 같은 신기술이 대거 등장하였다.과거의 방식을 고수하여 생산과 마케팅을 하면 위기 상황에서 버틸 수가 없다.세계적 위기는 대면이 아닌 비대면의 디지털 구축과 활용이 경쟁력이 되었다.최신 IT 기술로 무장한 개발 인력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사업계획을 수립하는데, 여관방 모여 계산기를 가지고 보고서를 작성하던 세대에게는 그냥 충격이다.누구나 환경이 변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향후 어떻게 더 변할 것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러한 변화에 선제적 조치를 하고 경쟁력을 키워 지속 성장하도록 하는가에 있다.누구나 HR부서의 최우선 과제가 핵심 기술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 인재와 조직 구축임을 알고 있다.문제는 700만개 이상의 우리 기업 중 대부분인 중소기업의 CEO는 조직과 직원들의 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지금 하는 일에서 생존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만 있다.세계의 변화 속도에 관심이 없으니 따라잡겠다는 생각도 없다. 아니 그런 용기를 낼 수 없는 상황이다.CEO의 생각이 이렇다면 산하 조직과 임직원은 어떻게 되겠는가?생각과 일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내일은 물론 오늘도 없다.HR부서의 할 일은 상황의 철저한 인식과 할 수 있고 해낸다는 마음에서 시작한다.**어떻게 일할 것인가?**일하는 방법은 2가지 접근법이 있다.하나는 문제점을 하나하나 파악하여 영역을 묶고 이를 기준으로 전체를 해결하는 접근법이다.현재의 문제를 개선하여 전체의 효과를 높이는 방법으로 주로 현장의 개선활동, 회사의 제안제도가 사례이다.HR도 채용, 평가, 보상, 승진, 인재육성 특히 노사 이슈는 이런 접근법이 많다.매년 HR 기능별 문제점을 찾아 개선방안을 도출하여 보고한다.다른 하나는 전체를 본 후 이를 잘게 나누어 일을 추진하는 접근법이다.먼저, 최종적인 바람직한 모습과 성과를 반영한 결과물을 생각한다.이를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체계와 기준, 과제와 방법을 세운다. 그리고 이 틀에 의해 전체를 부분으로 쪼개 일을 추진하는 접근법이다.첫 번째 방법은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는 기술과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수많은 데이터가 수집되고 이 중에 의미가 있는 데이터를 분석해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도출한다.주어진 과제가 명확하고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하기 때문에 과제의 해결 가능성이 높다.두 번째 방법은 전체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다.상상의 나래를 펴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된다는 조감도를 그리고 가장 바람직한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다.기술도 중요하지만 전체를 보는 역량이 중요하다. 이는 직관이며 감각이다. 감성이 일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10km의 터널을 뚫는다고 생각해 보자.첫 번째 방법은 터널의 첫 출발인 입구에서 시작하여 뚫고 나가는데 장애가 되는 요인들을 제거해 가면서 진행한다.오직 앞으로 뚫고 나아가는 것이 목표이다.터널을 뚫는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산의 한 쪽에서 터널을 파기 때문에 출구가 어디가 될 지 불안하다.하지만, 두 번째 방법은 터널의 입구와 출구에서 동시에 터널을 뚫고 나아가는 것이다.공기도 줄고 무엇보다 기대하는 터널의 모습에 대한 의구심이 없다.중간에 만나는 것이 핵심으로 이에 대한 기술과 지혜를 모으게 된다.첫 번째 접근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우리가 일을 할 때 전체 통합 이미지를 그리고 분석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HR **담당자, 지금 무엇을 고민할 것인가?**코로나19로 인한 디지털 대 전환으로 HR부서의 역할과 영향력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과거 HR이 했던 인력의 채용, 평가, 보상, 승진과 이동 배치, 인재육성, 퇴직 모든 기능을 현업 부서에 주고 HR은 통제와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채용 측면에서 외부 인재 영입은 한계가 있다. 조기 전력화도 쉽지 않지만 로열티의 이슈도 있다.이 보다 더 심각한 것은 내부 핵심인력의 유지관리이다.인재육성은 더욱 심각하다. 집합교육이 되지 않기 때문에 비대면 교육으로의 전환 또는 교육 자체를 하지 않는 일이 발생했다.자신의 가치는 자신이 올려야 한다며 방치하면 ‘이 곳에 있으면 있을수록 정체되고 성장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성장을 더 중시하는 젊은 직원들이 회사에 애정을 갖고 자발과 주도적으로 성과를 창출하겠는가?HR부서와 담당자의 역할과 일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당혹스럽기도 할 것이다.HR은 사업전략과 연계하여 조직, 사람, 제도, 문화의 경쟁력을 강화하며, CEO의 전략적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사업의 본질, 회사의 미래 비전과 전략, 중점과제, 재무현황, 조직과 구성원의 성숙도와 역량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종체적 관점에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지금 HR부서가 고민할 일은 길고 멀리 내다보며 회사가 있어야 할 바람직한 모습, 최종 결과물인 조감도를 갖고 일을 해야 한다.
홍석환 in 인살롱 ・ 2021.04.23 내 세계의 한계를 결정하는 것들 - 인문학 공부의 첫걸음, 언어
바벨탑 쌓기가 빚어낸 일들“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 창세기 11:9성서에 따르면, 오만해진 인간은 탑을 쌓았다. 스스로 이름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에 오르기 위함이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홍수로 그들을 쓸어버리는 대신 탑에 오른 이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들었다. 서로의 언어가 달라졌음은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홍수보다는 다행스러운 상황인가, 아니면 더 가혹한 처벌인가?어쨌든 인류는 살아남았고, 미증유의 문제를 맞이했다. 예전처럼 대화를 나누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삼삼오오 모였지만 서로의 언어가 다르다고 상상해 보라. ‘영어’라는 공용어도 없는 가정이다. 손짓 발짓으로 생존 문제는 근근이 헤쳐가겠지만, 삶의 질을 높이는 소통은 단절될 것이다. 집단지성의 가능성도 희박해진다.그렇다! 신은 언어의 힘을 간파했다. 어쩌면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언어는 인류의 도구다. 요긴하고 유용할 뿐만 아니라 때때로 위대한 도구다. 우리는 언어를 활용하여 소통하고 교육하고 문명을 일군다. 인간이 이뤄내는 온갖 창조적인 일들은 말과 글을 통해 이뤄졌다. 언어를 통해 상상력과 지식이 전파되고 문명의 교류가 가능해졌다.우리가 맺고 있는 우정이나 사랑 또한 서로를 이해하는 말에 빚지고 있다. 서로를 교감하지 못하는 언어만 사용한다면 오해와 무지로 얼룩진 삶이 될 것이다. 언어가 없다면 지금보다 더욱 외로워지고 공동체 생활이 힘들어질 것이다. 요컨대, 언어가 없다면 대화가 사유가 힘들어진다. 어쩌면 인류는 지금보다 더욱 흩어져 지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것들이 신의 처벌이라면 결코 가벼워 보이진 않는다.바벨탑을 쌓았던 이들보다는 우리의 사정이 나을 것이다. 언어로 의견을 주고받고 사람들과 만나 정겨운 담소도 나눈다. 글을 읽으며 새로운 정보와 통찰을 얻기도 한다. 외로움과 오해가 소멸됐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의 외로움은 앞으로도 여전하고, 사람들 사이의 오해는 영원히 존재하리라.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이렇게 썼다. "오해를 받는다는 것은 인간의 운명이 아닌가."난생 처음 볼모가 되었던 사연수년 전의 일이다. 독서모임에서 두어 번 특강을 했고 참여했던 분들의 다수가 만족스러워하셨다. 몇 분들은 장기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원했다. 이동해야 하는 거리가 멀어 잠깐 주저했지만, 그들의 뜨거운 학습 열정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일 년 동안 매월 만나기로 했고, 그 소식을 전해 들은 회원 한 분이 고맙다면서 이런 말을 보내 왔다. “선생님은 이제 저희의 볼모예요.”우리와 약속하셨으니, 매월 꼭 오셔야 해요! 라는 의미라고 이해되어 고마우면서도 은근히 구속받는 느낌도 들었다. 어딘가에 매이기 싫어하는 내 성향 탓도 있겠지만, 볼모라는 단어가 속박하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리라. 표준국어대사전은 볼모를 이렇게 정의한다.볼모유의어는 유질, 인질.1. 약속 이행의 담보로 상대편에 잡혀 두는 사람이나 물건.2. 예전에, 나라 사이에 조약 이행을 담보로 상대국에 억류하여 두던 왕자나 그 밖의 유력한 사람.인문학도로서 볼모보다 더 나은 표현을 찾고 싶어졌다. 적확한(!) 언어 사용이 인문학 공부의 출발이기에 ‘볼모 사건’은 괜찮은 학습 기회라 생각했다. 포로와 볼모 중 어느 단어가 더 센 느낌을 줄까?포로유의어는 군로, 노수.1. 사로잡은 적.2. 어떤 사람이나 일에 마음이 쏠리거나 매이어 꼼짝 못 하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사전이 포로에 대해서는 비유적 의미까지 적어두었다. 실제로 우리는 ‘사랑의 포로’와 같은 표현을 종종 본다. ‘사랑의 볼모’보다는 자주 보았으리라. 누군가는 ‘교육의 볼모’보다는 ‘교육의 포로’가 낫다고 판단할지도 모르겠다.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좀 더 적확한 단어를 찾아가면 될 테고.모든 언어는 일종의 번역이다어쩌면 포로든 볼모든 비슷한 단어들이고,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포로와 볼모 또는 그 대안을 찾는 일이 정말 중요하기는 할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포로와 볼모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자기 상황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수록, 다시 말해 언어 감각을 키울수록 오해와 외로움이 조금은 줄어든다면, 우리의 언어생활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스페인어를 영어로 옮기는 번역가 이디스 그로스먼의 『번역예찬』은 언어와 번역에 대한 통찰이 가득한 책이다. 내게는 발터 벤야민의 <번역가의 과제>라는 책과 함께 ‘번역’의 본질을 이해하게 만든 텍스트다. 나는 『번역예찬』의 한 문장을 외고 있다.“모든 언어는 비언어적 세계에 대한 일종의 번역이다.Language is a translation of the nonverbal world.”‘비언어적 세계’란 언어로 표현되기 이전의 것들, 이를테면 생각, 느낌, 감각, 경험을 뜻한다.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인문학 강연에서 ‘언어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면 청중들에게 이렇게 요청한다.“여러분, 제가 초콜릿을 하나씩 나눠 드리겠습니다. 벨기에 명품 초콜릿 노이하우스입니다. 흔한 초콜릿은 아니니 천천히 음미하면서 드셔 보세요. 드신 후에 옆에 계신 분과 시식 소감을 얘기해 보세요. 어떤 맛이었는지 표현해 보세요.”초콜릿을 맛보는 순간 미각이 살아난다. 아직 언어로 표현하지 않은 그 미각적 경험이 ‘비언어적 세계’다. 깊고 풍요로운 맛을 언어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다. “정말 맛이 좋네요”. “너무 맛있어요” 정도로 부사만 남발하기 십상이다. 요즘엔 “대박”이라는 말이 온갖 표현을 대체하는 실상이다. 이런 표현들은 초콜릿만의 고유한 맛과 맛난 곰탕이나 끝내주는 스파게티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세상 모든 음식에 쓰일 수 있는 보편적인 표현인 것이다.복잡한 사건이나 특정 인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은 초콜릿의 맛보다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이를 표현하기란 초콜릿 맛을 전달하는 일보다는 힘들 것이다. 초콜릿 맛은 “대박”이라고 표현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적확히 표현하는 일은 그보다는 훨씬 중요하다. 사람들과의 문제 중 상당 부분이 오해나 소통의 부재로 빚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다.표현의 힘겨움은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온다. 첫째, 표현의 수단인 언어가 한계를 가진 도구이기 때문이다. 둘째,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바가 무엇인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말하는 사람이 비언어적 세계와 언어를 신중하게 연결하려 들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바(비언어적 세계)를 신중히 들여다보지 않을 때, 자신이 말하려는 의도와 동떨어진 어휘를 선택할 때 오역이 일어난다.효과적인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언어 감각을 키워야 한다. 언어의 한계를 인식하는 동시에 적확한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 말이다. 적확은 정확과 다르다. 틀림없이 꼭 들어맞는 것이 ‘적확’이다. 적확한 언어 사용이란 비언어적 세계(자신의 느낌, 감정, 사고)를 제대로 표현하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뜻이다. 자신의 의도를 명징하게 전달하는 능력이라 이해해도 좋겠다. 그로스먼의 말처럼, 자신의 감정, 생각, 감각에 가까운 언어를 찾는 노력은 다른 언어를 번역하는 일과 비슷하다.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인문학이란 다름 아닌 사람(人)과 언어(文)를 공부하는 학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인문학’을 “언어, 문학, 역사, 철학 따위를 공부하는 학문”으로 정의했다. 나는 사전에서 정의한 순서가 마음에 든다. 인문 소양을 갖고 싶다면 문사철 공부보다 언어 감각의 고양이 선행되어야 하는 까닭이다.인문학 공부는 멀리 있지 않다. 생활 속에서 인문 소양을 함양할 수 있다. 우리가 쓰는 말과 단어들이 ‘비언어적 세계(경험, 감정, 사고)’를 적확하게 포착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근본적이고 중요한 인문학 공부다. 한 문인의 말처럼 정확한 이해가 사랑이라면, 언어를 세심하게 다루는 노력은 사랑의 실천이다. 자신이 쓰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모를 때마다 사전을 찾아보는 것이야말로 인문학을 공부하는 일이다.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명징하고 적확하게 말해지면 좋다. 그럴 때마다 서로 교감하는 영역이 확장될 테니까. 이해받지 못함에서 오는 외로움을 언어 감각이 조금은 덜어줄 것이다. 친밀함이 자신을 건강하고 지혜롭게 드러내는 일이라면, 언어 감각이 친밀함의 농도를 더해줄 것이다. 나는 비트겐슈타인은 잘 모르지만, 언어의 중요성을 실감케 하는 그의 말을 수십 번은 곱씹었다.“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 비트겐슈타인The limits of my language mean the limits of my world.
인살롱 in 인살롱 ・ 2021.04.25 팀장이 절대 써서 안 되는 말
팀원과 임원에게 어떤 단어를 쓰느냐, 어떤 언어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팀장에 대한 평가는 급격히 달라진다. 나는 별 것 아닌 사소한 표현이라 여겨 쉽게 말했지만 듣는 사람에게 사소하지 않은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말투도 있다. 임원 앞에서 잘못 말해 불호령이 떨어지기 전에 스스로 점검해봐야 한다. 첫째. “배운다는 자세로”“배운다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는 사실 이런 말을 많이 했다. 사회 초년생 때. 하지만 팀장은 절대 써서는 안되는 말이다. 팀장은 성과를 내는 사람이다. 회사는 학교가 아니라 전쟁터다. 배운다는 자세가 아닌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해야 한다. 둘째. “솔직히 말씀드리면”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 한 팀장이 결과를 보고하는 자리였다. 임원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지던 중 한 임원이 그에게 물었다. “리스크(위험요소)가 없다고 했는데 확실합니까?” 팀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사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위험요소가 있긴 합니다.” 그러자 회의실이 쩌렁거리도록 큰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뭐라고요? ‘솔직히’라니 지금 무슨 말인가요? 그럼 이제까지 나는 무슨 말을 듣고 있었던 겁니까? 이제까지 당신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나요? ‘솔직히’라는 모호한 말로 우리 전부를 위험에 빠뜨리지 마세요. 변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변명하겠다고 솔직히 말하고 시작하라는 겁니다.”공식적인 업무보고회에서 ‘솔직히’라는 단어는 그간 자신이 했던 모든 말과, 그 자리 자체에 대해 상대방이 가지고 있던 신뢰 전부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말이다. 별거 아닌 말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팀장으로서 팀원에게 말할 때든 윗사람에게 말할 때든 “솔직히 말해서”라는 표현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사용하지 않길 바란다. 셋째.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A 팀장.“경쟁사의 저가공세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사를 해 봐야 알겠지만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수주는 거의 성공한 것으로 느껴지는데요. 성공하면 10억 정도의 매출이 예상됩니다. 영업이익률은 아마 10퍼센트쯤 될 것 같습니다.”.B팀장.“경쟁사의 저가공세가 문제입니다. 조사를 통해 파악한 바로는 우리 회사가 제안하는 단가 기준 97퍼센트 수준에서 제안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우리가 성공하면 10.8억의 매출과 12.8%의 영업이익률이 기대됩니다.”A팀장의 보고는 조직의 언어가 아니다. 제대로 된 조직의 언어는 B팀장이다. 혹시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별생각 없이 ‘거의’, ‘대략’, ‘쯤’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왔다면 지금부터는 절대적으로 조심하도록 하자.회사는 당신의 말 하나로 이후의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당신의 모든 것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것도 아주 냉정하고 단호하게 말이다. 그렇다면 ‘대략’이라는 단어 하나로 당신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건 자학에 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해당 글은 도서 <팀장의 말투>(김범준 저)를 재편집하였습니다.
인살롱 in 인살롱 ・ 2021.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