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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살라망까 Salamanca ~ 엘 꾸보 El Cubo : 36.5km 하루 종일 비가 왔다. 살라망까의 긴 도로를 빠져나와 내가 걷기 꺼려하는 고속도로를 생쥐 마냥 쪼르르 건너고 우비를 쓴 채 차도를 지나니 어떤 여성 운전자가 나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작지만 이름 모를 이의 응원에 힘이 났다. 한국 같으면 쌍욕을 들어야 했을 지도 모른다. 보행자 우선이라기보다 차가 우선인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더군다나 비 오는데 우비를 쓰고 고속도로 갓길을 걷는 사람을 보면 순례자고 자시고 간데 미친 사람 취급 받지만 스페인 까미노에선 응원을 받는다. 나는 우비를 쓰면 정말 우스운 모양이 된다. 가방까지 같이 씌우니까 산을 지고 비닐을 쓴, 정말이지 우스운 꼴이 되는데 나는 편하다! 발이 아프면 십 칠키로만 걷고 중간 알베르게에 머무르려고 했으나 열두시에 도착 점심을 먹고 기력을 차린 다음 더 가기로 했다. 문제는 다음 20km 구간 동안 마을이나 바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루 쉬어서 다행히 부은 발은 좀 가라앉아서 다시 더 걸어가기에 무리 없는 결정이었다. 출발은 좋았으나 마을에 도착하는 동안 표지판 거의 없어서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이 안됐다. 게다가 비 때문에 길을 걸을 때마다 진흙이 달라붙어 발이 계속 무거워 지다가 나중에는 신발이 두 배는 커졌다. 젠장!! 고속도로 옆길과 때로는 건너는 길이 있는데 반쯤 가니 강이 넘쳐흘러 길을 돌아가야 하는 상황까지 맞닥뜨렸다. 비오는 고속도로 길은 정말 싫었다. 경적을 울리며 지나는 대형 버스 기사 한 놈도 싫었다. 다른 사람들은 배려하면서 지나가던데 그 놈만 그랬다. 까미노 루트는 오르락내리락하지, 길이 하나라 쭉 뻗어 있긴한데 표지판은 대충이지, 걷다 비가 와서 온몸은 축축하지, 내 애정하는 지팡이 윌리는 없지, 비가 오니 앉을 데도 마땅찮기까지 해서 속 깊은 곳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빗속에서 욕을 한껏 외치고 나니 웃음이 나왔다. 혼자 미친 사람처럼 사투를 벌이며 마지막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지나 오늘의 목적지 엘 꾸보El cubo에 마침내 도착했다. 엘 꾸보에 도착해 정신을 차리고 쉴 곳을 잡으니 한결 정상인의 심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 각 숙소에는 방명록이 있는데 순례자들이 하루 종종 자신의 이야기를 각 나라 말로 적어 놓는다. 숙소에서 그걸 읽는 재미가 있다. 알베르게 주인에게 이전 한국인이 적고 간 방명록을 번역해주었다. 이전 한국인이 뭘 썼는지 당최 궁금해 하며 나에게 물어보더라. 방명록에는 여기 도착하는 길이 다들 힘들었다는 내용이 많았다. 나만 오늘 그 사투를 벌인 게 아니라니 지나간 이의 글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다른 내용은 여기 주인이 친절했던지 칭찬과 고마움 일색이었다. 오늘 걷는 도중 싸모라Zamora에 벌써 도착한 레미가 내 발과 안부가 궁금해 전화를 해왔다. 흐잉! 보고싶고 걱정해주어 고맙다. 내일은 마침내 싸모라에 도착한다. 내일도 비가 온다는 소식이지만 걸어야지... 싸모라까지 걷고 세비야로 내려 가야한다. 며칠 전 허허벌판에서 로마인이 만든 길을 걷고 있을 때 누가 전화를 해왔다. 내가 세비야에서 한 달 지내면서 스페인 구직자 게시판에 이력서를 올려놓았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시골길이라 살라망까에 도착했을 때 호세라는 사람에게 다시 전화를 해서 인터뷰 날짜를 잡았다. 내 은의 길 일부가 마무리 되고 있다. 힘들었는데 위로 받았다는 느낌이 오늘 내내 들었다. 내일도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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