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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2 -길. 나는 깨끗하고 맑은 물이다. 깨끗하게 맑게 자신있게, 당당한 백수다. 3학년으로 업그레이드 되면서 내 삶도 업그레이드 해야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을 갖고서부터 나의 아침은 양심상 조금 일찍 시작되고 있다. 오늘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저 언덕 너머에 울려퍼지는 닭 소리보다 내 알람 소리가 먼저였다. 아, 그렇다고 시골감성 여인네는 아니지만 한적한 경기권 특성상 나름 자연주의 아침을 맞이하는 순간이 꽤 잦은 편이다. 이른 아침은 뿌듯함 수치를 만땅으로 올리지만, 내 눈은 항상 어둠과 밝음의 경계를 아슬하게 넘나든다. 시리야, 오늘 날씨 좀. 네 오늘은 덥고 습하고 어쩌구 비가 옵니다. 그렇구나. 중력을 거슬러 무거운 몸뚱이를 겨우 일으켜 세웠다. 적당히 각 잡아 이불을 개어두고 방구석에 널부러진 추리닝을 주섬주섬 입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또 이 와중에 피사의 사탑 마냥 아슬아슬한 내 무릎 관절도 심히 걱정되어 보호대도 알차게 장착했다. 밖으로 나오니 하늘은 회색빛을 머금고 있었고, 잔잔하게 비가 내려왔다. 매일같이 걷는 이 길 위, 어제 하늘은 푸르고 청량감 가득한 색이었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어르신들, 풀 뜯으며 이쪽저쪽 뒤뚱거리며 걷는 오리들, 우렁찬 풀벌레와 새소리가 울려퍼지는 그런 아침이 길 위에 펼쳐졌다. 오늘은, 길 위에 울적하고도 슬픔이 뒤덮여 있었다. 한적하고 고요했고, 마치 그 고요함을 알리려는 듯 저 멀리서 작게 들리는 소리마저 가까이에 있는 듯 했다. 날씨 하나 달라졌다고, 이렇게나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니 네가 많이 쓸쓸해보이는구나, 허전하구나. 사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누군가 잠시 들렸다 가기도 하고, 좀 좋아보이는 날에는 너나 할거없이 여기저기 소문듣고 찾아 오기도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니 세상이 이렇게나 좁다고? 할 정도로 작고 사소한 연결고리가 어떻게든 닿아있는 사회에서 우리는 누군가와 연을 이어간다. 그렇게 하나의 원 안에 나 그리고 나와 연결고리가 있는 것들을 모조리 집어 넣어 그 자체를 ‘나’로 받아들이곤 한다. 그러다 만약 돌부리에 걸려 원이 찌그러지거나 담겨져있던 요소들이 하나씩 빠져나가는 순간 우리는 공허함을 느낀다. 원 안의 나는 그대로 있고, 존재함에도 틀어져버린 형태와 관계로 힘들어하고 지치기도 하며 슬퍼하기도 한다. 떠나가버렸다고 찾아주지 않았다고 끝내 좌절하고 무너진다.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조금씩 그 모양을 달리할 수 있더라도 변한 것은 없다. 나는 나 자체로 존재하고, 사실 그게 전부다. 그렇기에 화창하고 좋은 날의 장면만 나로 기억하기 보다는, 우중충하고 흐림 가득한 날의 장면 또한 나로 여기며 그런 날에도 결을 같이 하는 모든 것을 감사히 여겨 그 가치의 무게에 한 그램 더 얹어보는 것이 어떨까. 슬퍼하고 아쉬워하며 마음다칠 필요 없다. 내가 오롯이 나의 편에 서 있다면 언제라도 또 다른 연결 고리를 만나는 날이 찾아온다.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시선을 달리하면 또 다른 내가 보인다는 사실을 잊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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