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성과는 좋았는데, 인센티브는 왜 이 정도?
최근 일부 기업에서 발생한 성과급(이하 '인센티브') 이슈를 통해 기업 임금체계 실행에 대한 직원의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국내 기업 중 직무 중심 인사관리를 선도적으로 실행하는 글로벌 기업에서 발생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기업의 임금체계는 고정급과 변동급으로 나뉜다. 고정급은 누적적인 계약연봉, 변동급은 비누적적인 인센티브가 대표적이다. 기업이 인센티브를 지급하기로 했다면 통상한 해 동안 거둔 이익일부를 재원으로 설정하여평가결과에 따라 개인별로 차등 지급한다. 이익배분Profit Sharing제도다.
인센티브의 속성
경영학에서 말하는 인센티브란 전사-집단-개인의 성과창출을 위해 성과주의 강화, 조직 목표달성, 직원의 참여와 몰입을 유도하는 보상의 한 유형이다. 그러나 기업 현장에서 관찰되는 인센티브는 연례적-정기적으로 시행되는 연봉인상과 함께 관행적으로 지급되는 임금 성격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직원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기업이 달성한 성과보다 그동안 받아온 인센티브 규모와 추이, 그리고 향후 지급 여부에 더 큰 관심을 두는 것이다.
<그림 1>에서처럼 기업 보상구조를 총 보상Total Compensation 관점에서 보면 인센티브가 갖는 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인센티브는 고정급이 아니므로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따라 운용된다. 기업이 이익을 인센티브로 지급하지 않고 중기 경영계획에 따라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금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유다.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아도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성장 가능성 제고에 따라 직원의 고용 안정성이 높아지는 효과를 거두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직원의 시각에서 인센티브 지급에 대한 유불리를 판단하기 쉽지 않은 이유다. 법원도 인센티브는 근로의 대가로 보기 어려우며, 기업 경영상의 결정사항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기업은 인센티브 재원 산정을 위해 보상지표를 활용한다. 세전이익과 경제적 부가가치가 대표적이다. 기업활동의 실질적인 성과를 강조하는 EVA 사용이 증가하는 추세다. 보상지표는 재원 산정의 준거지만 그 기능에는 한계가 있다. 업종, 업황, 경쟁, 규모, 재무구조, 투자계획, 인적구조, 조직문화, 정부정책과 같은 유동적 요인이 산정 과정에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센티브 결정 기준-과정의 공개는 사실상 불가하므로 재원 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인센티브의 개선
인센티브 실행의 전제는 전사 이익이다. 인센티브 재원은 단위조직별 평가결과에 따라 배분되며 단위조직은 직원 개인별 평가결과를 반영해 차등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직과 직원 평가결과가 모두 반영되나 분배에 관한 공정성과 형평성을 중시하는 조직문화로 인해 차등이 크지 않은 방식이 정착돼 왔다. 인센티브가 성과향상을 유도하는 직원의 동기와 얼마만큼의 인과관계가 있는지 논란이 지속되는 배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센티브 제도가 갖는 본질적인 기능의 실행을 강조하는 방안을 연구-시도하는 대기업 사례가 있어 주목된다.
단위조직의 생산성 향상, 비용절감, 업무 프로세스 개선을 통한 성장 과정에서의 직원 몰입과 참여를 강조하는 가칭 '성장-참여 인센티브Growth-Contribution Incentive'가 그것이다. 단위조직이 예산과 이익을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독립채산제 개념이 중심에 있다. 참여기반 성장목표를 초과 달성하면 기존 이익배분 대비 파격적 수준의 인센티브를 지급하고,미달하면 위험배분Risk Sharing에 따라 기본급 삭감까지 가능하도록 운영한다. 물론 위험배분 적용에 따른 근로조건 저하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제도 시행을 위한 직원 동의 절차는 필수다.
직원의 참여와 몰입 수준을 높인다는 점에서 신기술 연구개발, 신규상품-서비스 개발이나 론칭, 단기적 시장 점유율 확대와 같은 핵심성과지표를 가진 기업에 적합하다. 빠른 성장이나 작은 성공이 시급하게 요구되는 단위조직이나 기술기반 기업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인사제도와 그 실행이 갖는 본질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대기업의 자체 인사 전문가조직HR CoE을 중심으로 한 노력은 다른 기업의 인사제도 개선과 실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임금체계의 본질
이번 인센티브 논란이 기업 임금체계 운용의 불투명성이나 직원과의 의사소통 부족, 이른바 MZ 세대만이 가진 성향이나 특징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하는 일부 전문가의 지적에도 나름대로 일리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성원의 잠재적 인식Tacit Assumption을 내재한 조직문화를 투영하는 인사제도 실행에 수반하는 현상을 비평할 때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해당 기업의 임금체계 변화관리 과정과 추이를 세심하게 지켜보지 않았다면, 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관련 현상을 올바르게 파악하고 분석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임금체계란 경영진이 조직구성원인 직원이 사고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에 대해 보내는 메시지다. 임금체계 실행 과정에서 문제나 이슈가 발생한다고 해서 특정 세대나 집단을 위해 제도를 변경할 가능성은 없다. 일부 조정한다 해도 임금체계의 본질과 방향성은 바뀌지 않는다. 반면에 경영진의 메시지는 모든 직원에게 똑같은 내용이나 의미로 도착하지 않는다. 개인의 실력과 성과, 역할과 책임, 직무 전문성, 조직 충성도, 조직 기여도, 일을 통한 학습과 성장 체화도, 육성 잠재력, 업무 몰입도 수준에 따라 다르게 인지될 뿐이다.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매출이 오른 일부 기업들이 인재확보를 명목으로 전 직원 기본연봉을 파격 인상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직원에게 더 좋은 보상을 준다고 하는데 이의는 없다. 단, 해당 기업은 인센티브 논란 발생 기업과 유사 업종이라는 점에서 직원의 보상 불만 표출 우려에 대한 대증적 결정만은 아니기를 바란다. 감당하겠다고 판단한 후유증은 정책 발표 순간부터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낮은 경쟁기업,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이 오롯이 받게 된다. 고정급 인상이라는 점에서 수당과 퇴직금 인상까지 고려하면 시간의 문제이지 후유증의 파급력은 예상보다 클 것이다.아무쪼록 이번 논란을 계기로 경영진과 직원 모두가 기업 임금체계의 본질에 관한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고 성과와 분배가 가진 의미, 특히 성장과 참여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발전적인 과정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팬데믹과 같은 상황이 또다시 다가와 우리 기업과 직원이 오랜 기간 기울여 온 노력과 성과에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아침이다. 필자만의 쓸데없는 걱정이기를 바란다.
글.구정모 목원대학교 경영학과 조교수해당 기사는 HR Insight 2021년 4월호 기사를 재편집하였습니다.
인살롱 in 인살롱 ・ 2021.05.24 Wanted Con. Future of HR (EX, D&I, DT, ESG, HRA) 6/22 최초 공개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HR이 주목하는 5개 주제 (EX, D&I, DT, ESG, HRA)를 선정하였고, 15개의 강연과 5개의 패널토론으로 알차게 구성했습니다.마이크로소프트, 3M, SK, KT, 유한킴벌리,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사례를 통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보세요!아래 이미지를 클릭하면 신청페이지로 연결됩니다.
인살롱 in 인살롱 ・ 2021.05.25 초보 면접관이 하는 소소한 실수들.
스타트업에서는 동료를 채용하기 위해 저 연차이신 분들도 면접관으로 참석한다. 오늘은 그들이 초보 면접관으로 경험하였던 소소한 실수를 말씀드리고, 이후 좋은 면접관이 될 수 있는 간단한 팁을 드리고자 한다.
0. 면접 전날 면접관과 질문 리스트 공유하기!
면접관으로 처음 참석하게 되면, 주도하는 역할보다는 관찰자(옵저버) 역할이 대부분이다. 초보 면접관의 질문 순서도 서두보다는 말미에 차례가 온다. 후보자 이력을 검토하다 보면 면접관들이 각 후보자에게 궁금한 내용은 보통 비슷하다. 만약 면접 서두에 다른 면접관이 내가 준비한 질문 리스트를 질문하여 어느 정도 후보자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가 된다면, 나의 차례에서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가 있다. 실제 현장에서는 이런 난처한 상황이 꽤 발생을 한다. 그러니 면접 전에 호기심을 갖고 미리 동료 면접관과 질문 리스트 공유하시는 방법을 추천한다.후보자가 채용이 된다면, 가장 업무 접점이 많은 사람은 일개미인 나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1. 질문은 물음표보다는 마침표로 당당하게! (feat. 억양)
면접 관련 가이드를 보면 후보자에게 질문의 길이는’ 가급적 짧고 중립성 있게 해라‘ ‘좋은 답변을 얻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해라’의 문장을 들어 보셨을 거다. 그렇다면, 실제 면접에서 초보 면접관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무엇일까? 정답은. ‘질문 문장의 말끝이 흐리고, 명확하지 않게 질문을 한다.’이다.면접이라는 공간은 면접관 또한 긴장이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면접관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본인 머릿속에는 자리 잡고 있지만 긴장하여 호흡과 억양이 엉망이 되기도 한다. 이 상황의 팁으로 질문을 물음표보다 마침표로 마치는 것을 제안 드린다..예시. 물음표? ) 00님. 회사를 선택하실 때 우선순위가 무엇인가요? 마침표! ) 00님. 회사를 선택하실 때 우선순위 3가지만 말씀 부탁드립니다. 문장의 끝을 마침표로 마무리한다면, 후보자/면접관 모두가 명확한 질문과 답변의 흐름을 이어 갈수 있을 것이다.
2. 허를 찔러라!
후보자들은 심리적으로 본인이 이력을 작성할 때 업무 기여도가 높은 것을 서두에 기여도가 낮을수록 뒤에 작성할 확률이 높다. 기여도가 높은 것은 주도적으로 본인이 업무를 하였기에, 대답을 잘 풀어갈 수 있지만 기여도가 낮은 것은 업무 참석에 가까울 수 있다. 우리가 다양한 경험을 가진 후보자가 필요하여 서류 합격을 드렸다면, 기술서의 중간 혹은 마무리에 기술된 것을 질문하여 역량 파악을 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린다.구글에서는 면접을 잘하기 위해서 면접 시 아래와 같은 가이드를 주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 보다 그리고 ‘우리’보다 나은 사람을 채용하자. 추가적으로 내가 스스로 이해하고 적용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헛둘. 하나) 팀에 없는 역량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파악하기. *둘) 역지사지로 내가 후보자로 면접을 보았을 때, 받았던 질문 생각해 보기.*한 기사에서 스타트업 채용은 ‘1억짜리 의사결정’이라는 문구를 본 기억이 있다. 계산법은. 4천만 원(평균 연봉) .2.5년(평균 근속연수)= 1억. 정확한 내용이 아닌 누군가의 생각으로 한 계산법이다. 스스로 주도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스타트업 열차에 탑승하였다면, 면접관으로써 좀 더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 (열차에 어렵게 탑승하였는데, 꼬리 칸보다는 머리 칸으로 가야 하지 않겠는가…)
인살롱 in 인살롱 ・ 2021.05.26 내가 아는 단어가 나의 세계다 - 김영하와 옥스퍼드 사전 그리고 우리
태초부터 존재하는 단어는 없다“우리가 쓰는 단어를 누가 만들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어느 날, 지인에게 물었다.“사전에 모두 있잖아요.”“사전 속 단어를 만든 사람이 누구겠냐는 질문입니다.”“원래 있던 단어를 사전이 정리한 거 아녜요?”“처음부터 존재할 수가 없죠. 모든 단어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창작물일 테니까요. 만들어지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테고요. 우리말에서도 인터넷이라는 말은 20세기 이전엔 없던 단어잖아요.”“그러네요. 단어를 누가 만든 거죠?”그렇다, 적잖은 사람들이 단어를 원래 존재했던 것처럼 대한다. 비단 단어뿐일까. 사전에 대한 인식도 비슷하다. 옥스퍼드 사전 편집장, 존 심프신은 자신의 책 『단어 탐정』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했다. “사람들은 사전이 누군가가 쓴 책이라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다.” 스스로 존재하는 신이나 자연이 아닌 이상 모든 것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대체 누가 단어를 만드는 걸까?옥스퍼드 영어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 OED)은 영어권에서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자랑한다. OED가 특별한 위상을 차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단어의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단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어떤 연유로 뜻이 바뀌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가령, ‘세렌디피티(serendipity)’를 이렇게 설명한다.영단어 세렌디피티는 누가 만들었을까“serendipity는 ‘뜻밖의 기분 좋은 발견을 하는 능력’이다. 이 단어의 역사 또한 뜻밖이다. 이 단어는 18세기의 문인이자 미술 역사가였던 호레이스 월폴에 의해 영국에서 만들어졌다. 그는 총리 로버트 월폴의 아들이고 고딕 소설 『오트란토 성』(1764)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serendipity는 월폴의 소설보다 최소한 10년은 일찍 나왔다. 그는 1954년에 친구 호레이스 만 경에게 쓴 장문의 편지에서 카펠로 가문과 메디치 가문의 연관성을 우연히 발견한 사실을 언급하며 ‘이 발견은 내가 serendipity라고 부르는 그런 것이라네’라고 말했다. 예전에 ‘『세렌디프의 세 왕자』라는 동화책’을 읽었는데 ‘왕자들이 항상 우연히 혹은 총명함 덕분에 뜻밖의 발견을 했다’고 그는 설명했다.”세렌디피티는 한 문인에 의해 만들어졌다. 탄생한 지 300년이 안 되었으니, 언어의 역사에 비추면 최신의 단어다. 옥스퍼드 사전의 특징과 매력을 체험케 하는 정보다. 모든 사전이 언어의 창조자나 탄생의 기원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대개의 사전 편찬자들은 단어를 수집하여 정의하는 사람이지 단어의 창조자는 아니니까.영단어 세렌디피티를 만든 호레이스 월폴은 낯설겠지만, 우리는 그보다 훨씬 많은 단어를 만들어낸 작가를 알고 있다. 셰익스피어! 이 위대한 작가는 수많은 영어 단어를 만들었다. 험담의 의미를 담아 Gossip이란 말을 처음 썼다. 으스대면서 걷는다는 뜻의 Swagger, 기이하거나 섬뜩하다는 뜻의 Unearthly를 만든 이가 셰익스피어다. Hint, Excellent, Countless, Hurry, Lonely 등도 그의 창작물이다. 그의 창의성에서 빚어진 속담이나 관용구도 많다. 반짝이는 것이 다 금은 아니다(All that glitters is not gold),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Frailty, thy name is woman), 별로 달갑지 않은 위로(cold comfort) 등등.새로운 단어를 창조한 작가들우리나라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으리라. 문학평론가 김화영 선생과 김영하 작가가 나눈 대담이 흥미롭다. 김영하의 단편 <피뢰침>에 대한 대화다. (김화영 엮음, 『한국 문학의 사생활』, 문학동네, 2012, p.129~131)김화영 : 제가 개인적으로 김영하 씨를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분이 전기과 출신인가 싶을 정도로 전기 계통에 밝으신 것 같습니다. (중략) 제가 아주 깜짝 놀란 것은 피뢰침과 낙뢰에 관해, 전에 제가 못 들어본 표현들이 즐비하게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전격 세례, 탐뢰 여행, 선단 방전, 전문, 열뇌, 적란운 형성, 접지 전극, 운간 방전.’ 저는 이런 말이 있는지조차 몰랐던 어휘들이 수두룩할 정도로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하고 있어요. 사전에 조사를 많이 하셨습니까?김영하 : 벼락이 많이 치던 어느 날, <피뢰침>이라는 소설을 착상하게 되었는데 제 처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그냥 웃더라구요. 번개라는 것은 진지한 소설의 주제나 모티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때문인지 그럼 한 번 해봐야지, 하는 투지가 생겨서 벼락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공부해보니 상당히 흥미로운 용어들이 많이 있더군요. 제가 모르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제 소설에 나오는 ‘전문’은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사람이 번개를 맞으면 전기가 지나간 길이 남게 되거든요. 이 중에서 ‘전격 세례, 탐뢰 여행’ 같은 어휘는 예전에 언급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제가 만들어냈습니다. 만들어놓고 보니까, 그럴듯해서 저도 좀 흡족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쨌든 여기서만 비밀을 알려드리자면, 『동아세계대백과사전』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작가들이 캐릭터나 이야기만 창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신조어도 만든다. 사상가이자 작가였던 키케로는 후마니타스(humanitas)라는 라틴어를 새로 만들었다. 영어권으로 건너가 인문학(humanities)의 어원이 된 바로 그 단어다. 프로그래밍 언어 중 가장 난해하다고 달려진 ‘말레볼제’라는 언어가 있다. 이는 단테의 『신곡』에서 온 단어다. “지옥에 말레볼제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지옥편 제18곡) 『신곡』을 옮긴 박상진 교수에 따르면, 말레볼제는 단테가 만든 단어로 ‘사악한 구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세렌디피티나 후마니타스는 들어봤지만, 말레볼제나 탐뢰 여행은 처음 들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작가들이 만든 단어들 중 영원한 생명을 얻는 단어가 있는가 하면, 세월과 함께 사라지는 단어도 있을 테니까. 주목하고 싶은 사실은 현재도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단어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단어를 만드는 또 다른 창작자들소설가와 시인들만 단어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단어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은 우리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었으리라. 옛 지명은 대표적인 예다. 전국의 지명이 한자어로 바뀌기 전, 우리말로 명명된 지명들 말이다. 가령 전국에 족히 수십 개는 존재할 ‘잣고개’라는 지명을 살펴보자. 서울에서 멀지 않은 양평군 옥천면에도, 남양주시 진접읍에도 잣고개가 있다. ‘잣’은 성(城)을 뜻하는 옛말이다. 한자어인 성산(城山)을 우리말로 표기하면 잣뫼가 되는 것이다.옛사람들은 지형적 특성으로 지명을 짓곤 했다. 두 개울이 합쳐지는 곳의 지명을 ‘합수머리’ 또는 ‘두물머리’라 지었다. 큰 돌이 서 있기라도 하는 동네는 ‘선돌마을’이 되었다. 한자어로는 입석마을이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산성의 나라다. 남한에만 1,200여 개의 산성이 남아 있기에 하는 말이다. 산성을 곁에 둔 고장은 이를 활용하여 이름을 지었다. 잣고개가 그 예다.잣나무가 많은 동네도 잣고개가 되지만, 산성이 있어 잣고개가 명명하기도 했다. 실제로 양평 옥천면의 잣고개는 함왕산성 들머리에 위치하고, 남양주 진접의 잣고개 역시 퇴뫼산성을 끼고 있다. 누가 선돌마을 또는 잣고개라고 이름 지었을까? 간혹 지나가던 선비가 지어주기도 했겠지만, 그 고장 사람들이 짓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새로운 시선과 질문을 안기는 인식단어는 자연이 아니다. 누군가의 창조물이다. 나에게는 단어가 창조되었다는 인식이 참으로 소중하다. 거의 모든 단어를 당연하게 생각하던 나의 지적 게으름에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기 때문이다. 나아가 단어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제는 어떤 단어도 당연하지 않다. 동네마다 고장마다 그곳의 지명을 예사롭게 여기지도 않는다. 단어가 창조물이라는 인식은 때때로 물음도 안긴다.성남시의 ‘분당’은 정치계도 아닌데 어떻게 저런 이름을 갖게 됐을까? (이는 그리 어려운 물음이 아니다.) 문학과 철학 중 어느 쪽이 단어의 창조에 더 기여할까? (예상보다 여러 차원으로 접근해야 하는 질문이었다.) 다른 지명들과 달리 왜 서울은 한자어가 없지? (이 물음 덕분에 ‘서울’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우리말 지명임을 알게 되었다. ‘서울’이란 지명의 기원을 공부하는 과정이 짜릿했다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호기심이나 질문을 부르는 인식은 실로 고맙다. 열정적이거나 자발적인 물음이야말로 지식과 배움의 왕도일 테니까. 단어는 창조물이라는 인식은 그래서 소중하다. 아직 또 하나의 반가운 사실이 남았다. 단어는 시시한 창조품이 아니다. 놀라운 창작물이다. 단어들이 모인 언어의 세계는 바다처럼 심오하고 원대하다. 가히, 하나의 단어는 작은 우주다. 이를 깨닫고 난 후 새로운 믿음이 생겼다. 우리가 아는 단어만큼 우리의 세계가 넓어진다!
인살롱 in 인살롱 ・ 2021.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