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정년은 싫지만 너무 늦었나… 어느덧, 빠르면 내부에서 임원 승진을 하거나 외부로도 C-급 이직이 아니면 힘든 시점이 된 듯하다. 역량적 전문성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고 그로써 부서장까지도 맡았지만 그 위는 전문성이나 역량이 꼭 업계 수위권이라 해도 그것만으로는 해결되지 못하는 게 많다는 느낌이 크다. 큰 기업에서 부서장까지 한 상황이라는 게, 다른 데서 받아들이기가 상당히 어려운 듯하다. 게다가 이렇게 보직자급을 스카웃 형태가 아니고 내가 일일이 어플라이해서 간다는 거도 어떻게 보면 우스운 가정 아닐까도 싶다. 정말 귀한 자리는 주변에서 알음알음으로 가게 되는 거 아닐까, 일 잘한다는 인정은 어디서나 받아도 그게 전문직무의 기술성 측면이지, 전반적으로 볼 때 어디서 오라는 데가 없을 만큼, 인맥이네 네트워킹이네 신경을 못 쓴 게 어쩌면 경력관리에서 최대 실패인 거 같다. 그보다도 내가 최고의 전문가가 되지 못하고서야, 어디 인맥이고 네트워크고 무슨 소용이 있다고 명함을 내밀겠는가 하는 생각이 크다 보니, 개인 역량 개발에만 너무 치중했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직을 하기도 창업을 하기도 참 어정쩡한 상황에 놓인 거 같다. 창업도 당연히 실패라는 경험을 여러 번 할 수밖에 없을 텐데, 진작에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너무 때늦은 시점이라 보여서다. 더는 성장이 없거나 크지 않을 현 조직은 떠나야 할 때가 되긴 한 듯한 건, 더 있는 건 인생 낭비란 생각이 들어서다. 주변의 혹자들은 정규직이 보직까지 달고도 왜 떠나려고 하냐는, 그 나이에 어딜 가겠냐는데 역시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연봉 상승이 안 되고 그대로 맞추어서 간다 해도 대기업이고 스타트업이고 임원급으로 가지 않는 한 맞춰주기 어려운 수준의 회사에서 다니고 있으니. 그래도 새로운 도전에 목마르다. 하지만 참으로 모호한 상황에 빠졌다, 과연 나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찾을 수 있을까? 나이도 직급도 심지어 보상도 크게 개의치 않고 내가 그동안 축적한 역량과 전문성을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발휘하면서 조직과 동료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면 전혀 마다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많은 사례들이 누적되면서 뭐가 문제인지 점점 고민에 빠진다. 아무래도 나도 한국 사람인지라, 나는 개의치 않는다지만 거꾸로 상대방에 의구심이 든다, 수평적인 문화를 추구한다지만, 결국 나이를 고려한다든지 유교적 문화의 지배에서 아주 자유롭지 못한 건 아닐까? 난, 진짜 상급자가 나보다 제법 어려도 상관없는데, 막상 사람을 받아야(?) 하는 그 '상관'의 입장에서 안 그렇기도 한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기도 한 듯하다. 고민의 무수한 면면 중 하나일 뿐이다. 또 한편으론(역시 여러 고민의 양상 중 하나일 뿐), 고민이 깊으면 망상이 된다고 했던가, 너무 장기간, 필요 이상의 깊이로 쌓인 전문성조차도 잉여적인 부담이 되는 걸까? 즉, 조직에서 필요한 역량은 그만큼이 아니므로 더 나은 비용으로 더 적합한 인재를 찾을 수 있다고 조직에서 판단한다면, 굳이 베테랑을 요하지 않는? 또 베테랑이라는 경쟁력은 윗선에는 조직사회적, 정치적 부담이 되는 건가? 그럼, 심지어 주니어라면 2명이나 그 이상이 필요한 역할을 모두 할 수 있다고 역제안하면 그나마 나을까? 이쯤이면 망상도 가지기지일까? 뭐 이런 고민으로 산다. 상대적으로 더 나은 조직문화 속에서 일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오래 일해 보니 결국은, 핵심은 조직문화다, 이걸 많이 느낀다. 댓글 등으로 어떤 조언도 고맙게 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