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비효율적인 건 어때요?>
1. 좋으니까, 라는 말이 제일 어렵더라고요
"연애를 왜 합니까? 돈 쓸 일만 있는데. 좋으니까. 낭만이란 그런 거예요"
웹툰 작가 김풍이 한 말이에요. 짧고 정확해서 반박이 잘 안 돼요. 특히 저 '좋으니까'라는 네 글자가 유독 마음에 걸리는 건, 제가 매일 스타트업 생태계를 들여다보는 기자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사실 스타트업 씬은 대기업보다 훨씬 낭만적인 곳이거든요. 창업자들한테 "이 힘든 걸 왜 시작하셨어요?" 물어보면, 꽤 많은 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그냥 이 문제 푸는 게 너무 좋아서요"라고 해요.
근데 그 낭만도 투자자 테이블 위에 올라가면 어쩔 수 없이 엑셀표의 함수로 변환되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ROI가 얼마인데요?" 날 선 질문들 앞에서, '좋으니까'는 엑셀표의 함수를 망가뜨리는 불량 데이터 취급을 받기 일쑤거든요.
저도 대표님들 만나면 "흑자예요?", "비용 효율화는요?" 따지는 사람이에요. 근데 그건 일이고, 사실 저도 알고 있어요.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건 반짝이는 눈으로 말하는 창업자들을 만나는 게 좋아서거든요.
그러니까 저도 결국 '좋으니까' 이 일을 하고 있는 셈이에요. 이걸 말하면 "팔자 좋네"라는 눈빛이 날아오기도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죠.
2. 낭만은 원래 버그가 아니었거든요
얼마 전엔 20대 직장인이 연애 고민을 AI 챗봇에 털어놓는다는 기사가 났어요. 기다림도, 눈치도, 상처받을 가능성도 없는 완벽하게 효율적인 감정 처리 방식이죠.
낭만(浪漫)은 '물결 따라 흩어지는 모습'이라는 뜻인데요. 최적화된 알고리즘 세상에서 목적 없이 흩어지는 물결은 그저 고쳐야 할 버그 취급을 받는 것 같아요. 파도가 매혹적인 건 흩어지기 때문인데, 요즘은 그 흩어짐을 용납하지 않는 세상이 된 것 같거든요.
역사를 보면 낭만은 언제나 효율이 인간의 숨통을 가장 세게 조를 때 터져 나왔어요. 산업혁명으로 사람들이 기계처럼 돌아가야 했을 때, 지쳐버린 유럽인들은 신화와 자연으로 도망쳤어요. 이게 18~19세기 유럽을 휩쓴 낭만주의예요.
이성과 효율이 세상을 지배하려 할 때, 그 밑에 눌려 있던 인간의 감정이 "계산으로는 설명 안 되는 것도 있다"고 밀어 올린 문화운동이었거든요. 배부른 취미가 아니라, 숨막히는 계산식 밑에 눌려 있던 마음이 조용히 터져 나온 것들이었는지도 모르죠.
3.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피곤한 거예요
올해 나온 2026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147개국 중 67위예요. GDP 순위는 25위, 기대수명은 3위인데도요. 열심히 일하고, 오래 살고, 돈도 버는 나라인데 행복은 67위예요. 잘 짜인 기계인데 부품들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어딘가 계산이 맞지 않는 느낌이에요.
프랑스 곤충학자 파브르를 생각해 봐요. 그는 길가에 엎드려 곤충을 관찰하다 동네 사람들에게 광인 취급을 받았어요.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지만 연구를 멈추지 않았어요. 이유는 하나예요. 곤충이 그냥 좋아서요. ROI 같은 건 없었어요.
그렇게 42년을 엎드려 있다가 만든 곤충기는 지금도 전 세계 아이들이 읽어요. 노벨문학상 후보까지 올랐지만, 프랑스 아카데미는 끝내 그를 회원으로 받아주지 않았어요. 뭔가를 끝까지 좋아한다는 게 이런 것일 수도 있어요. 인정받는 데 평생이 걸리고, 그래도 결국 남는 것들이요.
효율에 잡아먹힌 낭만을 변호하려고 글을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저조차 낭만의 쓸모를 논하고 있네요. 모든 걸 1.5배속으로 돌려보는 삶에서 벗어나자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이 사색도 내일 기사에 쓸 수 있겠지'라며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거든요.
오늘 헬스장 가서 스쿼트 10세트 했어요. 생각해보니 저도 매일 헬스장에 가는 게 낭만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무 ROI 없이, 그냥 좋아서 하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