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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또라이 말고 착한 능력자> 기자가 된 지 벌써 10년차입니다. 그래서 조금 알아요. "저 기자 성격은 개판인데 기사는 진짜 잘 써"라는 말이 얼마나 자주 면죄부처럼 쓰이는지를요. 저도 그 말을 한 적 있는데요. 이 글을 쓰면서 좀 찔렸습니다. 오늘은 그 면죄부에 이의를 제기하려 합니다. 긴 글이지만 잠깐만 읽어보실래요? 1. 손석희가 꺼낸 질문 방송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어요. 지난 3월 18일 MBC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손석희 진행자가 장항준 감독에게 말했습니다. "못됐지만 방송 잘하는 사람이랑 일할래, 착한데 방송 못 하는 사람이랑 일할래, 물으면 답이 한 가지로 나온다" 맞습니다. 거의 모든 업계에서 99% 전자를 택해왔어요. 영화계도, 방송계도, 제가 있는 스타트업계도, 언론도. 장항준이 이렇게 받아쳤습니다. "팀워크가 좋으면 작품이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는데, 팀이 나쁘면 무조건 실패한다" 한 인터뷰에서도 이런 말을 했어요. "아무리 재능이 출중해도 나쁜 놈이랑은 일하기 싫다. 그렇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리라 하는 마음으로 일한다" 이 말을 한 사람이 만든 영화가 1400만 관객을 모았습니다. 착하면서 잘할 수 있다는 거죠. 2. 그래도 능력이 너무 없으면 바로 반론 들어갑니다. 얼마 전 한 스타트업 대표가 저한테 이런 말을 했거든요. "인성이고 뭐고 일만 잘하는 사람이면 억대 연봉 주고 싶다. 결국 성과가 전부 아니냐" 뜨끔했어요. 시장이 돌아가는 걸 보면, 틀린 말이 아닙니다. 착하긴 한데 일을 너무 못하면 그건 그것대로 힘듭니다. 착함이 무능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어요. 근데 저는 그 회사 아무리 잘돼도 그 대표 밑에서 일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부자가 되긴 글렀습니다. 따지고 보면 조직의 성과는 혼자 내는 게 아니잖아요. 못된 사람이 성과를 낸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있는 환경에서 팀이 성과를 낸 거예요. 그러면 질문이 바뀝니다. 능력 있는 사람을 뽑을 건지가 아니라, 능력이 잘 발휘되는 환경을 만들 건지로요. 한 가지 연구가 있습니다. 구글은 2012년 180개 팀을 2년간 연구했더니 성과가 높은 팀의 공통점 1순위가 천재의 수도, 학벌도 아니었습니다. "이 팀에서 실수해도 괜찮겠다, 솔직하게 말해도 안 잘리겠다"는 느낌이었어요. 편한 분위기에서 사람은 더 잘하게 됩니다. 능력이란 게 분위기 속에서 피어나기도 하거든요. 뉴질랜드 올블랙스 럭비 대표팀은 선발 기준에 '못된 놈은 안 뽑는다 원칙'(No Dickheads Policy)을 공개적으로 내걸었습니다.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팀이 성격으로 사람을 걸렀어요. 그리고 계속 이겼습니다. (승률 75% 이상) 물론 이걸 읽고도 "우리 팀에 그 사람은 예외"라고 생각하시는 리더들이 계실 수 있습니다. 그 판단도 존중합니다. 3. 그래도 리더들은 아직 스타트업 얘기가 나왔으니까요. '일에 미쳐 있고 또라이 같은데 똑똑한 사람'이 다 모였다는 스타트업들이 있잖아요. 어딘지는 말 안 하겠습니다. 근데 그 안에 예의 바르고 잔잔하게 일 잘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어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잘되는 걸 보고 싶습니다. 기사로 쓸지는 모르겠지만. 데이터도 있습니다. 리더십 연구자 프레드 킬 박사(KRW인터내셔널 공동창립자)는 7년 동안 CEO 100명과 직원 8000명을 연구했어요. 결론은 이겁니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사람을 존중하는 리더'가 이끄는 회사의 수익률이 '자기밖에 모르는 리더'가 이끄는 회사보다 평균 다섯 배 높았습니다. 다섯 배요. 착한 사람이 손해 보는 게 아니라, 더 많이 벌 수도 있는 겁니다. 못된 사람이 한 번 성공하면 그게 전설이 됩니다. 그 팀에서 말 못 하고 참다가 나간 사람들, 지쳐서 떠난 사람들 이야기는 기록에 남지 않죠. "인성이고 뭐고"했던 그 스타트업 대표도 아마 성과를 잘 낼 겁니다. 그 팀에서 착하게 팀에 기여하며 일하다가 떠난 사람의 이야기는 가려질 겁니다. 저는 또 그 회사의 성과와 업계의 환호 때문에 그 대표를 만나겠죠. 장항준 감독은 1400만 흥행 이후에도 "좋은 노인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천만 영화를 말하지 않았어요. 좋은 노인. 거창하지 않아보이는데, 쉬운 일도 아닙니다. 주변에 좋은 어른은 늘 소수거든요. 그런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제 성격부터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10년 만에 이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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