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ached to post
<대표님, 교수님, 그 글 아무도 안 읽습니다> 대표님, 교수님, 전문가님들. 그 완벽한 글은 바이럴이 잘 안 됩니다. 저도 이 글 쓰면서 좀 찔렸습니다. 기자니까요. 밤새워 다듬고 확인하고 맞춤법까지 교정한 그 근사한 글 있잖아요. 페이스북, 링크드인, 심지어 언론사 칼럼으로 기고하시는데요. 거의 아무도 안 읽고 있을 겁니다. 알고리즘이 그걸 보고 "오, 훌륭하군" 하면서 조용히 오래된 냉동고에 집어넣을 거예요. "오늘 진짜 개망했는데 들어봐요"로 시작하는 브이로그에 댓글이 300개가 달리는 동안요. 뭐가 문제인지 저도 대충 알면서 이 글을 씁니다. 논리 정연하게요. 1. 충주맨 김선태 충주맨 출신 김선태씨는 3월 3일 첫 영상을 올렸는데 47시간 만에 구독자 100만을 찍었습니다. 비연예인 한국 유튜버 역대 최단 기록이에요. 영상 길이는 2분 11초였고, 핵심은 딱 한 줄이었어요.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었다. 가장 큰 이유는 돈을 더 벌고 싶었다" 이게 전부였는데, 기업과 공공기관 300곳 이상이 댓글로 협업 의사를 남겼어요. 완벽하게 포장된 홍보 기획서 말고, 이 날것의 고백 한 줄이 터진 겁니다. 10년 동안 공들인 채널보다 퇴사 소감 2분짜리가 더 셌어요. 기자들은 이 사실을 열심히 기사로 쓸 겁니다. 거의 아무도 안 읽겠지만요. 나영석은 백상예술대상 수상 소감 첫 마디로 "죄송합니다"를 꺼냈어요. "연출을 좀 불성실하게 했더니 상을 주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불성실해서 상 받는 시대예요. (저는 성실하게 기사를 씁니다) 머니코믹스 니니는 슈카월드 직원인데 의식의 흐름대로 어록을 만드는 명언 제조기예요. "곱버스도 국장이다"는 주식 어록 수준이 됐습니다. 민음사TV는 세계 문학 해설보다 직원 안마기 추천 콘텐츠, 문과 출신의 박봉 하소연 숏츠 조회수가 더 높아요. 스레드는 인스타그램처럼 꾸미지 않아도 되고 잘 보일 필요도 없이 그냥 떠들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전 세계 월간 이용자 4억 명을 돌파했어요. 잘 보이려고 하면 할수록 안 보이는 법이에요. (제 기사처럼요) 패턴이 보이죠. 잘 만든 것보다 날것이 이깁니다. 2. 날 것 이 흐름은 사실 오래됐어요. 사람들이 꾸며지지 않은 것에 열광하기 시작한 건 처음이 아니죠. 90~00년대에도 서바이벌, 몰래카메라, 육아 예능 등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쩔쩔매는 걸 보고 싶은 욕구는 그때부터 있었어요. 그 욕구가 스마트폰을 만나 유튜브로 흘렀고, 개인 크리에이터 시대를 만나 더 파편화됐어요. 거기에 AI가 들어오면서 이 흐름이 급격히 가팔라졌고요. 2025년, AI가 생성한 글이 처음으로 인터넷에서 사람이 쓴 콘텐츠 수량을 넘어섰습니다. 이제 완벽하게 잘 쓴 글은 그냥 의심받아요. 기계 냄새가 난다고요. 저는 사람인데 저도 의심받는 것 같아서 좀 억울하긴 해요. 가끔 맞춤법도 틀리고 오타도 납니다. 인스타그램 CEO 아담 모세리는 2025년 마지막 날 20장짜리 메모를 올렸는데요. "진정성이 빠르게 희소한 자원이 되고 있다. '콘텐츠를 만들 수 있냐'가 아니라 '오직 당신만이 만들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냐'가 새로운 관문이 됐다"고 했어요. "완성도 높은 이미지를 만드는 건 싸고 지루해졌다. 불완전함이 이제 단순한 미학이 아니라 증거가 됐다"고도 했습니다. 뉴욕공대 마케팅학 교수 콜린 커크도 같은 말을 했어요. "소비자들은 점점 더 광고와 마케팅 메시지가 인간이 만든 건지 의심하게 됐다. 결국 사람들은 진짜 연결과 투명함을 원한다. 진정성은 언제나 최선이다"라고 했습니다. "돈 벌고 싶어서 나왔어요"라는 2분짜리 고백은 위조가 안 됩니다. 그게 지금 가장 비싼 콘텐츠예요. 그러면 언론은 어떡하죠. 저도 좀 내려놔야겠습니다. 근데 이 글마저 내려놓지 못한 것 같네요.
콘텐츠를 더 읽고 싶다면?
원티드에 가입해 주세요.
로그인 후 모든 글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