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니맨입니다. Journeyman은 주로 스포츠 분야에서 여러 팀을 옮겨 다니며 활동하는 선수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15년이 넘는 커리어 여정 동안 총 10개의 회사를 거쳤습니다. 길게는 6년 이상, 짧게는 한 달 정도 근무한 곳도 있습니다.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들어서 이리저리 옮겨 다녔냐고 물으신다면, 꼭 어떤 대단한 불만이 있어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상황에 따라 꼭 해보고 싶었던 일도 있었고, 죽을 만큼 괴로워서 도망쳤던 경험도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과거의 선택들이 후회되지 않냐고 물으신다면, 왜 후회가 없겠냐고 답하겠습니다. 안정된 직장, 인정받으며 잘 다녔던 곳을 떠난 후 찬밥 신세로 쫓겨나듯 나갈 땐 눈물이 찔끔 날 만큼 과거의 선택이 저주스럽게 후회됩니다.
비록 진하게 인간적인 후회가 있을지언정 저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배워야 했던 기술, 만나야 했던 사람들 덕분에 지금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상황이 대단히 만족스럽거나 흐뭇한 건 아닙니다. 매일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으로 다짐했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합니다.
한 회사에서 한 가지 역할로 오랫동안 커리어 여정을 묵묵히 걸어온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존경을 넘어 부럽고 시샘이 날 정도로 위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아버지 세대들 중에 그런 분들이 유독 많습니다. 30년 이상 한 직장에 몸 담으며 조직 성장을 위해, 또 가정과 자신의 삶에 성실한 걸음을 내디뎠던 분들입니다.
요즘 인재 추천을 위해 인재풀에 등록된 많은 분들의 커리어 여정을 보면, 유독 짧은 경력이 많은 분들이 눈에 띕니다. 1년 내외로 연속하여 팀을 옮긴 흔적을 보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측은해집니다. 인재 추천을 요청하는 기업은 잦은 이직 이력이 있는 분들을 선호하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에선 3개월이나 6개월 동안 일을 하고 1~2개월 정도 쉬는 문화가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물론 보수적인 유교 국가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서양 문화가 정착되려면 갈 길이 멉니다. 그러나 이미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한 회사에 오랜 시간 근무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대세인 듯합니다.
이직을 많이 경험한 저니맨으로서, 길고 짧은 경력을 모두 가진 사람으로서 근속 기간은 온전히 개인의 책임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근속 기간은 조직이 개인 구성원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서도 결정됩니다. 조직이 구성원을 방치하거나 동기부여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이직의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짧은 경력으로 커리어 여정이 험난하다고 느낄 이유도 없고, 왜 나에게는 평탄한 곳이 허락되지 않느냐고 궁시렁거릴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겐 주어진 역할이 있고, 그 목적을 따라 지금 잘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잦은 이직이 마치 커리어가 꼬여 보이는 것 같아도, 지나고 보면 긴 커리어 여정 중의 작은 점들이라는 것을 훗날 깨닫게 될 것입니다. 누가 왜 그리 많이 옮겨 다녔냐고 묻거든 여러분도 당당하고 뻔뻔하게 "그러게요. 다 이유가 있었네요. 그래도 지금까지 선택에 후회는 없고, 경험들 덕분에 지금 여기까지 왔네요"라고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