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코칭을 하다 보면 멘티 분들에게서 발견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부분 이미 답을 정해놓고 저를 찾는다는 점입니다. 즉, 저에게 구하고 싶은 도움은 정확히 '동의'입니다. 내 생각은 이러한데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오시는 것이죠. 자신의 소중한 커리어를 주도적으로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은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전남대학교에서 만든 '진로설계와 자기이해' 가이드북을 보면 자기 이해를 진로 개발의 시작점이자 자아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선행될 때 비로소 미래를 구체적으로 구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커리어 리서치'라는 웹사이트에서도 자기 인식이 높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자기 인식이 부족한 사람들보다 만족스러운 직업을 갖고 커리어 목표를 수립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고민하는 방식이 잘못 설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알게 된 어떤 직업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거나, 주변을 관찰해 보니 현재에 멋있어 보이고 미래도 유망해 보여서 선택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호기심과 직관적인 판단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호기심과 느낌 이후에는 철저한 자기 탐색을 통한 성찰이 필요한데, 이 과정이 생략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은 크게 6가지 항목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급여, 워라벨, 안정성, 흥미, 적성, 가치관. 이 6가지 항목에 대해서 철저히 따져봐야 합니다. 어떤 가치가 더 좋거나 우선순위가 높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을 정의하고 채점해보면 됩니다. 여러분은 이런 내용들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계십니까? 혹시 본인 스스로 엄청나게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죄송하지만 감히 딴지를 걸어보겠습니다. 아마도 본인에 대해서 1/10 정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무슨 근거로 그런 이야기를 하냐고 물으신다면, 지금까지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 제 자신을 비추어 봤을 때 내린 결론입니다.
조직심리학자 Tasha Eurich 박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95%의 사람들이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10-15%만이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안다는 것은 자신의 가치관, 열정, 강점, 약점을 아는 것입니다.
살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얼마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MBTI 검사 같은 자기 탐구 도구로 객관적인 진단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질문은 누가 대신 해주지만, 답을 결정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본인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자신의 모습이 객관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게 정말 어렵습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능력이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볼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모습, 내 마음, 내가 가진 능력, 무엇 하나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없습니다. 거울이라는 도구의 도움 없이는 내 모습을 볼 수 없고, 다른 사람의 입을 빌리지 않고서는 내가 가진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제대로 보지 않고 스스로 '난 이런 사람인 것 같다'고 판단하는 내용이 정확할 리 없습니다. 눈 감고 코끼리 다리를 더듬으면 기둥인지 벽인지 헷갈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족, 친구, 이웃과 함께 살며 이야기 나누고 교제하는 것이 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훌륭한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의 종류는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주변 사람들이 기뻐하는지, 이런 행동과 결과를 통해 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향, 경험, 가치, 관심 등을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당장 해야 할 일은 부모님, 형제, 친구, 주변 지인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서 물어보세요.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무엇을 하면 잘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묻는 것입니다. 추천하기로는 200명을 만나보세요. 주변에 200명이 없다고 하지 마시고,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하면 200명은 충분히 만날 수 있습니다. 솔직히 200명이라는 숫자는 창업자들의 스토리를 보고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창업자가 비즈니스 모델을 검증하는 데 보통 200명 정도를 만나 피드백을 받더군요. 우리도 진로를 찾기 위해 자신을 검증하는 데 창업자 이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어봐야 객관적인 자기 탐색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자기 자신을 탐색하여 이해하는 데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자기객관화, 메타인지 같은 것을 잘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런 게 가능하다면 애초에 시행착오나 방황이라는 말도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억지를 부리자는 게 아닙니다. 최대한 객관적인 자기 탐색을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라는 주장입니다. 우리에게 감사한 가족, 친구, 이웃이 있는 이유가 다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