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버스는 오지 않는다] 첫 회사를 4년만에 그만 두었습니다. 모아놓은 돈은 없었고, 4년차의 퇴직금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접근하기 쉬운 인터넷 판매로 사업 자금을 마련해 볼 생각이었습니다. G마켓, 옥션 등의 오픈마켓에서 잘나가는 아이템을 조사했습니다. 몇몇 아이템이 눈에 들어왔고, 선두 업체의 판매가와 판매량 등을 확인했습니다. 수입에 따르는 비용은 얼추 알고 있었던지라 중국 현지에 가서 도매원가만 확인하면 마진을 계산할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도매시장이 있는 중국의 이우로 갔습니다. 이우 도매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시장조사를 나온 한국 사람이 꽤 눈에 띄었습니다. 그때 형님을 한 분 알게 되었는데 베트남, 남미 등에서 수산물을 수입하여 한국에 유통하는 사업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이우 시장을 돌아다니며 한국에서 조사해 온 아이템들의 도매가를 알아보았지만 쉽게 마진 구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G마켓에서 해당 아이템의 1, 2위 업체들은 구매 단위가 커서 더 좋은 도매가를 받거나, 중간 도매상 없이 중국 현지 공장에서 바로 물건을 받아 그만큼 판매가를 낮출 수 있었습니다. 며칠을 돌아다녔으나 별 소득은 없었고, 풀이 죽은 채로 숙소에 돌아왔습니다. 호텔 로비에서는 그 형님이 먼저 조사를 끝내고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기 위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식씨, 좀 괜찮은 물건은 찾았어요?" "말도 마세요. 도매시장에서 제시하는 원가로는 도저히 마진이 안나오네요. 제가 할 수 있는 아이템이 하나도 없어요" "음.. 그랬군요…” 그는 좀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말을 이어 갔습니다. "동식씨가 아침에 눈을 떴는데 늦잠을 잤다고 해봅시다. 씻지도 못하고 옷은 대충 챙겨입고 막 뛰어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더니 운좋게 멀리서 회사 가는 버스가 오고 있는 거에요. 그 버스를 타면 간신히 지각은 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만원버스인 거에요. 버스 안을 들여다 보니 사람들 표정이 모두 죽을 상이고, 송곳 하나 들어갈 틈이 안보여요. 만약 동식씨라면 그 버스에 탈건가요?" "당연하죠! 지각 안하려면 어떻게든 타야죠." "그렇죠? 어떻게든 그 버스에 올라타야겠죠. 하지만 출입문 앞에 간신히 들러붙어 있을거에요. 어디 잡을 데도 없는 상태겠죠. 그러다가 정거장을 지날수록 사람들이 내리고 또 타는 과정에서 점점 버스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을거에요. 하지만 여전히 여유공간은 없겠죠. 그런 와중에 버스기사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아요. 사람들이 순식간에 앞쪽으로 쏠리면서 여기저기 비명소리가 납니다. 그런 혼란도 잠시, 1~2초 뒤에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겠죠. 앞으로 쏠리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그 짧은 순간에 동식씨는 어떤 행동을 하나요?" "음… 그냥 안 넘어지려고 어떻게든 버티겠죠?" "아마도 동식씨는 그 짧은 순간에 왼쪽 팔꿈치를 들어 올릴겁니다. 그리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을 땐 들어올린 팔꿈치만큼의 여유 공간이 생기게 되죠. 동식씨, 마진은 그렇게 만드는 거에요. 앞으로 사업을 하다보면 동식씨 앞으로 많은 버스가 올 거에요. 그 중 빈 버스가 오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렇다고 빈 버스만 기다리다가는 지각하겠죠. 어떻게든 만원버스에 올라 타야되요.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앞사람, 뒷사람을 밀쳐가며 그들의 마진을 뺐어와야 되요. 그렇게 조금씩 버스 안에서 여유공간이 생기면 이제 시야가 넓어져요. 어디가 좀 더 좋은 자리인지 보이게 되죠. 조금씩 의자쪽으로 자리를 이동하면서 좋은 자리를 확보하게 됩니다. 그렇게 계속 버티다가 운까지 도와주면 그땐 앉아 갈 수도 있는 거에요." 그땐 형님이 해주신 이 이야기가 '마진'에 대한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비유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힘들 것 같다고 미리 단념하지 않기. 기회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기. 기회가 왔을 때 행동하기. 저는 오늘도 만원 버스 안에서 부지런히 왼쪽 팔꿈치를 들어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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