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땅에 닿지 않는 공포]
저는 자영업을 10년 가까이 했습니다.
직장 생활도 대략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사업하는 거하고 직장에 다니는 거하고 어떻게 다른가요?"
그럴 때 제 군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는 섬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매년 여름이면 해변에서 2주간 전투수영 훈련을 받습니다. 수영 실력에 따라 조를 편성하는데, 저는 수영을 못하는 ‘앵커조’(앵커는 바다 속에 던져 배가 움직이지 않게 하는 쇳덩이로, 앵커와 같이 물속에 가라앉는다는 의미의 조이름)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훈련 첫날, 조교는 바다가 아닌 바로 옆에 있는 큰 물 웅덩이로 우리 앵커조를 이끌었습니다. 말이 물 웅덩이지, 해변가에 포크레인으로 실내 수영장 크기만한 웅덩이를 파서 물은 채워 놓은 곳이었습니다.
앵커조는 10명씩 줄을 지어 차례 차례 물에 들어 갔습니다. 흑탕물로 바닥이 보이지 않아 그 깊이가 걱정되었으나 예상과는 달리 물은 가슴팍까지만 채워져 있었습니다. 맨 앞에서 조교 한명이 외쳤습니다.
"조금씩 앞으로 전진합니다! 하나 둘, 하나 둘"
그리 깊지 않은 물 속에서 앵커조는 구호에 맞춰 조금씩 앞으로 전진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전진 속도가 느려지며 앞에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맨 앞열부터 차례로 한 줄 한 줄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처음 들어간 물의 깊이는 가슴팍이었지만 몇 미터를 더 들어가자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깊이까지 웅덩이를 파놓은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조교는 더욱더 악다구를 쓰며 빨리 앞으로 나오라고 재촉했고, 어느샌가 뒤쪽에도 여러명의 조교들이 배치되어 주춤거리는 대열을 발로 차가며 죽음의 물 웅덩이로 우리를 내몰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제가 맨 앞줄이 되었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아비규환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 허우적 거리는 사람, 살려달라고 외치는 사람, 옆에 있는 동료를 붙잡고 늘어지는 사람…
저는 눈을 질끔 감고 한 발을 내딪었고 갑자기 발이 땅에 닿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공포는 물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느껴봤을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오전 훈련이 끝나고 오후가 되자 부이(물에 뜨는 물체)를 하나씩 던져 줍니다. 부이에 연결된 줄을 허리에 동여 매고 연습에 들어갑니다. 이제 발이 땅에 닿지 않아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군인이 되었습니다
직장인은 부이를 허리에 맨 사람입니다.
자영업자는 부이 없이 물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 속을 걸을 때,
직장인은 거침없이 활보합니다.
자영업자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아주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상황에 처했을 때,
직장인은 몸을 돌려 부이를 붙잡으면 그만입니다.
자영업자는 셋 중 하나입니다.
(1) 저처럼 빠져 죽거나
(2) 허우적 대다가 기적처럼 물에 뜨는 법을 터득하거나
(3) 옆 사람 머리 끄댕이를 잡습니다.
직장 생활도 자기 사업처럼 하라고 합니다.
불가능합니다.
의지할 부이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다른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가끔 '내 허리에 부이가 매어있지 않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할까'라고 자문해 보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그것만으로도 식은 땀이 나면서 무엇이 중요한지 보입니다.
공포는 사람을 절실하게 만들고,
하나의 목표만 바라보게 만듭니다.
생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