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어린이에서 어른이 됩니다. 이해보다 인정을 하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왜 지금에서야 인정을 하기 시작했는지도 의문이다. 20살이 되기 전 나의 일상을 차지하는 생각은 나를 위한 것도 아니었고, 공부하기 위한 생각도 아니었다. 그저 나와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행동과 생각을 하면 저 사람은 왜 저럴까. 하는 생각이었고, 물건을 사용할 때 역시 내가 잘 다루지 못하고 나와 맞지 않는 것인데 이 물건은 대체 왜 이럴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차라리 나를 위한 생각이고, 공부를 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몇 번 스쳤던 기억이 있다. 20살이 된 이후 나에게 가장 큰 변화는 학교와 회사가 집에서 멀었던 건데, 그러면서 나한텐 달갑지만은 않은 버릇이 생겼다. 빨간 버스를 탄 후 어두컴컴해진 버스 안에서 온갖 망상 끝, 나의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것은 뻔한 거짓말. 두려웠다. 태어나서 가장 두려운 순간을 꼽으라면 버스 안이라 말하겠다. 만석인 버스 안 몇몇 비추는 휴대폰 불빛으로 의지한 채 달렸다. 목적지는 버스에 탄 사람 모두 같다. 인천 버스라고 알고 탄 것이다. 목적지가 뚜렷했고, 안전벨트까지 맸는데도 왜 그렇게 불안했을까. 옆 사람의 코 고는 소리는 이어폰을 끼고 3D로 들리는 것 같았고, 등에는 보이지 않는 땀이 뼈마디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버스 기사 아저씨가 내뿜는 한숨에 가득한 질소로 질식하려는 순간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100% 느낌을 이해할 수 없다. 난 그들과 생각이 다르기에. 그런데 내가 그들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다고 느꼈다. “그들의 생각이 나와 같았던 순간이 있었겠구나.”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고개가 저절로 끄덕이면서 말이다. 20살 이전의 난 끊임없이 누군가, 무엇인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몇 번이고 좌절했었다. 내가 정말 생각이 없는 것인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는 내가 이상한 것인가. 내가 이상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에겐 이해하려고 하는 시간보다 경험하고 느끼려는 시간이 적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드는 의문 중 하나는 우리 아버지는 화를 내지 못하나?, 화라는 감정이 없나? 하는 것이었다. 분명 화가 나는 순간이었을 때도 아버지는 홀로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가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28살의 내가 60세의 아버지의 삶을 그려보면 인생을 살아가며 겪은 경험과 가슴 깊숙이 느꼈던 시간들이 아버지를 아무렇지 않게 모든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결국 인정이라는 것은 이해와 다른 것이 아니라 이해까지 수용하는 것이다. 내가 나의 친구들의 생각에 공감해주고, 버스 옆자리 코 고는 사람의 머리를 짜증내며 밀치는 것이 아니라 이젠 어깨를 묵묵히 내어주는 것. 이것은 그들의 고단했던 삶을 아무런 말없이 인정해주는 것이다. 나 역시도 고단한 삶에 지쳐 무의식적으로 옆 사람 어깨에 기댔던 적도, 친구들에게 하염없이 하소연했던 적도 어느 순간 나의 경험으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퇴근 시간에 나의 하루를 곱씹어 본다. 눈을 감고 하루를 되감아 본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장면들이 고개의 끄덕임과 함께 가슴속 깊숙이 파묻힌다. 혼자만이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에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와의 단절이 아닌 나의 삶을 바탕으로 사회를 현상을 인정하기 위해서. 고개를 젓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기 위해서.
콘텐츠를 더 읽고 싶다면?
원티드에 가입해 주세요.
로그인 후 모든 글을 볼 수 있습니다.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