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내 기준, 플렉스한 기부 방법
지난 2009년,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던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강당으로 모여 다 같이 강연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강연하시는 분의 성함과 전체적인 제목은 그 강당에서 나오는 순간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몇 년이 흐른 뒤에도 나의 발목을 잡는 소리가 있다. 소아암에 걸린 딸을 둔 어머니의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가 아직까지도 나의 귓가에서 울리고 있다. 강연 중간에 영상을 통해 머리카락이 없는 딸의 머리를 하염없이 만지며 눈물을 흘렸던 그 소리다. 그때의 그 소리가 지금까지 미용실을 가는 나의 발목을 굳건히 잡고 있다.
초등학교 이후로 나의 머리는 옷의 카라를 넘긴 적이 없었다. 그만큼 난 긴 머리를 싫어했고, 하루에 12시간 이상 학교에서 생활해야했던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간신히 귀를 덮을 정도였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묵묵히 긴 머리를 유지하고, 적응해가고 있다. 아직까지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했으니 처음에는 보통일이 아니었다. 머리숱도 많았고, 끊임없이 먹고 또 먹었던 청소년기 나의 머리카락은 무서운 속도로 자랐으니 더더욱 그랬다. 기부를 하기위해서는 최소한 25cm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참으로 오랜 인고의 시간을 버텼다. 아마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때 수능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딸의 긴 머리를 꽃송이 머리끈으로 묶어주던 것이 꿈이었던 어머니의 소원까지 들어주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교복을 입을 때까지 긴 머리를 유지했던 나를 바라보던 부모님의 눈빛은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 미소 짓게 만든다.
고3 수능이 끝나고 그 다음날 난 2년 만에 처음으로 미용실을 갔다. 기부할 예정이니 25cm를 일자로 자르고 싶다고 말했고, 미용사 역시 기분 좋게 잘라주셨다. 어렸을 적 어머니를 따라 미용실을 갔던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던 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경쾌한 미용사의 가위질 소리였다. 그 금속성의 상쾌함은 미용실에 울려 퍼지는 K-POP보다 신났고, 짜릿했기에 나른한 졸음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땐 달랐다. 미용사는 자로 먼저 25cm를 재고 나서 조금은 묵직한 가위로 조심스레 자르기 시작했다. 또 다른 보조 미용사는 옆에서 머리가 휘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었다. 뒷목에는 닭살이 돋았고, 어깨는 파르르 떨렸다. 정갈했고, 짜릿했다. 오로지 머리카락을 자르던 가위질 소리만이 고막을 타고 흘러 심장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또 다시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그때 머리카락을 자른 후 난 머리에 또 다시 손을 대지 않았다. 학창시절, 머리 단속이라는 제도에서 벗어났지만 나의 머리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제도에 갇혔던 시절 ‘염색을 하고 싶다, 파마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아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생각해보면 태어나서 한 번도 파마와 염색을 시켜주지 않으신 부모님께 감사하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에 나의 궁금증은 쉽게 사라졌으니.
두 번째로 머리를 자르고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머리를 보내기 위해 우체국으로 향했을 때다. 머리카락을 상자에 넣고 내용물에 머리카락이라고 쓴 후 직원 앞으로 갔다.
“내용물이 머리카락이에요?”
그 여직원의 머리는 귀두컷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서로에게 듣기 좋은 소리가 들렸을 테니 말이다. 그 직원 말대로 지금까지 머리를 기르는 동안 나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부터 셀 수 없이 많이 들었던 말. 진정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말을 처음으로 경험했던 순간이 바로 이 머리를 기부하면서 부터다.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했던 경험과 행동 중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다. 지난 2009년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나의 발목을 잡지 않았더라면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이 정갈하게 자리던 소리가 내 귓가를 넘어 고막을 뚫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세상에 아름다운 소리는 참으로 많이 존재한다. 모두에게 아름다운 소리가 있는 반면 유독 나에게만 아름다운 소리가 있다. 난 그 소리가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 영상 속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나에게 영향을 미쳤던 이유는 어린 딸의 머리를 빗겨주고 묶어주는 사소한 바람을 가졌던 나의 어머니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졸린 눈을 비비며 밥을 먹던 내 뒤에서 나의 머리를 하염없이 쓰다듬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영상을 보는 내내 스쳤다. 영상 속 민머리인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던 어머니 눈에는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과 미안함, 간절함을 넘어선 절실함이 가득했다. 아마 그 눈빛에서 떨리던 절실함이 나에게는 마음을 울리고 나의 생각을 바꾸는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되었고, 또 다른 도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