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입덕의 순간은 스며들듯 찾아온다]
내게는 정말 친해져야지만 공개할 수 있는 비밀 아닌 비밀이 있다. 그것은 노래방에서 남들 앞에 당당하게 Jpop을 부르는 것이다. 애니 주제가가 됐든, 시티팝이 됐든 일본식 발라드가 됐든 일단 내게 꽂힌 jpop은 노래방에서 꼭 한 번씩은 부르는 취미가 생겼다.
물론 예전에도 일본 만화를 많이 좋아하긴 했지만 노래방에서 일본 노래를 찾으면서까지 부른 적은 없었는데, 나는 언제부터 자발적으로 일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걸까를 회상해보니 대학생 4학년 시절이었던 것 같다.
당시 인턴과 학회, 전공공부 병행에 취업준비도 하고 있다 보니 한 해가 끝나고 그 해의 마지막 학기가 끝났을 때 번아웃 증세가 나타났었다. 전공공부 까지는 좋은 학점을 얻었지만, 당시 경영학회에서는 같이 임원진 역할을 맡은 친구와 갈등이 생겨 학회 생활 마무리가 불편하게 끝났다. 인턴은 나름대로의 뿌듯함은 있었지만 전공 공부, 학회 생활을 항상 인턴으로써의 하루 일과가 끝난 뒤에 빠듯하게 하다 보니 당시 하루에 6시간 이상을 자지 못했던 것 같다. 이렇기 바쁘게 살아온 끝에 결국 정규직이라거나, 괜찮은 기업의 인턴 경험은 쌓지 못하고 그 해의 12월을 맞이했다.
허무함과 우울함이 밀려오던 나머지 하루는 밤 12시임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억지로 잠을 청하자니 안 좋은 생각만 났고, 이를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밤산책을 나섰다. 늦은 밤이었다 보니 주변이 너무 적적해 노래라도 들으며 밤산책을 나섰으나 비트가 쎈 힙합곡이나 너무 감성에 절절한 발라드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유튜브 뮤직에서 음악을 넘기다 보니 요네즈 켄시에 "레몬"이라는 노래를 접하기 됐다. 가사를 알고 들었던 건 아니지만 잔잔하게 시작하는 도입부부터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고동을 울리는 후렴부, 전체적으로 슬픈 톤을 유지하지만 희망적인 노트가 곁들여진 노래였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지만 이 노래는 아티스트가 죽음으로 인해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상대에 대한 마음을 씁쓸하지만 너무 우울해지지 않게 내용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당시의 내 상황과 가사가 완벽히 맞진 않겠지만 왜 당시의 이 노래에 흠뻑 젖게 됐는지 이해는 갔다. 나름의 장대한 목표를 세우고 바쁘게 움직였지만 결과적으로 얻은 것은 어색한 인간 관계, 크게 남지 못한 비굴한 성과들, 말 그대로 "레몬"이 아닌가..
그 때의 내게 울림을 주어서였을까 요즘도 틈만 나면 요네즈 켄시의 레몬을 찾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