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마지막 개인 훈련을 마친 어제, 올해 들어 가장 크고 밝은 달이 떠올랐습니다.
1시간 동안 쉼 없이 달리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데요, 어제는 '과연 나는 왜 뛰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마라톤에 입문한 것은 약 8년 전이었습니다.
당시 부서장이셨던 실장님께서 "부서 단합을 위해 마라톤 대회에 나가보자"라고 제안하셨고, 그 후로 저는 장거리를 달리는 것의 매력에 흠뻑 빠져 홀로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상하반기마다 마라톤에 도전하게 된 저는 "왜 뛰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쾌감 때문"이라고 답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만월 아래에서 달리던 중, 그 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 나는 나 자신과 싸우려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그 순간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하지 않았나 하는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이때 떠오른 개념이 바로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이었습니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가 제안한 이 개념은 자신에게 친절하고 관대하게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에게는 관대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비판적일 때가 많습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려고만 하면, 오히려 지치고 상처받기 쉽습니다. 마라톤처럼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자신을 이기기 위한 목적이라면 결국 나를 소모하게 될 뿐입니다.
그러나 마라톤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고 돌보는 과정이라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호흡하고, 어떤 자세로 달리며, 내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이 진정한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 과정은 단지 달리기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을 이해하고 돌보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마라톤은 기록이나 속도를 위한 경주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 자신과의 화해와 배려의 여정입니다. 자기 연민을 바탕으로 나의 한계를 존중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친절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도 다정할 줄 아는 것이 앞으로도 나를 계속 달리게 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