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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에서 탈출하게 된 이유]
이미 원티드에서 블록체인이나 코인 관련해서 꾸준히 글을 쓰시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나는 블록체인에서 일을 시작했다가 지금은 탈블한 상황이다.
블록체인 시장을 입문하게 된 계기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마케팅 분야로 커리어를 쌓고 싶었던 나는 다양한 회사와 시장을 찾아봤지만 개인적으로 끌리는 기업이 보이지 않았다. 젊음의 패기였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의 한낱 객기였을 수도 있지만, 당시의 나는 심장을 뛰게 해줄 수 있는 시장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친구의 소개를 통해 '크립토'에 입문하게 됐고, 이를 통해 블록체인이라는 새롭고 흥미롭고 아직 탐구할 공간이 많이 남은 신규 시장을 찾게 됐다.
기술적인 변화도 빠르고, 트렌드의 변화도 빠른 블록체인 시장에서 새로운 용어들을 배우고, 기존 시장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사업 구조가 블록체인을 통해 새로이 구현될 수 있음을 보며 블록체인 시장이 인류의 미래라고 생각했었다. 스타트업을 다니는 나를 못마땅해하는 부모님 눈치 속에서도 나는 블록체인이 앞으로의 먹거리라는 생각을 당시에는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회초년생 1년만에 회사 부도라는 참으로 혹독한 경험을 겪게 됐다. 최저 월급에 마땅한 사업 모델도 없었지만 나에게 배움의 기회를 많이 제공하고 블록체인 시장의 흥미로운 면모를 많이 보여준, 참으로 애증이 깊은 내 첫 회사가 자금 부족이라는 이유로 9월에 갑자기 나를 내쫓았다. 갑작스레 있을 곳을 잃었지만 당시의 나는 아직 희망찬 전망을 갖고 있었다. 블록체인이 신규 시장인 만큼 사업 구조가 불명확한 스타트업들도 많을 것이고, 회사랑 같이 성장할 수 있기 위해선 나의 역량 강화가 중요하다 생각했고, 그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버틸 줄만 알면 된다 생각했다.
그렇게 블록체인 학회에 지원해 들어왔고, 학회 활동을 병행하며 열심히 여러 블록체인 기업에 지원했다. 아예 경력이 없는 편은 아니니 어딘가는 붙을 것이라는 생각이 컸지만, 당시 테라-루나 사태 및 FTX 파산으로 인해 크립토 시장 전반적으로 하락세가 오래 유지됐다. 그러다 보니 잘 나간다 하는 블록체인 회사들도 사람을 덜 뽑기 시작했고, 뽑더라도 엄격하고 깐깐하게 사람을 뽑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당시 내 역량이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첫 회사에서 내쫓긴 이후 반 년을 넘도록 취직하지 못했다).
혹독하게도 구직이 안되는 현실 속에서 그나마 블록체인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학회 친구들 덕에 겨우 공백기 동안 버틸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학회 친구의 소개를 통해 거래소를 출시하려는 회사에 이직할 수 있게 됐다. 반 년 이상이나 취직이 안되던 나에겐 단비 같은 소식이었고, 새로운 회사에서는 잘 적응하여 나의 역량도 인정받고 같이 성장해나가리라 굳게 다짐했었다.
그렇게 2개월 인턴 계약을 체결하고 일을 시작했지만, 자사 및 경쟁사 간 분석에서 마땅히 자사만의 USP가 안 보였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불리한 사업구조를 밀어붙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됐다. 어느 회사든 순풍만 있을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회사가 사업을 출시하기도 전에 너무 분리한 조건에서 시작한다는 생각을 잊을 수 없었다. 물론 제대로 된 일머리가 박힌 사람이라면 그런 와중에도 스스로 회사 내 입지를 다질 수 있기 위해 사업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더 리서치를 해보고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회사에 전망이 없다 확신했고, 이로 인해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가 사라졌다. 결국 인턴 계약이 만료된 후 재계약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미래의 먹거리가 될 것 같은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이 악재들에 의해 쉽게 무너지고, 지속가능한 사업구조를 구축하는데에 어려움을 보면서 기회의 땅일 것 같은 블록체인 시장이 더 이상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됐다. 나의 갈 길이라고 굳게 믿었었는데, 일련의 경험으로 인해 오히려 더 이상 나아가서는 안 될 계기가 만들어졌고, 결국 가던 길에서 U턴을 해버렸다.
지금은 블록체인과는 전혀 다른 산업에서 일하고 있고, 이전 분위기와는 많이 달라졌지만 적어도 안정적인 회사에 꾸준히 매출이 찍히고, 안에서 내가 해야할 일이 전보다 명확하니 전보다는 숨 쉴 틈이 보인다.
때문에 외길인생을 살다가 현타를 느끼신 분들이 계시다면 한 번쯤은 멈춰서 왔던 길을 되돌아보기를 바란다. 사실 어느 선택을 하든 한 쪽은 버릴 수 밖에 없기에, 내가 가장 덜 후회할 것 같은 선택을 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