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그 시간이 주는 독특한 감성이 있다. 하루 새 기온이 10도 가까이 떨어지면서 퇴근길 풍경도 순식간에 바뀌었다. 찬 바람이 불어올 때면 여러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르는데, 오늘은 문득 수능을 앞둔 어느 날의 한 장면이 소환됐다.
야간자율학습을 시작하기 전, 급식소를 나와 교실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때 옆반 친구가 나를 불러 세우며 말했다. “우리 학교 한 바퀴 안 돌래?” 인사나 가끔 주고받던 친구였지만, 단둘이 시간을 보내본 적은 처음이었다. 운동장을 공유하던 중학교 건물 뒤편을 지나 다시 운동장으로 들어서던 그때, 친구는 걸음을 멈췄다. “저 하늘 좀 봐. 참 예쁘지?” 그의 말에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답했다. “응, 예쁘다.” 그러자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가 좋아할 줄 알았어. 평소에 양치하고 복도에서 자주 하늘 보잖아. 근데 요즘은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라도 너 좋아하는 하늘 보여주려고.”
당시 나는 수시 1학기에 지원한 학교에 떨어지고 다가오는 입시로 누구보다 스트레스를 받던 시기였다. 친구의 다정함과 섬세한 배려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고마워.” 말을 뱉자마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 번 터진 눈물은 그칠 줄 몰랐고, 급기야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 친구는 그렇게 말하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나는 에드워드 호퍼의 “철길의 석양”을 연상케 하는 환상적인 하늘빛에 감탄하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잠시 후, 내 가방을 들고 친구가 해맑게 웃으며 다가왔다. “너 담임쌤한테 잘 얘기했어. 너 엄마가 데리러 오시니까 야자 끝나는 시간에 맞춰 돌아오자!” 친구는 내 손을 잡고 정문을 향해 나섰다.
그날 우리는 햄버거를 포장해 한강 둔치로 갔다. 햄버거는 맛있었고, 밤의 한강은 더욱 멋스러웠다. 한참을 바라보던 중, 친구가 정적을 깨고 말했다. “몇 개월 뒤엔 이런 풍경 원없이 볼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힘내!”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했다. “응, 우리 꼭 다시 여기 오자.”
그날의 기억은 찬 바람이 불어오는 지금도 여전히 선명하다. 그날의 위로는 마치 긴 어둠 속에서 찾아온 작은 빛처럼, 여전히 나를 감싸고 있다. 친구의 따뜻한 한마디가 마치 다가올 봄을 예고하는 해질녘 노을처럼 내게 다가와 마음을 녹였던, 그날의 한강 풍경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