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절박하게 살고 싶지 않아] 취업 준비생 시절, 좋은 기업에 붙고 싶어 이곳 저곳 조사하고, 세심하게 자소서 작성해서 제출하고, 바로 면접준비를 하는 등 절박하게 움직였다. 스타트업을 다닌 이후에는 주어진 업무에 적응하면서 플러스 알파를 보일 수 있게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업무가 무엇이 있는지 절박하게도 찾아다녔다. 가장 최근에 수행한 영업직에서는 팀장님으로부터 "더 간절히, 절박하게 영업에 매달리셔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중간중간 바닥을 쳤다 싶은 순간들은 있었지만 인생이 무너지는 정도의 절박함을 겪었다고 감히 말하진 않겠다. 하지만 소신 있게 말하자면, 난 절박하게 살고 싶지 않다. 인생의 모든 것을 거는 듯한, 내 청춘을 바쳐야만 하는 듯한, 희생을 강요하는 듯한 절박함이 난 너무 싫다. 소소하게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물 흐르듯이 살고 싶다. 절박함이 인생을 움직이는 큰 원동력이라는 점은 부정하지 않겠다. 무엇을 원하든 이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가장 열심히 임하고, 가장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은 잘 알겠다. 실제로 주변에서 절박하게 일하며 좋은 성과를 잘 내는 사례들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스스로도 절박하게 움직이며 그 혜택을 입은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로 형용하기 어렵지만, 절박하게 움직여서 획득한 성과가 달지 않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취업 준비를 정말 빡세게 하기 위해 대학생 4학년 시절, 학업과 학회활동, 인턴을 병행하며 잠도 줄여가며 1년을 살아갔다. 그렇게 1년을 지내고 난 후의 감상은 솔직히 허무했다. 결국 취업을 위해 달려왔는데, 당시 인턴 경험을 쌓았다고 해서 다른 곳으로의 취직이나 인턴 기회가 더 주어지진 않았다. 학회활동이 끝나고 난 후, 새벽에 동고동락하면서 PPT를 만든 친구들은 학회가 끝나고 지나가는 인연이 되버렸고, 심지어 그 중 몇 명은 활동 중에 크게 싸워 내 인생 처음으로 손절하고 싶어지는 친구도 몇 명 생겼다. 학업도 최소한의 강의를 수강하며 학점 만큼은 높게 관리하는 것이 목표였으나, 하나의 강의에서 낮은 학점을 받으면서 목표 달성에도 실패했다. 그래서 당시 한 해가 끝나갈 무렵인 12월에 정처없이 이 길 저 길 걸어다니며 스스로에게 되뇌어 물어봤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뛰어왔는가?" 사람이 바닥을 쳐봐야 성장하고, 만약 본인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면 절박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평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흑백논리, 결과론적인 소리다. 절박함만 있으면 무엇이든 된다고 하는 것 같은데 절대 사실이 아니다. 대학생 4학년 시절은 내게 열심히 달려온 노력이 보상으로 변환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처참한 배움을 안겨줬다. 나중에서야 어떻게든 스스로를 어필하기 위해 좋은 자소서 재료로 사용하게 됐지만, 결국 이것도 내가 어떻게든 보상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서 이지, 경험 자체가 내가 자연스레 보상을 준 것은 아니다. 심지어 뉴스에서는 어떤 외부의 강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부담을 느껴 젊은이들이 경제적 활동에 대한 동기 부여가 감소됨을 느낀다고도 했다. 뭔가 경제적 자유를 위한 인생설계를 잘해야 할 것 같고, 집도 있고, 특정 나이 전까지 결혼해야 하고 등등. 괜히 비 내리는 날이라 우중충한 주제로 글을 쓰게 됐지만, 나는 가끔 왜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고민한다. 항상 절박하게 살아야 하면, 언제가 되어야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 수 있는 거지? 3년 뒤? 10년 뒤? 3년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그냥 지금 덜 열심히 하고, 덜 피곤하게 살면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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