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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전 단상] 오늘은 점심에 삭개오를 찾아오신 예수님에 대해 묵상했다. 직장인 예배 때 목사님 말씀이신데, 제목은 '왕따를 찾아온 예수님처럼' 이었다. 1. 회사 내 왕따 문제 왕따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니 낯설다. 회사에서 왕따는 은근하고 은밀하게 이뤄져서 보통은 업무 배제와 같은 두루뭉실한 표현을 쓰게 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 은근하고 은밀한, 업무나 소통 배제를 겪어보지 않은 적이 없다. 내가 직접 겪거나 아니면 목격하거나. 그러니 아예 이런 왕따가 없는 조직이라면 굉장히 건강한 조직이라 생각된다. 내가 과거 차별이나 배제를 겪었을때는 화가 많이 났지만, 지금 겪는다면 예전처럼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이유는 2번에 후술하겠다. 회사는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결국은 이 이익에 기여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평가가 나뉘고 계급이 형성된다. 미국은 성과가 없는 직원을 쉽게 짜르기도 한다. 직원 입장에서는, 다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쉬운 해고가 불가능한 나라다. 2. 손에 손잡고 아무리 합리적인 사람일지라도, 성인군자가 와도, 모두의 손을 공평하게 잡기란 쉽지 않다. 진짜 성인군자같은 상사도 단 둘이 있을때는 직원 누구 흠을 잡곤 했다. 성인군자와 같은 상사도 더 예뻐하는 직원이 있었다. 이걸 깨달으니 평안이 왔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이다. 내가 팀장이 되어도 성과가 낮은 직원에게 공평한 손을 내밀고 공평한 시선을 보낼 수는 없을 노릇이다. 그렇다고 티나게 미워하지는 않겠지만 티나게 미워하는 사람도 있다. 생각보다 많다. (여기서는 사람자체가 못되서 사람을 괴롭히는 상사는 예외로한다. 그런 사람도 많다.) 이런, 사람들의 본능과 당연한 성정을 알고, 그런 전제 아래 회사에 다녀야 정서적으로 피로해지지 않고 정서적으로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는다. 어찌 보면 냉소적안 이런 마인드셋을 권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나 자신을 지키고 건강하게 오래 일하고 싶은, 선천적으로 마음이 여린 친구들에게는 마치 c언어에 hello world를 찍듯이 서두에 주입식으로 권하고 있다. 3. 그럼에도 그럼에도 왕따를 당하는 직원을 목도했을때 크리스천인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의 나는 손을 내밀 것이다. 모른척 하지 않는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왜냐면 나는 지금 크게 잃을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 지금의 성취에 나름 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팀장이 되지 않고 가능한한 팀원으로 계속 남고 싶다. 내가 팀장이 되었을때 저성과자나 회사의 이익에 반하는 사람을 품고 갈 자신이 없다. 그들에게 상처를 안남길 자신이 없다. 그들을 차별하는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내가 오래 길게 건강하게 일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실무를 하면서 뒤쳐지는 직원을 손을 잡고 이인삼각으로 달리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 이게 내 그릇의 크기이고 내 자신에 대한 한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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