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후 단상]
출장갔다가 일찍 귀가한 기념으로
애들 재우고 바로 러닝하는 나 어떤데?
1. 진심이란
나는 적어도 남을 도와줄때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생활에서 만난 사람들은 잘 모르겠다. 그들은 본심을 숨기고 도와주는 척만 했나 싶은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니까 내가 전전회사에서 죽도록 고생하고 정치적인 이유와 여러 정황들로 진급을 세번 낙방하고 아이티 기업으로 아둥바둥 이직했을때 사람들은 부러워했다. 잘됐다 고생했다가 아니라 부러워요, 약간 질투와 야유가 섞인 그런 뉘앙스를 받았다.
부러워할게 하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내가 상대를 진심으로 대한만큼 상대도 그렇길 바랬는데 돌아온건 묵직한 통수나 뒷담화였다. 아프다.
나는 그 이후 말을 아끼고 행동을 숨긴다. 내 본심도 남에게 저의로 받아들여질수 있고 정직한 제안도 인사팀에선 투서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속내를 다 표현할 필요는 없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면 충분하다.
2. 김철수씨 이야기
허회경의 김철수씨 이야기란 노래가 있다. 걔중 가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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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쁨은 늘 질투가 되고
슬픔은 항상 약점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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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사람의 본성인걸 어떡해. 그러니까 사회생활은 나를 속이고 내 일을 효과적으로 부풀려서 어필하는데 있다. 가족사나 개인사는 절대절대 내뱉지 않는다. 술자리는 되도록 피한다. 피할 수 없는 술자리에선 취하지 않는다.
항상 여유를 가진 척 한다. 근데 사회생활에 제법 관록이 쌓이면 자연스레 여유가 생긴다. 물론 그 이면에는 남들보다 나은 나만의 무기 하나쯤은 장착이 되어야 한다.
개발 한 주기를 돌려봤다거나, 서비스 한두개는 출시를 해봤다거나, 자동차 프로세스를 꿰고 컨설팅으로 콧방퀴 좀 껴 봤다거나. 내 본 종목 하나는 꽉 잡고 있어야 그걸 바탕으로 변주가 가능하다.
3. 그럼에도 싫은 사람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 유형은 있다.
회사 명함이 곧 나인줄 아는 사람. 그 회사 입사가 본인 인생의 최대 업적인 사람.
그래, 나도 피해의식일 수 있지만
얼마전까지 같이 일하던 사람이 OEM으로 가서, 고향으로 금의환향한 듯, 과거 같이 일하던 동료들 헤쳐모여 도열하고 심사하는 장면 같은.
이게 사람은 작은 감투라도, 동네 이장이라도, 권력의 맛이 있다. 나라고 다를쏘냐. 오늘 회사 대표로 정부출연 얼라이언스 참석했는데 나 뭐 돼? 마냥 잠시나마 지역구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처럼 행동했다.
아, 이 맛에 팀장하는구나 깨달았다.
이 권력에 대한 욕심과 나의 현실을 적절히 타협하고 조화하면서 앞으로 10년 직장생활하겠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