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이 '이 글씨는 새빨갛게 해주세요' 라고 말했다]
지난 5월부터 담당하게된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화면 몇가지를 그려놓고
리뷰를 앞두고 있을 때,
다소 무심해보이던 리더가 이끄는
관계 팀과의 추가 미팅을 하게됩니다.
갑자기 현재 진행하던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요구사항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처음에는 정확한 요구사항과
목표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좋아’ 하는 마음으로
미팅에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진행과 방향성을 설명할 때
이 방향이 아니라며
연신 손가락으로 X를 그리는 리더를 보며
내가 큰 실수를 한걸까? 아차 싶더라구요.
알고보니 이 프로젝트의 포인트는
그 방향성이 아니었다나요.
그리고 이제와 얘기하는
프로젝트의 포인트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습니다.
예를 들면 배너 디자인만 하면 되는건줄 알았는데,
배너 디자인을 쉽게 만들 수 있는 피그마를 만들어야 한다…
같은 내용이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쯤되니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이 요구사항을 이 프로젝트에 몽땅 우겨넣으라고?
이걸 현재 회사에서 감당할 수 있는 인력은 있나?
백엔드 전문 기획자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리더급과 추가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표정이 많이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막막한 심정을 듣더니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그 요구사항을 꼭 들어줄 필요는 없죠?
하시더라구요.
요구사항은 왜 요구사항일까요?
말 그대로 이 기능과 이 플로우가
필요한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요구하는 사람은 아무런 이유없이 요구하지 않습니다.
요구사항을 들으면
내가 이 내용을 반영해 작업할건지 말건지를
결정할 것이 아니라,
요구사항 이면의
의도를 파악해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이런 요구를 하는걸까?
어떤 배경인걸까?
무엇을 위함인걸까?
이 요구사항을 통해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걸까?
이런 것들을 파악하다보면
어떤 해결책이 나올지는 이후의 일이 됩니다.
얼마전 링크드인에서 읽은 글 중에
고객이 이 글씨를 40px로 키우고
새빨간색으로 해달라는 요구사항을 들었을 때,
그것이 ‘이 정보는 중요한 것이니
모두가 잘 볼 수 있게 해달라’
라는 뜻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글이 생각났습니다.
이쯤에서 자꾸 새겨도 체화하기 쉽지 않은
디자이너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봅니다.
요구사항을 열린 마음으로 들을 것.
왜 이런 요구를 하는지 파악할 것.
내일 이런 것들을 파악하기 위한 추가 미팅을 잡았습니다.
조금 더 다듬어서
해결책을 같이 논의하는 자리를 또 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