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유명한 전시관의 연회원권을 결제한다는 소소한 버킷 리스트가 있어요. 누군가 취미를 물어보면 전시회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대답합니다.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 중인 큐레이션 계정에서 소개해주는 전시 중 흥미가 생기면 저장해 두었다가 지인과 함께하거나, 혼자서도 방문합니다. 작품을 보면서 아름다움, 작가의 의도, 시대 상, 다른 작가 혹은 작품과의 비교 등 다양한 추측을 해보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있자면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기분이에요. 자연스레 그런 감상을 가감 없이 교류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 제가 예술을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굉장히 기대하고, 얼리버드로 티켓을 구매했던 합스부르크 600년전을 보러 갔을 때 전시장 앞에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보고 함께한 지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냥 귀가했습니다. 달리 전을 관람할 때도 인파가 너무 몰려서 그냥 지나간 작품들도 꽤 많았어요. 도슨트 투어나, 음성 안내도 들어보거나, 들어볼까 라는 생각도 가져본 적이 없었어요. 관람 중 투어 하는 분들이 등장하면 해당 섹션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도 합니다. 흥미가 생겨서 보러 간 전시였는데 나오는 길엔 피로감을 가득 안고 지쳐서 나오는 경우가 매우 많았어요. 사실 저는 인파가 적은 곳에서 조용히 작품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리움 미술관,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DDP를 선호하고, 회화나 사진, 영상으로 구성된 전시보다는 조각이나 설치미술 같은 오브제가 있는 전시를 좋아해요. 초현실주의를 좋아하고 현대미술은 어려워하며, 살바도르 달리와 만레이, 피카소, 포르나세티를 좋아합니다. 고미술도 좋아해서 리움의 소장품전은 갈 때마다 방문하고 감탄해요. 최근 까르띠에 소장품전은 생각보다 작품 수가 많아서 매우 만족했습니다. 이렇게 자세한 부분은 비교적 최근에 인지했고, 이 후에는 전시를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어요. 우선 유행하는 전시 보단 전시 내용을 보고 선택해서 만족도도 높아졌고, 타인과의 대화에서 취향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또, 저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막연히 호불호를 가지고 있던 것들에 대해 왜 인지 다시 한번 찾아보고, 새로운 호불호를 찾아내기도 해요. 자신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사고의 영역이 아닌 경험의 영역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도 있지만, 시간을 들여서 자세히 보아야 정확히 알 수 있었어요. 생각보다 어려웠고, 시행 착오를 반드시 겪어야 하는 부분이며, 안다고 크게 이득이 되는 것 같지도 않아서 비효율이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즐겁고, 자신을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이전과 같은 환경이지만 체감하는 만족도와 삶의 질이 자연스레 향상되었습니다. 어쩌면 자존감은,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안다는 것에서 시작되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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