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 혹은 망언, 명망록]
-1- 글쓰기
글은 대개 기록이다. 기록이란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기에 그 개념을 단순화하기가 어렵지만, 후일을 위해 과거를 정돈하는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다분히 미래지향적인 행동이다.
따라서 글은 앞으로 오게 될 때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힘을 갖는다. 물론 쓴다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시간을 보낸다는 측면에서 나름 의미가 있겠으나, 남겨진 글이 언젠가 다시 읽힐 수도 있다는 걱정과 두려움이 글을 강하게 만든다.
절대로 들키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일기장에 써 내려갈 때도 끝내는 오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은 상상을 한다. ‘내가 사라졌을 때, 누군가 이 글을 읽게 될까?’ 단순하고 멍청해 보이는 이 질문 하나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게 만든다.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솔직하겠다던 결심도 너무나 쉽게 흔든다.
다시 말해 글을 쓴다는 것은 과거에 경험하거나 상상하며 알게 된 일면을 정리하는 행동이지만, 미래에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무엇을 어디까지 보여줄지 선택하는 과정이다.
오늘 이 글은 어떤 주제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생각하지도 못해 키워드로 분류된 다양한 글감을 보고, 그중 하나를 골라 작성된 것이다. 어쩌면 나는 지나온 시간으로부터 무엇을 얻었는지도 모르고, 하고 싶은 말도 없으면서 그냥 발화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동안 축적된 것들이 있지 않겠냐고 소리나 질러보는 것일 테다. 훗날 이 조용한 외침이 또 다른 세계를 여는 시작이 되기를 바라며.
시작이 반이다. 물론, 범 그리려다 개 그리는 경우가 더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