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한다면 봐야 할 영화(feat. 혜옥이)] 어느 자리든 나가서 나를 소개할 때, "취업 준비생이에요."라고 그냥 말하면 될 텐데 죄지은 것도 아닌데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특히 친척들이나 부모님 친구분들을 만날 때 그렇다. 기가 죽는다. 나 같은 취업 준비생이라면 이 뻘쭘한 상황을 한 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 [혜옥이]에도 크게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주인공 혜옥이의 이름은 사실 라엘이다. 훨씬 세련된 이름 '라엘'이가 '혜옥이'이가 된 대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라엘이는 고려대 경영과를 나왔다. 집안의 자랑이었다. 라엘의 엄마는 "너는 최고야! 너는 일류니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고시 합격을 위해 자취방을 알아보던 라엘과 엄마는 부동산 중개인한테 "이 방에 살았던 사람들은 다 합격해서 나갔어요!" (계약을 위한 거짓말이었다...)라는 말을 들었다. 악취가 진동하는 원룸이었지만 "합격"이란 말에 라엘의 엄마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했다. 그렇게 라엘은 "합격보장"의 방에 살게 된다. 초반에는 라엘이 고시생 스터디에서 초시생임에도 모의고사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이대로라면 고시 합격은 따놓은 당상처럼 보였다. 그런데 실전은 달랐다. 체력을 위한 운동도 하고, 학원을 다니며 수많은 문제를 풀어도 몇 년을 내리 떨어졌다. 계속된 탈락에 라엘은 특정 상황에 재채기를 끊임없이 하는 병?에 걸리게 된다. 학원에서도, 독서실에서도 공부를 할 수 없었고 집에 틀어박혀 공부하게 된다. 그 와중에 엄마는 "00이네 딸은 8년 만에 고시 붙었대!"라는 말은 했다. 8년.. 과연 8년을 버틸 수 있을까 엄마는 라엘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몸을 절뚝거리며 병원 신세도 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포기를 몰랐다. 방법을 찾았다며 헐레벌떡 찾아온 엄마는 작명으로 유명한 스님께 혜옥이라는 이름을 받아왔다고 하셨다. 이번엔 다를 거라며 눈을 반짝인다. 라엘은 내가 남들보다 덜 노력한 건 아닐까 의심하고 내겐 이 길, 고시밖에 없다고 굳게 믿는다. 죽도록 할 거라고, 보여줄 거라고 다짐한다. 대망의 시험 당일, 라엘은 개명한 '혜옥' 신분증이 아닌 개명 전 신분증을 가져갔다.. 하... 이렇게 라엘의 멘탈은 터지게 되고 시험 도중 계속해서 재채기했다. 결국 시험에서 떨어지게 된다. 어김없이 라엘의 엄마는 전화가 왔다. 처음엔 떨어졌다고 말했지만, 엄마의 실망한 목소리에 장난이라며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라엘은 고깃집에 취업해서 알바를 시작했는데 엄마를 그 고깃집에서 마주치게 되고 라엘이 다시 재채기가 시작되며 영화가 끝난다. [혜옥이]에서 최대 빌런은 단연코 라엘의 엄마다. 라엘에게 고시공부만 고집하지 않았다면 라엘은 새로운 선택지를 탐색하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라엘이 엄마에게 몰아붙여지면서 "뭐든 될 수 있다" 거나 "될 때까지 한다!"라는 라엘의 마음가짐 또한 끔찍한 독이 되었다. 가본 적은 없지만 다들 이런 군대 정신으로 목표를 뚫어내는 것이라 나도 한때 생각했다. 나의 길은 컨설팅, 인사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해외 명문대 석사까지 나와서 전공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컨설팅업에 대한 동경으로 포기할 수 없었고, 계속 도전했다. 면접에서 떨어지고 인턴에서 전환이 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상사에게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듣기까지 얼마나 절망했는지 모른다. 나는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선택지가 없는 것 같았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생각은 사람을 고립되게 만든다.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게 만든다. 목적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이라면 나의 가치, 좋아하는 일, 흥미를 느낀 순간들을 생각해 보고 목적을 위한 다른 방법은 없는지 유연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악물고 죽을 각오로 덤볐다간 라엘과 라엘의 엄마처럼 몸도 마음도 병들고 만다. 스스로 벼랑 끝으로 내몰 필요 없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렇다면 더 중요하게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나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 내가 맹목적으로 매달리며 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진 않은가?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전에 도전해 볼만한 작은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새롭게 에디터의 꿈을 꾼다. 나는 새롭게 진로를 탐색할 상황에 있고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컨설팅에 목을 메지 않아도 보람을 느끼며 일할 수 있다. 물론 두렵다.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의심하며 일희일비한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책을 읽고 글도 쓰고, 헤드헌터의 제안에 답변도 하고, 에디터 스쿨도 듣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적어도 컨설팅에 목을 매고 있지 않다. 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을 일을 하며 사는 이들의 인사이트를 전하기 위해 나는 칼럼도 써보고, 인터뷰도 해본다. 이런 작은 목표들을 하나씩 해보고 있다. 어느 날 밤엔 수익화를 못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이 글이 일기와 뭐가 다른가 생각했다. 불안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즉각적으로 불안으로 반응했구나 깨달았다. 불안할만하지. 인정한다. 그럼 나는 글쓰기로 수익화할 수 있는 방법은 뭔지 찾아보면 된다. 불안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대응하면 된다.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이라면 이 4가지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해 보길 바란다. 나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 내가 맹목적으로 매달리며 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진 않은가?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전에 도전해 볼만한 작은 목표는 무엇인가? 죽으란 법은 없다. 유연하게 생각하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당신이 정답을 만들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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