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R 담당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책 추천]
얼마 전 독서모임을 통해 ‘커트 보니것’이라는 작가의 <제5도살장>이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저는 이번 모임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소설이지만, 20세기 최고의 반전(反戰) 소설 중 하나라고 합니다. 작품의 길이도 짧으면서 설정과 구성도 재미있고, 전쟁 이외에도 생각할 부분들이 많아서 추천드립니다.
작가는 미국에서 태어난 독일계 미국인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으나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히고, 드레스덴으로 이송되어 그곳에서 커다란 폭격을 겪었습니다. 이 드레스덴 폭격은 1945년 연합군이 독일 드레스덴이라는 도시를 대상으로 실행한 대규모 폭격을 퍼부은 사건입니다. 당시 유럽 전선의 폭격 중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작전이고, 작가 개인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제5도살장>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빌리 필그램이라는 인물도 작가처럼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게 되고, 독일군에게 포로로 붙잡히게 됩니다. 포로의 신분으로 드레스덴에 도착하여 폭격을 경험하지만, 포로수용소 지하에 있어 생존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무의미함을 목격하고, 인간의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 작품은 반전 소설로써 유명하긴 하지만, 전쟁 이외에 인간의 자유 의지라는 주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쟁 이후 주인공은 외계인과의 접촉을 통해 과거 또는 미래로 시간 여행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 시간 여행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어느 시간대로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다른 시간으로 넘나들며 자신의 인생의 다양한 순간들로의 시간여행을 반복하는 형태입니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자신의 미래를 포함한 일생의 순간, 순간들을 수도 없이 목격했고, 그중에는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를 이미 알고 있지만, 주인공은 그 죽음을 피하기 위해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수많은 시도를 하였지만 결국 같은 결말을 맞이하고 나서 포기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어떻게 본다면 주인공은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하느님, 저에게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차분한 마음과 제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와 언제나 그 차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라는 내용의 기도문인데요.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 그 무엇도 바꿀 수 없었던 주인공과 대비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미래의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닐지라도, 내가 지금 또는 미래에 내리게 될 선택이 순수한 나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가 노력하면 바뀔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경험한 것들의 집합체일 것이기 때문에 과거 경험이 내 미래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내 과거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쌓아 올려진 수많은 배경(국적, 지역, 집안 사정 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구요. 결국 한 사람의 선택의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사실 누군가의 사연을 듣게 될 때, 특히 HR 담당자로서 구성원분들의 하소연을 수도 없이 접하다 보면 냉소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본인의 개인 사정을 설명하며 평가 결과에 대해 하소연하거나, 다른 입사 경로로 인해 발생한 급여 수준의 차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구성원분들과 대화할 때 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들의 선택과 결과가 오롯이 그들의 노력에 의해 결정된 것은 아닐뿐더러 그렇게 모든 원인을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리면 우리 조직의 구조적인 문제는 덮어두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타인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는 조직과 구성원을 관리하거나 어떠한 제도를 기획하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난날의 저를 반성하며 타인에 대한 관심과 존중, 다정함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HR 담당자로서의 마음가짐까지 다시 한번 일깨워준 <제5도살장>을 강력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