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직장다운 직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영화관이었는데 처음 시작은 아르바이트였다. 20대 초반~중반의 학생들이 많이 한다는, 술도 많이 마시고, 연애도 많이 한다는 약간 꿈의 아르바이트. 술도 진짜 많이 마시고 적어도 4,5시간에서 많으면 7시간 가량 같이 붙어서 힘든거 다 하는데 눈이 안맞을래야 안맞을 수 없는 곳이긴 했다. 주말이나 성수기시즌에 항상 홀과 상영관을 가득 메우는 고객들, 아침 7-8시부터 신나게 튀기는 팝콘, 한번에 몇개씩 구워내도 모자란 오징어구이 등등 그 시간들은 아직도 나에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결국 나는 영화관에 매니저로서 취직을 하게 되었고 바쁜날이면 현장의 아르바이트생들을 도와주고 평상시에는 사무실에 틀어앉아 내가 근무하는 영화관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일을 했었다. 내가 아르바이트생으로 사무실의 매니저들을 볼때와 내가 직접 근무하는 사무실은 느낌도 하는 일들도 달랐고 사회초년생으로서 고생도 하고 막내이자 사무실의 빌런으로도 선배 매니저과 상사들에게 혼나고 눈치보고 힘겨운 1,2년차를 종료할 즈음 코로나가 터졌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다중이용업소인지라 타격은 컸고, 인건비 절감과 각종 비용의 절감으로 사무실에서 일하던 매니저들이 아르바이트생들 대신 직접 현장일을 하면서 버티게 된것이다. 영화관 3사가 당시에는 비슷했을 것이다. 이런 열악한 상황은 22년 4월 실내취식제한이 풀리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대작이 터지고 우리도 같이 터졌다. 모두의 고난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것을 시작으로 편해지는 것 아니었냐 하겠지만, 영화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게 아니었다. 남들은 배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영화가 잘되냐 안되었냐 그 문제를 떠나서 점점 더 열악해지는 근무환경으로 나는 지쳐갔다. 버티면 전처럼 나아지겠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고, 이 상황에서 나는 이 곳에서 무얼 더 하고 내 업무적 능력을 키울 수 있는지 의문은 커져갔다. 그리고 내가 처음 영화관에 입성하며 느꼈던 그런 감정들은 바닥이 나고 다 메말라버렸고 버티고 버티다가 23년 12월 크리스마스를 끝으로 나는 결국 퇴직을 했다. 즐거웠던 기억이나 나는 아직 성장하고 있는 중이구나, 뭐 그런 성취감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내가 과연 이 직장에서 무언가를 더 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기에 아직 영화관에 정이 완전히 떨어지지 않았을때 그만두고 싶기도 했다. 남들이 봤을때 그렇게 젊은 나이는 아니고 이 경력으로 어디 가서 내밀수있는 것도 아니지만 마지막으로 다른 것을 시도해 볼 수있는 기회가 온것같기도 했다. 종종 이전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자면 아 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게 아닐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바뀌려고 하고 새로운 경험을 이것저것 시도해보면 내가 퇴사를 선택한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한다. 어떻게 끝을 맺어야할지 모르겠으나, 챌린지의 첫 글은 새로운 것에 대한 첫 시도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된것 같다. 뭐, 어떻게던 되겠지. 하하.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 나의 청춘, 나의 시네마.

콘텐츠를 더 읽고 싶다면?
원티드에 가입해 주세요.
로그인 후 모든 글을 볼 수 있습니다.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