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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뿌엔떼 우야 Puente Ulla ~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 Santiago de Compostella : 20.5km 날이 아침엔 맑다가 흐리다가 갑자기 소나기를 뿌리더니 다시 맑다가 흐리다가 다시 비가 왔다. 오늘 마침내 비아 델 라 쁠라다의 긴 여정이 완성되는 날이다. 어제 다 저녁에 오락가락했던 그 난감한 길들이 아침이 평화롭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어제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 올라 외진 언덕에 있던 공립 알베르게를 지나 나무가 빽빽한 숲길을 걸었다. 봄이 오고 있었다. 겨울의 눈을 맞으며 걸었던 길의 피날레를 장식하듯 노란 꽃이 초록 나무들과 어우러져 완벽한 오전 11시를 완성했다. 나는 한참을 서서 그 완벽한 자연의 시간을 감상하고 머릿속 영상에 새겼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장면이 선하다. 벅찬 자연을 볼 때 사진으로는 다 담을 수가 없다. 그 공기, 그 냄새, 그 감촉 그래서 내가 개발한 사진 찍기 기법은 숨을 가다듬고 차근차근 그 풍경들을 하나하나 자세하게 바라보고 내 온몸에 새긴다. 눈을 감아도 다시 재생될 수 있게 말이다. 그렇게 나의 뇌에 ‘산띠아고로 가는 완벽한 11시’ 영상 파일이 생성되었다. 오늘 11시에 봤던 완벽하게 아름다운 풍경은 종종 오전 11시에 눈을 감으면 나타나도록 오래도록 각인했다. 여행자의 시공간 여행이다. 언제든지 꺼내서 머릿속으로 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 순간도 추억의 형태로 나를 위로할 것이다. 내가 힘들지만 도보 여행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봄소식을 전하는 꽃들을 만나고 그렇게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마지막 날의 여정이 신나기도 하면서 복잡한 감정들이 일어났다. 마음의 에너지를 써서인지 20km의 거리인데도 길게 느껴져서 발바닥에 불이 났다. 몇 개의 작은 마을을 더 지날 즈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 우비를 꺼내려고 시골마을 버스 정류장에 잠시 앉았더니 엄청난 소나기가 지나갔다. 날씨가 ‘이래도 계속 걸어갈 테냐’하는 듯이 엄청나게 퍼붓더니 잠잠해졌다. 산띠아고의 공항과 도시로 접어드는 길이 고스란히 보이는 길을 지났다. 프랑스 길과 다르게 비아 델 라 쁠라따 루트에서 산티아고로 접어드는 길은 마치 ‘내가 정말 이쁜 것만 보여줄게’ 하듯이 아름다운 갈리시아의 언덕과 마을 들이 적당히 아름답게 배치되어 오르막과 내리막이 수없이 반복되며 조금씩 산띠아고에 다다르게 했다. 비아 델라 쁠라따에서 종종 만나던 아베Ave 고속철도 구간 공사는 막판 선물로 격한 돌 자갈길 오르막을 선사했다. 마지막 마을의 모퉁이에 접어들자, 내리막길이 나오는데 저 멀리 이 모든 것의 마지막 종착지인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Santiago de Compostela의 대성당이 보였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번만큼 같이 가는 이 없이 외롭고 거칠며 아름다운 길은 없었다. 다시 하라면 못 할 것 같다. 3월에 시작했는데도 세비야와 엑스레마두라 지역은 정말 더웠었다. 1월에 다시 시작한 까스티야 레온 지역을 지나오며 갈리시아 접경은 혹독한 비바람과 눈바람이 얼굴을 하도 때려서 저녁과 그다음 아침엔 얼굴과 눈이 퉁퉁 부어서 안 그래도 작은 눈이 떠도 뜬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런데 길이 너무 아름답다. 비아 델라 쁠라따를 처음 걸었던 이는 누구일까? 유럽 전역에서 산띠아고로 다다르는 수많은 길들의 모양이 마치 가리비 모양으로 되어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길들은 은하수 길, 밀키웨이가 되어 수많은 사람의 염원을 흩뿌린 산과 들판들을 지나 여기 산띠아고로 향한다. 정신없이 언덕길을 올라갔다. 산띠아고의 시내에 접어드니 또 화살표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대성당의 위용은 거대해서 저 커다란 성당만 찾아가면 된다. 비아 델 라 쁠라따의 루트는 프랑스 길과 반대편에서 시내를 가로질러 마지막 목적지 대성당으로 진입했다. 대성당의 정문이 공사 중이라 다른 문으로 들어가야 했다. 가방 반입이 안 된다는 표시를 보고 경비분께 물었다. 이제 막 순례길에서 내가 도착했다고 하니 마음 약한 경비가 들어가라고 했다. 나는 너무도 오래 힘들게 걸어온 마지막 종착지 산띠아고의 대성당 안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온갖 감정이 다 올라와 버렸다. 드디어 해냈다는 마음, 혼자라 외로웠던 모든 순간,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모든 순간, 아름다웠던 길들의 모든 순간이 그 앉은 자리에서 쏟아져 나와 정말 한참을 울었다. 실컷 마음대로 내 감정을 마주하고 나니(실컷 울고 나니) 다른 성당의 경비분이 다시 나에게 가방은 안 된다며 나가야 한다고 했다. 대신 순례자 사무소를 친절히 알려줬다. 순례자 사무소는 예전과 다르게 장소도 옮기고 넓고 큰 새 건물로 옮겨져 있었다. 친절한 젊은 산띠아고 순례자 사무소 봉사자들이 순례자 증서인 산띠아고 데 꼼뽀스텔라를 만들어 주었다. 3유로를 더 내니 총 걸은 길이에 대한 완주 증명서를 써 주었다. 세비야에서 산티아고까지 총 1,006km라고 되어 있었다. 소중한 증명서를 가리비 모양의 금색 문양이 박힌 보관용 서류통에 넣고 순례자 사무소에서 나왔다. 내 모든 순례는 이제 끝났다. 내일 오전에 있을 순례자 미사에 참석하는 축하 행사만이 남았다. 가란자의 알베르게에서 만난 이탈리아인 마테오에게 물어놨던 산띠아고의 사설 알베르게를 숙소로 잡았다. 산띠아고 대성당과 매우 가까운 구시가지 한복판이라 위치가 매우 좋다. 산띠아고의 파라도르 호텔에서는 전통적으로 그날 도착한 순례자에게 선사하는 식사를 하러 갔는데 낮에만 그 행사가 있고 작년부터 아침, 점심, 저녁을 주던 게 없어졌단다. 전통도 사라지고 순례자 사무소도 점점 관광 상품이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덕분에 가게에 물어서 갈리시아 음식을 잘하는 식당에 가서 통 후추를 넣고 와인으로 요리한 초리소를 먹었다. 맥주에 나오는 렌떼하Renteja 따빠스는 처음이었는데 맛났다. 내일은 낮 12시에 순례자를 위한 미사에 참석한다. 이번엔 신부님 발음이 좋아서 내 이름 부르는 순간을 잘 알아들어야지! 드디어 산띠아고에 도착했지만, 내일도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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