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아 라쎄 A Laxe ~ 뿌엔떼 우야 Puente Ulla : 30km (마지막에 알베르게 못 찾아서 왔다갔다 하다가 34km)
흐리더니 비가 오다가 말다가 반복했다. 그러다가 해가 나더니 하늘 가득 커다란 무지개가 피어난 날이다.
오늘 부지런히 걸으면 내일 산띠아고에 도착이다. 세비야부터 무려 1006km(길을 잃고 돌아가거나 했으니 더 긴 거리일 수 있다)의 도보 순례가 내일이면 마무리 될 것이다. 그래서 인지 산띠아고까지의 km 수가 줄어드는 도로표지를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 라쎄를 나와 혹쎄Hoxe라는 회사를 지나자 강과 두 개의 깊은 다리가 나오더니 이내 로마 시대 다리가 나왔다. 깊은 계곳을 따라 흐르는 강은 장관이었는데 좀 으슥했다. 날씨가 흐려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어제부터 동네 개들이 지날 때 마다 사납게 짖는다. 이 동네 애들은 좀 예민한 것 같다. 아마 낯선 사람들의 방문이 드물어서일까? 무료하고 심심한 일상일까? 산띠아고에 가까워질수록 크고 작은 마을의 수도 많고 간격도 좁지만 무슨 마을인지 이름조차 알기 힘들었다. 포르투갈어와 비슷한 갈리시아 지방의 언어인 듯하다. 오전 11시부터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더니 이내 비가 온다.
10km 정도 걸으니 시예다Silleda가 나온다. 작은 마을 일 줄 알았더니 아파트도 있고 제법 규모가 크다. 마리 까르멘이란 이름이 같은 아주머니 두 분이 운영하는 바에서 살치촌Salchichón(돼지고기로 만든 소시지)이 든 보까디요Bocadillo(샌드위치)와 커피를 먹고 나서려니 빗줄기가 더 굵어졌다. 아까 걸어올 때 로마 시대 돌길에 미끄러질 뻔한 데다가 불어난 물로 길이 막힌 구간이 종종 있어서 오늘은 내 사랑 N525 번 도로를 타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숙소가 있는 곳까지 20여 km가 더 남았다. 한두 명의 운전자가 인사로 손짓을 해주었고 몇몇은 좀 살살 달리라고 말해주고 싶기도 했다. 비가 오면 힘들다. 위안이 되는 건 도로 표지판에 산띠아고까지 남은 km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거였다. 27km, 25km, 22km….
중간에 해가 났다. 빗방울은 그대로 인데 하늘에 구름이 걷히더니 파란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멀리 커다랗고 선명한 무지개가 내 시야의 반을 덮었다. 둥글게 둥글게 진한 일곱색깔 무지개가 선명하게 오래 자연 속에서 반원을 그리며 인사를 보내왔다. 마치 내가 오늘 내내 걸으며 반성한 일들에 대한 위로 같았다.
도로변에서 무지개 구경을 한참을 하고 가니, 산띠아고까지 20km라는 표지가 보였다. 이쯤 되면 오늘의 마을에 다 도착한 건데…. 동네 사람이 있어서 길을 물으니 2km 더 가란다. 한참을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거대한 강과 계곡을 잇는 커다란 아치로 연결된 높은 다리가 나온다. 장관이다. 다리를 건너 알베르게 쪽으로 향하는 초록 화살표가 있었는데 나는 까미노의 노란 화살표를 따랐더니 엄청 돌고 돌아 마을의 사설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인근 주유소에 공립 알베르게의 위치를 물으니 4~5km를 더 가야 한단다. 이미 한참을 온 거 같은데…. 이상하게 알베르게 표시가 선명하지 않다. 아무리 가도 숙소가 나타나지 않아서 아무래도 아니라서 다시 내려왔다가 초록색 알베르게 간판이 있는 곳에 문을 두드리니 닫혔다. 다시 주유소 직원에게 묻고 그럼 그 4km를 걸어가 주마하며 올라가는데 이미 해는 지고 있어서 날이 어둡고 늦었다.
그래도 그 말을 믿고 오르막이 계속 되는 도로를 다시 한참 걸어갔다.
뭔가 잘못 된거 같아서 한참 가다가 인터넷을 켜서 확인하니 아까 문들 두드린 그 알베르게가 푸엔떼 우야Puente Ulla 지역에 딱 하나 있는 숙소인 게 맞았다. 다시 한참을 비를 맞고 왔던 길을 내려갔다. 주유소 직원에게 여기 알베르게가 맞다고 연락해달라고 하니 미안했는지 얼른 알베르게 주인에게 전화해 줬다.
좀 있으니 사설 알베르게의 직원이 와서 문을 열어주고 심지어 개인실까지 내어주었다. 그러면서 오늘이 일요일이라 다 닫아서 그렇다고 했다.
저녁에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레스토랑도 다 닫아버려서 저녁 먹을 곳이 없었다. 무슨 인연(그 주유소만 3번을 들렀다)인지 다시 그 주유소의 편의점에 가서 피자와 맥주를 사 먹었다.
긴가민가할 땐 우왕좌왕 하지 말고 차분히 확인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고 정보와 상황을 파악할 것! 오늘의 1시간 가량의 대혼란으로 배운 것은 이거다. 그리고 아름다운 무지개의 신비함도 배웠다.
내일은 마침내 산띠아고다!!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