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오세이라 Oseira ~ 라세 Laxe : 33km
오세이라 수도원 아침 7시 15분 순례자 미사에 참석했다. 9명의 수도사들이 하얀 수도복을 입고 미사를 보았다.
어제 밤 10시 반이 넘어서야 도착한 스페인 노인은 순례자가 아니라 까미노 데 산띠아고 루트에 예술인과 관련된 문화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사람이었다. 자려고 누웠으나 나에게 밤새 계속 이야기를 시킨 데다가 아침 순례자 미사에 가야한다고 했더니 거기까지 나를 따라 나섰다. 그는 나이 들어 무언가를 자신이 구상한 일을 완성하고 싶은 욕심에 쉴 새 없이 그의 이야기를 해댔다. 순례자 동료를 기대한 나는 그의 무한 수다 덕에 추운 수도원의 알베르게에서 잠까지 설쳤다.
다행인 것은 순례자 미사 덕에 신비로운 수도원 내부를 다 볼 수 있었다는 거다. 미사 장소까지 걸어 들어가는 데만 5분이 넘게 걸렸다. 수도원 내부의 복도 길이만 4300m가 넘는다고 했다. 수도원의 웅장한 대문에서 누가 부르면 한참 복도를 내달리고 수많은 계단을 내려가야 문을 열 수 있었다. 장엄함과 견고한 로마네스크식 건축물이다.
미사는 매우 경건했다. 침묵 수도 중인 수도사들과 함께하는 산속 스페인 수도원의 미사에 참여하는 자체가 경건하고 귀하다.
신비로운 미사는 한 시간 가량 진행되어서 나는 오전 9시가 되어서야 길을 나섰다. 수도원 앞에 한 레스토랑이 있었지만 문을 열지 않았다. 빈속에 언덕을 올랐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 작은 돌십자가상이 있는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수도원의 규모가 한눈에 들어온다. 장관이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땀을 식히며 이제 언제 다시 볼지 모를 이 아름다운 수도원의 모습을 눈에 담고 또 담았다. 문제는 또 산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돌로 된 산길은 누가 잘 치워 놓은 듯 길이 매우 깨끗했다.
2시간 반이 지날 즈음 뭔가 먹을 있는 수 있는 마을이 나타났는데 오늘이 주말 축제라 길거리에 큰 장이 열려있었다. 난데없이 산중에 갈리시아 지방 주요 요리인 문어요리 뿔뽀Pulpo를 팔았다. 방금 요리한 뿔뽀를 눈앞에서 보니 안 먹을 수 가 없다. 한 접시 사먹는데 정작 뿔뽀 요리와 호객을 한 아줌마는 정직했는데 그 요리를 앉아서 먹을 수 있게 하는 정말 맛없는 커피를 파는 레스토랑에서 가격을 비싸게 요구했다. 가끔 순례자, 특히 외국인에게 가격 덤터기를 씌우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싱싱한 뿔뽀는 맛있었다.
요기를 한 뒤 고속도로를 따라 좀 걷다가 까스뜨로 도존Castro Dozon을 지나 이름표도 걸어 놓지 않은 무수한 마을을 지나 라세Laxe에 도착했다. 어제 잠을 설친 덕에 오늘은 무지 졸리고 흥이 나지 않았다. 어제 그 영감탱이만 아녔어도 잠은 잘 잤을텐데....
이제 이틀만 더 걸으면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다. 이렇게 정말 혼자서 걷고 가는 알베르게 마다 철저하게 혼자인 적은 드문듯하다. 장단점이 있지만 외로움이 컸다. 대신 나에 대해 매우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혼자서 아름다운 대자연을 흠뻑 느낀 것 같다. 또 신기한 것은 무섭지 않았다는 거다. 많은 산과 들, 외진 곳들을 지나 올 때도 무섭지 않았다. 비를 맞고 물에 잠긴 길을 돌아 갈 때도, 대형 트럭이 나를 쓰러뜨릴 듯 바람을 몰고 지날 때도, 눈비바람이 내 몸을 갈기며 흔들 때도 신기하게 무섭지 않았다.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에너지에게 보호 받는 느낌이랄까? 지나고 보면 그런 게 느껴졌다.
낮의 터무니없는 가격 테러 식당의 만행에 반문이라도 하듯이 라세의 마리아 호세 레스토랑은 맛난 라자냐와 하우스 와인을 무제한 주고도 나에게 5유로 밖에 받지 않았다. 고마워서 주인 이름과 가게의 한글 이름을 한지에 붓펜으로 적어드렸다. 좋아해줘서 더 고맙다.
산티아고까지 60km 미터도 남지 않았다.
마침내 산티아고 길이 유독 외롭고 거대한 자연과 함께한 길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내일도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