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오우렌세 Ourense ~ 오세이라 Oseira : 31km
오늘은 간만에 날씨가 좋았다. 하루 쉬고 심지어 온천에서 피로를 푼 덕에 아침에 출발할 때 몸이 가뿐했다.
오우렌세의 시내를 나오는 길에 딱 한 젊은이만 나에게 부엔 까미노라고 인사해 줬다. 이 도시의 다른 사람들은 지팡이를 짚고 큰 배낭을 메고 가는 동양녀를 이상한 눈빛으로 계속 쳐다봤다. 아마도 비수기인 시기에 혼자 걷는 순례자가 좀 이상해 보였을 수도 있다.
미뇨강을 가르는 로마시대 다리를 건너면 이 도시를 거의 벗어난다. 도대체 로마 건축가들은 무슨 공부를 했기에 이천년이 지나도 잘 사용할 수 있는 이런 튼튼한 건축물을 만들까? 까미노 중, 은의 길에는 로마시대 건축물 특히 도로나 수로 등을 종종 볼 수 있다. 메리다의 수로나 엑스트라 마두라 지역의 벌판에 버려진 대로는 아직도 튼튼하다. 은의 길은 로마 건축 기술의 위대함의 증거다.
오우렌세를 벗어나는 데만 한참을 걸렸는데 도시를 다 벗어나 오르막에서 내려다 보니 온 도시가 훤히 다 보였다. 날이 맑아 작은 개울물과 동네 가축들과 고양이들이 간만에 난 햇살을 즐기는 모습을 걸으며 사진에 담았다.
까사노바스 Casanovas를 지나 세아Cea에 도착했다. 안내책자에서는 이곳에 머무는 경로를 추천했지만 나는 좀 더 걸어 가기로 했다. 세아의 알베르게에 오후3시 50분에 도착해서 호스피탈레로에게 도장을 받고 오세이라의 수도원 숙소가 열었는지 물어봤다. 수도원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싶어서 였다. 다행이 친절한 호스피탈레로는 수도원의 알베르게가 열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여기서 8.5km는 더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와 인사를 나누고 나왔다.
세아 이후에 삐뇨르Por Piñor 방향과 오세이라 방향이 갈리는데 나는 더 둘러가야하는 길이지만 오세이라Variante Oseira 방향을 택했다. 그 뒤에 산길에 접어들어 물에 잠긴 길을 건너, 늦지 않으려고 얼마나 미친 듯이 걸었던지.... 다행이 험한 산길이 아닌 국도가 나와 안심하고 걸었다. 나 아마 한국가면 산에서 날라 다닐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차피 등산을 잘 안하는데, 요새 내가 걷는 길을 보건데 산악인 될 기세다.
수도원까지 도착하는 마지막 구간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걸었다. 지난번처럼 해질녘에 도착하면 곤란하니까. 그렇게 서둘렀음에도 오후 6시 반이 되어서야 오늘의 최종목적지 오세이라Oseira에 도착했다. 다행히 운이 좋아 알베르게 담당자가 문들 닫고 집에 가려고 주차한 차를 타기 직전에 만났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이 산 중 계곡에서 어쩔 뻔 했나 아찔하다.
오늘의 숙소는 오세이라 수도원Oseira Monasterio이다. 내가 이제까지 본 유럽의 수도원 중에 제일 웅장하고 큰 규모의 수도원이다. 첩첩 산 중에 있다. 정식명칭은 산타 마리아 라 레알 시토회 수도원Monasterio de Santa María la Real de Oseira이다. 12세기부터 존재한 이 수도원은 오랜 시간을 거쳐 지금의 큰 규모를 갖추었다고 한다. 전에는 150여 명의 수도사가 있었다지만 지금은 11명 정도의 수도사가 있다고 한다. 이 어마어마한 건물들을 어떻게 관리하려고 하는 걸까 생각이들 정도로 정말 웅장하다. 심지어 여길 오려면 까미노 루트 중에 5km나 더 돌아가야 하지만 여기 에 오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조개껍질에 내 이름을 적어 들고 간 Rincon de Peregrino의 주인에 여길 꼭 들러보라고 했다. 역시 현지인의 조언만큼 훌륭한 것은 없다. 이곳의 위치는 찾아오기도 힘들지만 순례자가 아니면 숙박도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순례자 숙소는 수도원의 한쪽에 1층에 마련되어 있었는데 살짝만 잘못 돌아 누워도 떨어질것 같은 작은 2층 침대에 벽면에는 성인들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매우 넓은 편이어서 혼자 쓰기에는 너무 넓고 추운데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으라고 해서 그나마 작은 사무실 같은 곳의 좁은 나무침대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오후 8시 반쯤 수도사 한분이 알베르게 문을 두드리시더니 밤 10시에 한 순례자가 도착할 것이니 문을 잠그지 말란다. 이 밤에 길이 보이냐고 물으니 그 분 말로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란다. 밤10시 반이 되어 가는데 그 순례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오늘따라 둥글고 멋진 달님이 하늘을 밝게 비추신다. 밤에 오는 그 순례자도 무사히 당도하길...
내일 나는 또 도전을 해야 하는데 32km를 걸어야 한다. 그리고 내일 아침 7시에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있단다. 수도사들과 함께 미사를 본다고 했다. 이런 경험은 매우 귀한 것이어서 기대된다. 지난번 세비야 지역에서 벗어날 즈음 한 수도원에 묵었을 때 항상 웃음을 잃지 않던 아주 특별한 신부님의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생각난다. 그 정성에 감동 받았었는데 내일은 또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나의 이번 순례에 파울로 코옐로의 “순례자”에 나오는 것처럼 마스터를 만나는 건 아닐까? 이런 저런 상상을 해봤다.
그리고 며칠 후면 마침내 산띠아고다...
내일도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