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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라자 Laza ~ 비야 데 바리오 Villar de Barrio : 21km 라자를 나와서 평탄한 길을 걸었다. 두 갈림길에 화살표가 애매해서 서 있다가 마침 차가 천천히 지나가 길래 운전수에게 물었는데 그는 차에 내려서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다음 마을에 지날 때쯤 이 표시가 맞나? 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좀 전에 길을 알려준 그 아저씨인데 이번엔 다른 차를 타고 가다가 서서 창문을 내리고 또 나에게 길을 알려줬다. 이 아저씨는 내가 필요할 때 슉 나타나주는 신기한 분이었다. 처...천산가? 두 번째 마을 따미셀라스Tamicelas을 지나자 그 아저씨가 알려준 대로 오르막길이 시작 되었다. 안내서에서도 빨간색에 느낌표를 두개나 넣어 급한 오르막이라고 강조되어있었다. 오르기도 전에 그 구간이 늘 고민거리였는데 두 시간 반 정도의 결전? 끝에 그 오르막길을 다 오를 수 있었다. 뒤를 돌아 내가 이제껏 걸어온 길을 보니 산을 넘다 못해 산맥을 며칠 새 통째로 건너온 듯하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오르막을 거의 다 올라. 까미노를 상징하는 꼰차스Conchas(조개껍질)로 가득 채워진 린꼰 데 꼰차Ricon de conchas의 집에 들러 구경도 하고 커피도 한잔 하고 10여 km의 여정을 오늘의 목적지까지 걸어가면 딱이겠구나 하며 들렀는데... 아쉽게도 문이 닫혀 있었다. 불은 켜져 있는데 문만 잠겨있었다. 아마도 주인과 나의 시간이 안 맞겠거니 생각하고 화장실을 이용하고 사진을 찍고 잘 쉬다가 간다고 쪽지를 문 앞에 써 붙이고 나왔다. 내리막길 이제 산티아고까지 140km가 남았다. 이렇게 정말 혼자 까미노를 걷는 건 처음이다. 길에서 정말 아~무 순례자를 만나지 못하다니! 덕분에 자연화장실 이용은 무지 순탄하고 여유롭다. 산을 다 넘어 (에우렌세 라는 곳을 지나면 이런 무지막지한 오르막이 하나 더 있단다) 내리막길에 다다르자 꽃이 보인다. 눈을 지나왔는데 벌써 꽃이라니! 더 내려오니 제법 꽃이 핀 나무가 많다. 눈비를 거쳐 얼음길을 지난지 걸어 이틀인데 여긴 꽃이라니.. 내리막길은 무릎에 무리가 갈까봐 더 조심해서 내려오느라 시간이 제법 걸린다. 비바람에 꽃이 저기 한 무더기가 떨어졌나 보다 했더니... 노란 꽃으로 하트로 된 테두리를 만들고 그 안에 노란 까미노 화살 표시로 내려가는 방향도 꽃으로 표시해 놓았다. 너무 정성스럽게 잘 만들어진 꽃 까미노 표식이다. 누구냐? 이 로맨틱한 사람은? 가는 길을 멈춰 이 예쁜걸 만들어 놓을 줄 아는 순례자라니! 확~ 막~ 안아주고 싶다. 사람한명 만나지 못하는 길에서 너무 즐거운 선물을 받은 마음에 내려가는 내내 무릎 통증은 잊고 히히거리며 웃고 내려왔다. 비야 데 바리오Villar de Barrio의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내가 본 중에 제일 성의 없는 호스피탈레라 였지만 뭐 그렇게 대충하고 사는 사람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일을 오로지 돈 때문에 하면 그를 상대하는 사람도 그 자신도 너무 맥 빠지는 상황만이 남는다. 장을 봐와서 점심도 못 챙겨먹은 하루라 맥주와 초리소를 먹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알베르게에 들어온다. 세상에 이전 마을인 알베르게리아에서 들른 그 린꼰 데 꼰챠스 의 주인이다. 조개껍질과 내 메모를 들고 내가 있는 알베르게를 찾아온 것이다. 이런 신기한 일이! 역시 까미노를 사랑하는 사람은 놓치지 않는 신비한 순간이 있다. 린꼰 데 꼰챠스의 주인은 나의 순례이력도 자신의 가게에 남겨 두겠다며 조개껍질에 내 이름과 날짜를 적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가게에 달아주신단다. 나의 지나온 흔적이 순례자의 집에 남게 되었다. 물어물어 나를 찾아와주신 주인장님께 감사드린다. 그는 또 앞으로 내가 가게 될 길 중에 좋은 곳까지 알려주셨다. 내 크리덴시알(순례자 여권)에 스탬프에 싸인까지 해주셨다. 아 오늘은 큰 선물을 두개나 받았다. 즐거운 햇살까지 있었던 하루였다. 저녁 맛없고 비싼 할매 레스토랑만 아녔으면 더 좋을 뻔했지만 그래도 아무 먹을 데도 없는 곳 보다야 낫다. 오늘도 숙소엔 혼자지만 감사한 하루가 또 지나간다. 내일도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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