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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아 구디냐 A Gudiña-> 깜포베세로스 Campobecerros : 20km 눈을 뜨니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알베르게 2층의 커다란 창밖으로 눈이 쌓인 하얀 풍경을 보고 있을 때, 철길 위로 여우 한 마리가 신나게 뛰며 지나갔다. 뭐가 신이 나는지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 빈 철길 위를 내달리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이렇게 세상이 하얗게 덮히도록 밤새 눈이 온 줄도 몰랐다. 눈 온날 까미노라니 너무 새롭다. 날이 추울테니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온통 하얀 세상 속으로 걸어갔다. 마을에 아침 일찍 소여물 주러 가는 할아버지가 길을 알려주며 설마 혼자 가는 거냐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포르투갈 말과 섞인 듯한 갈리시아 사투리를 쓰는데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원래 이렇게 눈이 많이 오냐고 물으니 이번 겨울 들어서 여긴 처음 눈이 내린거 란다. 흠, 그날 내가 또 걷는구나. 이 산길을 말이다. 안내서를 보니 내가 해발 1000m이상의 곳에 있는 거였다. 어제 그 난리의 비바람 속을 지난 산 꼭대기가 1200m였다. 꾸준히 걷다보니 내가 이렇게 높은 지역에 와 있는지도 몰랐다. 어떤 일도 꾸준히 묵묵히 하다보면 높은 경지에 도달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어느새 말이다. 따뜻하게 하룻밤을 보내게 해준 마을을 벗어나니 온통 세상이 거짓말처럼 하얗게 덮여있었다. 도로를 타고 가는데 저 멀리 제설차가 먼저 한쪽 편으로 가준다. 고마웠따. 차도 다행히 눈길이라 천천히 갔다. 오늘이 일요일 오전인 것도 차가 없는 시간이라 다행이었다. 저 멀리 112 차가 오는데 어제 알베르게 문열어준 페르난도다. 통통하고 덩치가 큰 페르난도는 어찌나 친절한지 내가 못 알아들을 까봐 어제처럼 또 오늘 내가 가야하는 길에 대해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설명해줬다. 귀엽다. 하지만 자기는 차 안에 있고 나는 추운 데 서서 그의 친절한 설명을 차도 서서 한참을 들어야 했다. 그래도 그의 과한 친절이 웃음이 나게 했다. 눈 덮인 절경을 찍느라 매우 느릿느릿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페르난도가 설명한 곳으로 1km쯤 까미노 경로에 들어서니 절경인 호수가 아래로 펼쳐진다. 가방을 눈밭에 던져두고 바위위에 앉아 간단한 요기를 하며 거대한 눈 덮인 산들 아래로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드넓은 호수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장대한 모습은 그 속에 앉아 있으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을 만큼 멋졌다. 다시 도로 길로 접어들다가 차가 한대 지나가고 나는 사진을 찍으려고 서 있는데, 그 운전수도 차를 세우더니 그 절경의 호수를 DSLR급 카메라를 들고 찍는 거다. 내가 ‘너무 아름답죠!’ 라고 그에게 외치자 그 운전수는 나에게로 가까이 걸어왔다. 곱슬머리에 짙은 눈썹을 하고 날렵한 체격의 그는 꽤 호남형의 외모였다. 그는 내가 장갑을 떨어뜨렸다며 알려주고는 혼자 까미노 중이냐고 물었다. 난 이런 날씨에 혼자 간다고 하고 그는 다시 용감하네!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짧은 대화를 주고 받았는데 그 순간도 참 좋았다. 이름 모를 사람과 아름다운 장면을 공유한 셈이다. 나는 한 두 시간 쯤 더 걸어가야 한다고 하고 우리를 서로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차를 세우고 아름다운 것을 담을 줄 아는 운전자는 그가 처음이었다. 2시간 반을 더 가야 하는데 도무지 목적지에 가까이 닿지 않는 느낌이다. 중간에 까미노 길이 안내되었지만 걸어보니 빙판과 눈길에 물과 섞여서 안내판이 잘 보이지 않았다. 페르난도의 조언대로 시골도로를 따라 가는데 정말 산을 빙글 빙글 돌아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마침내 깜뽀스베세로스Campobecerros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보니 그림처럼 아름답다. 나를 보고도 짖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는 착한 동네 개를 옆에 두고 야고보 상이 중간에 있는 교회를 한참을 구경했다. 길을 물어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내가 마을에 도착할 때쯤 날씨가 좋아져 파란 하늘이 보였다. 숙소이름은 알베르게 로사리오다. 여주인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씻고 빨래를 하고 저녁을 먹으로 바에 가니 마을 위쪽에 있는 바는 군인 옷을 입은 사람들 천지다. 그래서 좀 조용히 저녁을 먹으려고 마을 아래쪽으로 방향을 바꿔서 내려가지 알베르게 주인이 운영하는 바가 있다. 그녀의 딸이 알베르게 운영을 맡고 로사리오는 바겸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맛난 렌틸콩 스프와 맥주를 한잔 하고 이런 저럼 이야기를 했다. 깜뽀베세로스에 들어설 때 길이 매우 좁아 이 산속 마을은 버스 같은 대중 교통 수단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산속에 어떻게 살고 물건은 어떻게 가져오냐고 물어봤다. 그녀가 말하길 쇼핑을 할 수 있는 다음 마을까지 개인차로 왔다 갔다 하지만 차가 없던 시절에는 25km가량을 걸어 내려가 물건을 사오곤 했단다. 그게 하루 만에 되냐고 하니 그렇게 했다고 한다. 대단한 마을 사람들이다. 로사리오가 며칠 뒤면 탈을 쓰고 춤을 추는 동네 전통 잔치라며 알베르게 앞에 있는 동상이 그거라고 말해줬다. 덧붙여 포르투갈인 순례자가 어제 이 바를 지나며 한국인 한명 온다고 이야기 해줬다고 한다. 어제 호스피탈레로도 내가 온다는 걸 이미 알고 있더니! 오늘도 수고한 당신~ 내일도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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