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루비안 Lubián ~ 아 구디냐 A Gudiña : 24km 마침내!! 갈리시아Galicia 지역에 들어왔다. 갈리시아에 왔다는 것은 이 순례여정의 최종 목적지 산띠아고 데 꼼뽀스뗄라에 가까이 왔다는 뜻이다. 하지만 오늘의 여정은 역대급으로 몰아치는 비바람의 연속이었다. 비가 와서 N-525 도로를 타려했으나 입구를 못 찾았다. 그래서 까미노 표시대로 가다가 비가 약간 잦아들었을 때 감사하게도 또 다른 사슴과 조우했다. 한참 멀리서 마주 쳐다보다가 하얀 엉덩이를 들썩이며 멀리 두 마리가 뛰어갔다. 지난번에도 두 마리가 같이 다니더니 오늘도 두 마리가 함께였다. 사슴은 두 마리씩 다니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산길로 난 길을 올라가는데 비가 다시 거세진다. 비바람이 어찌나 몰아쳤던지 나뭇가지가 부러져 일부 구간은 나뭇가지를 타고 넘어야했다. 산속에 물이 불어나 거친 산악 수준이었다. 산은 가파르고 물은 불어나서 옆 계곡으로 물이 콸콸 흘러갔다. 아 깐다A Canda까지 가는 까미노 경로는 어제 레미가 알려준 대로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까미노 표식마저 물과 함께 떠내려 온 낙엽에 다 덮일 기세였다. 속으로 이 구간의 까미노 표식 관리자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비바람에 나무도 많이 쓰러져 있었다. 괜한 오기가 생기며 내 이 길을 반드시 잘 지나가 주리라 다짐하며 젖은 발이고 뭐고 간에 온몸의 에너지를 뿜뿜 내며 걸었다. 잠시 올라온 길을 돌아보니 저 멀리 고속도로와 대형트럭들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저 고속도로 길을 갔어도 만만치 않았겠다. 지금 지나가야 하는 구간이 8km 정도의 거리니 이 험한 것도 곧 끝날 것이다. 마침내! 꼭대기에 도달했다. 비가 그치고 안개와 바람이 반대편 산 아래에서 내가 서있는 산 정상으로 번져 왔다. 나는 드디어 갈리시아Galicia에 도착한 것이다! 아무도 없는 산 정상에서 혼자 '갈리시아! 갈리시아!'라고 엄청 외쳐댔다. 최종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나만의 세레머니다. 다행이 내리막길엔 안개 속에 갈리시아에 입성하는 나 자신을 축하하며 어깨를 들썩 거리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내려갔다. 다른 순례자들도 갈리시아 지역에 들어온 것이 즐거웠을까? 한 큰 나무에 무언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서 보니 엄청난 신발들이 수도 없이 걸려있다. 가끔 까미노 순례자들의 짓궂은 행동들 중의 하나가 수많은 사연을 담은 낙서와 돌무더기 쌓아두기 인데 여기는 신발을 던져 걸어놓은 신발 나무다. 웃긴 장면인데 이런 날씨에 혼자 보려니 팀 버튼의 판타지 영화 속에 들어 온 거 같다. 산을 다 내려오니 다시 비바람이 세찼다. 빌라벨라Villavela에서 점심을 먹고 카페 주인에게 신문지를 얻어 신발의 물기를 말렸다. 이미 흥건히 젖어 있어서 물기만 좀 빼 는 거에도 젖은 발이 다시 상쾌해졌다. 휴식을 취하고 오늘의 최종 목적지 아 구디냐A Gudiña로 향했다. 비바람이 불어서 이번엔 N525도로를 걷기로 했다. 이제 12km만 더 걸어가면 된다. 도로는 완만해서 다행히 걷기 좋았다. 아까 지나온 길에 비하면 이제 ‘이 비바람쯤이야’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 경로의 풍경도 꽤 멋졌다. 날이 좋았다면 갖가지 색이 어울린 들판이 아름다웠겠다. 비바람이 얼굴을 너무 때렸다. 움직이기만 하면 비라니…. 나도 안다. 이 날씨에 그 비바람을 맞으며 국도를 걷는 건 제정신은 아니라는 것을…. ‘나를 본 수많은 운전자들이여, 그냥 순례자이니 혹 욕은 하지 마시라.’ 이런 생각을 하며 묵묵히 자청한 고난의 순례자가 되어갔다. 마침내 오후 6시가 되서야 오늘의 마을 아 구디냐에 도착했다. 동네 구멍가게의 노부부가 다행이 호스피탈레로를 불러줘서 수월하게 알베르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친절한 호스피탈레로 페르난도의 이름을 한글로 써주었다. 그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두 번, 세 번 알베르게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내일 가야할 길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고맙다. 역시 갈리시아의 알베르게는 시설이 좋다. 2층에는 침대 방이 여러 개 있었는데 페르난도가 아무 침대나 쓰라고 했다. 이 넓은 숙소에 오늘도 나 혼자 지내게 됐다. 씻고 저녁에 바에 가서 지난 번 주문에 성공한 꼬치구이를 시켜먹었다. 역시나 맛났다. 다시 비를 맞으며 숙소로 왔다. 전쟁 같은 하루였다. 장점은 몸에 근육이 다시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강해지고 있는 것일까? 자려고 누웠는데 천정에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내일도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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