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루비안Lubián 오늘은 어제의 험난한 날씨의 여파로 하루 쉬기로 결심한 날이다. 한적한 산골 마을 루비안Lubián에서 정말 빈둥빈둥 하며 빨래를 하고 쉰다. 좋다. 오전에 비가 온다더니 안와서인지 알베르게에 포르투갈 순례자 한명이 도착했다. 그도 간만에 만난 순례자 동료인 나를 보며 매우 반가워했다. 하지만 그는 다음 마을까지 갈 계획이어서 부스스한 모습의 나와 인증샷을 찍고 진한 포르투갈식 볼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점심을 해먹고 여유롭게 동네 산책을 했다. 루비안은 늑대가 많이 나타났다고 한다. 나의 또 다른 원격 순례자 동료가 된 레미가 늑대의 전설이 유명한 동네이니 늑대 안 만나게 조심하라고 알려주었다. 먼저 이 길을 지난 그는 요즘도 내내 얼마나 갔냐고 물어보고 미리 조심해야 할 사항들을 알려주곤 했다. 비아 델 라 쁠라따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이다. 그의 말대로 루비안에는 꼬르뗄로 도스 로보스Cortello dos Lobos라는 것이 유명했다. 산악 마을인 이 지방에서 살아있는 늑대를 사냥하기 위해 둥글게 3m가량의 돌탑을 쌓아 만든 함정처럼 생긴 유적지가 있다. 이 함정에 염소나 양을 미끼를 삼아 넣어 두면 늑대가 그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이곳으로 들어가 출구를 찾지 못해 인간에게 포획된다고 한다. 마을의 젊은이들이 이때 잡은 늑대를 당나귀에 싣고 온 마을을 행진했다고 전해진다. 어쩐지 이런 외진 곳에 돌로 튼튼히 만든 집이며 규모가 있는 채 유지 된 것은 독특한 마을의 공동체를 강화하는 이런 문화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도 늑대가 많이 출몰하는 지역이었다고 하니 혼자 걸을 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쉬는 날이라 컴퓨터를 간만에 켰다.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혹시나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번엔 경량 노트북을 가지고 왔다. 그래서 가방의 짐 중에는 외모를 꾸미는 따위의 물품들은 다 뺏다. 메일을 확인하니 유지보수비도 제때 안주는 레스토랑 웹사이트의 팝업 제작 요청이 와 있었다. 숙소에는 와이파이가 안 되서 길가에서 와이파이 되는 곳을 겨우 찾아 길가에 앉아 디자인 작업을 해 이미지를 업로드했다. 겉모습은 완벽한 디지털 노마드이다. 저녁에 다시 비가 왔다. 하루를 산골 마을에서 유유자적하게 쉬고 나니 좋다. 며칠 더 이렇고 빈둥거리고 싶다. 하지만 나는 산띠아고가 있는 갈리시아로 가야한다. 내일은 좀 맑았으면 좋겠다. 내일도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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