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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리께호 Requejo ~ 루비앙 Lubian : 21.9km(길을 잘못들어 엄청 돌았음. 원래 19km정도) 오늘의 날씨는 정말 변덕스러웠다. 처음엔 거센 비였는데 결국은 거센 눈이 왔다. 하루에 비에 천둥번개에 눈바람에 해가 쨍쨍 나더니 다시 거센 바람이 불고 밤엔 비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여우도 봤다. 리께호Requejo에서 아침에 바에서 커피와 빵을 시켜먹고 레이나라는 웨이트리스에게 한국이름을 적어주었다. 그랬더니 바에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나에게 까르떼라Carterra(고속도로) 조심해서 걸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출발하는 나에게‘께 발리엔떼Que valiente(꽤 용감하다)’라고 했다. 이 빗속에 걸어가다니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아마도 이 지역 사람들은 높은 지대라 기온이 번덕스럽다는 것을 알아서 이지 않을까? 심지어 오늘은 길에서 단 한명의 순례자도 만나지 못했다. 심지어 숙소에서도! 오늘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날씨가 안 좋을 때는 무조건 도로를 따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눈과 비바람에 잘 못하면 길이 유실되거나 안내 표지판을 잘 볼 수 없어서 길을 잃을 수 있어서다. 인생도 궂은 날일 땐 좀 내키지 않아도 자신을 보호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 조언도 흘려듣지 않고 한번 새겨두고 말이다. 비가 거세더니 눈이 오기 시작했다. 손이 얼어갔다. 저녁까지 새끼손가락이 얼얼하다. 중간에 고속도로 다리가 두개 있었는데 완전 무서웠다. 제설차까지 지나다니고 있었다. 어느새 세찬 눈바람으로 변해서 이것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난생처음 아무도 없는 산악지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제설차를 봤다. 다행히 운전수가 나를 보고 살짝 옆으로 가주는 센스에 감탄했다. 그 사람도 ‘이런 날씨에 순례자라니 미쳤군’하고 놀랬을 수도 있다. 그래도 제설차의 위용은 무서웠다. 다행이 가공할 눈바람을 피할 터널을 지나며 내가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조금 더 내려가니 빠도르넬로 Padornelo라는 마을이 나왔다. 그 작은 산속 마을을 지나는 순간에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뒤덮였다. 다행히 바를 찾아서 헤수스라는 이름의 주인장에게 커피와 초리소가 든 보까디요(샌드위치)를 시켜먹고 눈에 젖은 발을 말리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바에 들른 한 사람이 가여운 순례자로 보였는지 한 시간 여기서 기다리면 다음 마을인 루비안Lubian까지 데려다 주겠단다. 지난번 다짐한 게 차는 이제 얻어 타지 말야지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었지만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고맙지만 걸어가겠노라 하고 다시 눈길을 걸어 다음 마을이 있는 길로 내려갔다. 헤수스 아저씨가 알려준 것 같은 까미노 방향으로 들어섰는데 눈도 못 뜨게 눈바람이 다시 몰아친다. 5km를 더 걸었을까? 아끼베로스 Aciberos가 나온다. 단시간에 얼마나 눈이 많이 왔던지 마을 간판이 눈으로 다 뒤덮혀 있다. 이 마을을 더 지나니 눈이 그친다. 다행이다. 그런데 갑자기 파란 하늘이 짠 하고 나타났다. 정말 장관이다. 건너편에 마을이 하나 보였다. 어머나! 저기까지 가야하는 거야?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굽이굽이 굽어진 길이란 말의 뜻을 오늘에야 눈으로 배운다. 저 반대편까지 엄청 돌아가야 하는거다. 아까 살짝 의심스럽게 가파르게 내려가는 표식을 따라갔으면 또 내려갔다가 루비안까지 지름길로 올라가야 했을까? 눈에 보이는데 몇 km는 돌아가야 하는 지금 상황이 믿기지 않은지 온갖 더 나은 경우를 상상해 보았다. 아무튼 엄청 돌아갔다. 갑자기 기찻길도 보였다. 아베Ave(스페인에서 포르투갈까지 가는 기차노선, 아직도 공사 중)를 놓는 공사구간인데 공사비용이 비싸 진행하다 안 되고 있다는 그 기차선 공사구간이 나왔다. 중단된 공사구간은 버려진 곳 같아 무서워서 어여 여기를 지나가야지 하면서 빨리 걸었다. 그 순간! 여우가 나타났다. 주둥이와 꼬리는 검고 붉은 갈색 빛깔의 여우였다. 여우도 나를 보고는 ‘어~인간이네’ 하는 것 같았다. 여우도 나도 의외의 존재를 갑자기 만나 잠시 머뭇하며 숨을 꼴깍 삼켰다. 잠깐 둘이 눈을 마주쳤다가 여우는 아주 시크하게 이내 수풀 뒤로 우아하게 사라졌다. 이렇게 가까이서 본 야생 여우는 처음이다. 도대체 좀 전 계곡 반대편에서 오늘의 목적지인 루비안을 봤는데, 언제 도착하나… 공사구간을 벗어나자 바로 루비안이 나왔다. 작지만 아담하고 규모 있는 산골 마을이다. 여기는 돌아가면서 마을 주민이 알베르게 열쇠를 가지고 호스피탈레로를 한다고 했다. 오늘의 당번인 마리아 루이사 아주머니가 와서 내일도 비가 오니 하루 더 있어도 된다고 했다. 비도 비지만 무릎이 아파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일은 쉬어가기로 했다. 이런 심하게 변덕스런 날씨에 무슨 영광을 보려고 내가 무리를 하겠나싶었다. 슈퍼에 가서 저녁거리를 사와 해먹고 동네 개 두 마리가 계속 내 주위를 어슬렁거리는데 귀여워서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우리 집 강아지 생각도 하고 그랬다. 알베르게가 집을 개조한 공간이라 아늑하고 좋다. 오늘은 정말 정신없이 변덕스런 그리고 꽤 용감했던 하루다. 내일은 하루 쉴 테다. 그래도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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