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리오네그로 델 뿌엔떼 Rionegro del Puente ~ 아스뚜리아노스 Asturianos : 28.6km
오늘은 날씨가 맑았다.
어제 저녁에 만들어놓은 삶은 계란과 커피를 먹고 천천히 알베르게를 출발했다. 상태를 보고 몸부웨이Mombuey까지 갈지 어제 마누엘라 할머니가 숙소가 열었다고 한 아스뚜리아노스까지 갈지 길의 상태를 봐야한다.
몸이 날씨와 하루 종일 걷기에 적응하느라 퉁퉁 부었다.
몸부웨이까지 안내 지도에는 오르막길이라고 했는데 아주 완만하게 올라가는 길이라 오르막길이란 느낌도 없이 하얗게 새어버린 풀길을 따라 쭉 걸어가야 했다. 쉴 곳이 없었는데 이끼 낀 바위들 틈에 가방을 세우고 발의 열을 식혔다. 발에 열이 차면 빼줘야 한다. 아니면 열기가 차올라 힘들어진다. 신발은 자고로 좋은걸 해야 덜 고생한다. 물이 새거나 하면 걷는 당일도 그렇지만 다 마르지 않은 그 다음날까지 힘들다. 지난번 봄에 걸을 땐 발에 얼마나 물집이 생겼는지 모른다. 스틱은 처음 써 보는데 정말 유용하다. 무게 분산을 골고루 하니 한 개 만 사용하는 것 보다 두 개를 쌍으로 사용하는 게 최적이다.
오늘은 걸으면서 예전에 프랑스 까미노에서 만난 친구들이 하나둘 생각났다. 다들 처음 피레네를 같이 넘어 동지애 같은 게 생겼었는데 네덜란드부터 무려 3개월을 걸어온 안느 마리, 프랑스에 사는 아일랜드녀 붉은 곱슬머리 캐롤, 그녀는 한국인 순례자들의 다이나믹하게 자는 버릇의 에피소드를 많이 가지고 있다. 다들 보구싶네.
몸부웨이 마을 입구 벤치에서 숨을 돌리고 알베르게를 찾았다. 그런데 알베르게가 너무 쉬기에는 별로여서 길을 물어 모퉁이 바에서 감자오믈렛과 소세지 조각 그리고 커피를 시켜먹고 다시 출발 오후 1시가 됐는데 17.5km를 더 가야 한다. 잘 할 수 있겠지?
어제 그제 기분이 별로인 건 알베르게가 닫힌 상황이 어쩔 수 없지만 걷는 데까진 다 걸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비수기 겨울에 비아 델라 쁠라따를 완수 하는 것에 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
다행이 2~3km 마을이 4개 있었다. 간간히 발도 쉬어주고 중간에 알베르게가 있다고 한 마을에 도착했지만 너무 고요해서 뭘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성당에 올라가 종탑까지 구경하고 내려왔다. 이제 해가 지려면 두 시간 남짓 남았다. 얼른 서둘러서 가는데 무릎 뒤에 통증이 있다. 무릎 보호대가 너무 조였나?? 두개의 마을을 더 지나 마침내 오늘의 목적지인 아스뚜리아노스Asturianos에 도착했다.
알베르게가 마을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데다가 외관이 무슨 청소년 수련원 같다. 여름에 여긴 좋겠구나 싶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웬걸 안드레스가 있다. 그런데 자기는 발에 생긴 커다란 물집 때문에 병원이 있는 뿌레블라 데 사나브레스Puebla de Sanabres로 지금 간단다. 통증이 심한지 발을 절뚝거린다. 그래도 유일하게 같은 시기에 걷는 순례자인데 이제 다시 못 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다시 만난 반가움의 인사도 잠시 잘 치료하고 내일 보자고 했다.
나도 오른쪽 무릎 뒤가 부었다. 아무래도 무릎 보호대가 너무 조이는 상태에서 장시간 걸어서 인듯한데 혈액순환을 잘 되게 스트레칭도 하고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숙소 옆에 바에서 알베르게 순례자 스탬프를 받고 저녁을 먹었다. 소꼬치구이를 팔았는데 육즙이 흘러 너무 맛났다. 그런데 이게 1유로라니 저렴한데 맛까지 훌륭해서 하루의 피로가 사라진다. 이렇게 단순한 하나에 기분이 또 달라진다. 저녁을 맛나게 먹고 혼자인 방에 빨래를 말리며 누웠다. 고단한 하루가 또 여유롭다.
내일은 또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까미노 사나브레스Camino Sanabres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운데 포르투갈 국경과 근접해서 위치한 산맥지대로 접어드니 산세가 평지보다는 험하다. 그래도 세비야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우여곡절 끝에 730km이상은 걸었다. 한국으로 치면 부산부터 걸어서 서울을 지나 계속 걸을 수 있다면 평양까지 걸어간 거리 같다. 섬나라 같은 한국에서 1000km를 걸어 갈 수 있다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돈들이고 시간들이고 생고생 같지만 내 두발로 이 순례를 완성하고 싶다. 여름은 더워서 힘들어 피했더니 겨울은 사람이 거의 없어서 외로움과 나 자신과 체력의 싸움이다. 이제 비는 적응이 되어서 촉촉함과 판초 우비 쓰는걸 즐기니 참 다행이다.
내일도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