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자모라 Zamora ~ 몬따마르따 Montamarta : 18.5km
자모라 알베르게에서 나올 때 이탈리아인 호스피딸레로 봉사자 마르꼬 할아버지랑 기념 사진을 찍고 이메일을 교환하고 자모라를 떠나오기 시작했다. 2년 만에 다시 시작한 까미노에 대한 약간의 긴장감이 일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은의 길은 겨울이었다. 그리고 처음 사용해 보는 트래킹용 스틱 또한 어색했다. 나중에 느낀건 데 이걸 왜 내가 안 쓰고 간달프처럼 긴 나무막대를 찾아 산을 헤매거나 힘들게 다녔다 싶을 정도로 가볍고 걸을 때 무게를 분산해줘서 무릎에 무리가 덜 갔다.
자모라도 꽤 큰 도시여서 이 지역을 벗어나는데 한참 시간이 걸리긴 했다. 간만에 걷는 거라 느리기도 했고 저질 체력과 그 동안 과도하게 불어난 체중 탓에 금방 헉헉 거렸다. 도시를 벗어나며 드디어 흙길이 나오길래 스패치를 장착하고 본격적으로 드넓은 평야를 걷기 시작했다. 까미노 표시가 보여서 얼마나 안도를 했는지…. 몬따마르따는 지난번에 레미가 거기까지 얼른 걷고 나서 버스를 타고 나를 만나러 왔던 그 도시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는 겨울이라 닫았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다시 걷는 것에 익숙해져야 하는 첫날인데 비까지 와서 기운이 축축 쳐졌다.
길은 평온했고 어느새 정말 다시 이 길을 걷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 놀라워하다가 회사 사람들의 욕심은 뭐더러 그리 끝이 없었나 하는 생각들…. 나는 이제 뭐 먹고 살아야 하는 생각들…. 그래도 마저 이 길을 걸을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들…. 또 오만 생각들이 오고가는 와중에 조그만 마을에 도착했다.
로알레스 델 빤 Roales del Pan. 안내서에는 별 볼을 없는 마을이라 쉽게 지나가라고 되어 있었지만 길을 묻는 족족 너무 친절하신 마을 사람들에 놀랬다. 급기야 아윤따미엔또Ayuntamiento(면사무소, 시청) 까지 들어가 화장실도 이용하고 스탬프도 받았다. 길을 또 잘못 들어서려 하자, 마을 사람 중 한명이 나를 ‘헤파Jefa(사장님, Boss의 여성형)’라고 부르며 그 골목 아니고 그 다음 골목이라고 소리쳐준다. ‘뭐냐 이 마을 사람들 다 친절해!’ 마을을 떠나기 전에 요기도 하고 커피도 한잔하려고 작은 가게에 들러 수다를 떨며 배를 채운 뒤, 다시 가방을 둘러메고 길을 나섰다. 아직 14km나 더 걸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조언들 듣고 길을 나섰다. 길은 그나마 평온해서 좋았다. 좀 쌀쌀했고 엉덩이가 너무 추워서 내일부턴 엉덩이를 덮을 고민에 또 생각하고 생각했다.
라라 랜드 OST를 듣고 고작 18km의 거리인데 역시 체력이 바닥이라 느리게 도착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몬타마르따에 도착했다. 알베르게를 찾은 길은 너무 힘들었고 발에 열이 차기 시작해서 혹시나 물집이 생길까 노심초사했다. 지난번에 걸을 땐 발에 말도 못하게 물집이 창궐해서 그거 터뜨리고 밴드붙이고 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고통이 동반되었다. 이번엔 정말 물집 안 생기게 잘 해야겠단 생각을 했다. 발에 열기가 너무 차다보면 그게 바로 물집이 하나둘 나타난 경험으로 발을 식히는 요령도 터득했다.
몬따마르따의 공립 알베르게는 연락처를 남겨두지도 않고 봄에나 열거야 하는 종이만 문 앞에 붙어 있었다. 어제 마르코 할배가 다른 호스텔 알려줬는데 내가 그 정보의 사진을 안 찍고 와버려서 자모라 알베르게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다시 그 호스텔 주인에게 전화해서 위치를 묻는데 결국 주인아주머니가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며 마중을 나오셨다.
몰라니 데 까스띠요Molina de castillo라는 곳인데 1910년대에 자동식 밀가루를 생산하던 동네 천재가 만든 정제소가 숙박시설과 박물관이 함께 있는 곳으로 변모한 곳이었다. 바르셀로나 출신인 주인아주머니는 정성들여 다른 손님을 챙기고 난 뒤 나는 불쌍한 순례자라고 숙박비를 깍아 주셨다. 혼자 독방이라니 그것도 화장실 딸린…. 아 지금도 너무 좋다. 이 널찍하고 자유로운 공간을 혼자 쓰다니! 친절한 아주머니 덕에 손빨래도 하지 않고 세탁기를 돌리며 저녁을 해먹었다. 혼자 침대에 누워 다른 이의 코골이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좋구나. 이런 날도 있는 거겠지.
내일은 비까지 온다는데 22.7km를 걸어야 한다. 점점 잘 걸어지면 좋겠다.
내일도 부엔 까미노!
안녕하세요, 사용자님! 카미노를 걸으시면서 느끼신 감정이 글을 통해 느껴져서 저도 여행을 다녀온 것 같아요. 저렇게 긴 거리를 걸으면서 당장은 힘들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경험이 정말 소중하고 값진 것 같아요. 사용자님의 포스팅을 읽고 저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비록 체력이 바닥이라고 하셨지만, 그 속에서도 드러나는 사용자님의 열정이 멋지네요. 다음 여행 이야기도 기대하겠습니다. 건강하게, 즐겁게 여행하시고, 부디 좋은 날씨가 계속됐으면 좋겠네요. 내일도 부엔 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