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세비야, 한국 그리고 까미노 바이러스(2) 문제는 그 한 달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3개월 무비자 유럽 거주 기간이 넘어가기 때문에 계속 머물면 불법체류자가 될 판이었다. 그래서 주말을 이용해 라이언 에어를 타고 영국 런던을 다녀왔다. 영국 입국 때 여권 심사에서 한참을 세워 놓았다. 문제는 내가 다시 돌아가는 나라가 스페인이었기 때문에 영국 입국은 할 수 있지만 내가 돌아가는 스페인에서 안 받아 줄 수도 있다고 보더 컨트롤러가 으름장을 놓았다. 여러 국가를 여행하면서 여권 심사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것도 인간이 하는 일인 지라 복불복이 많다. 1년간 처음 유럽 여행을 할 때 쉥겐 협약 때문에 무비자라도 유럽체류 3개월을 넘기지 않으려고 스위스행 기차를 탔는데 그날따라 여권 검사관이 나타나지 않는다던지,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나간 도장은 찍혔는데 또 프랑스로 들어올 때 버스에 입국 도장을 안 찍어준다던지, 남미에서는 페루에서 칠레를 거쳐 아르헨티나를 가는 버스를 탔는데 중간에 사람들이 사라질까봐 버스 차장이 승객들 여권을 다 수거해서 보관한다던지 하는 이상한 상황들을 경험했었다. 그래서 나는 영국인 보더 컨트롤러가 으름장을 놓아도 그건 그때가서 보자고 무작정 생각했다. 세 번째 방문인 런던은 역시나 날씨가 스페인에 비해 우중충 했다. 나는 박물관을 좋아해서 열심히 그림들을 보고 세비야로 돌아왔는데 스페인 보더 컨트롤러가 스페인에 들어오는 목적을 물었을 때 은의 길을 걷는다고 하니 순례자였던 그 사람은 나를 매우 반기며 여권에 입국 도장을 찍어 주었다. 은의 길을 아주 길게 걷고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니까 아주 속인 것은 아니다. 3개월의 체류기간이 더 생겨서 나는 호세네 사무실에서 오전에는 디자인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시에스타를 즐긴 뒤 세비야를 탐험하고 또 탐험했다. 세비야는 14~15세기 유럽의 대항해 시대를 주도했던 곳이라 문화유산이 상당하다. 전통에 대한 집착?도 심해서 바에서는 밤마다 세비아나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신나게 노는 문화도 발달되어 있다. 세마나 산타 동안에는 성상을 온 동네 사람들이 구역마다 이고 지고 머리끝까지 가리는 모자를 쓰고 행렬을 하는 대형 종교 행사를 한다. 세마나 산타가 끝나면 페리아Feria라고 해서 각 회사나 모임, 그룹별 천막인 까세따Caseta를 치고 일주일 내내 축제를 벌인다. 흥이 상당히 많은 곳이다. 여름에는 47~48도 까지 올라서 낮에 길을 걷다가 일사병에 쓰러질 수 있는 정도다. 나는 그동안 회사 사무실에 있는 누리아와 친해져서 그의 가족들과도 잘 알고 지내게 되었다. 문제는 프로그래머였다. 게임 앱 디자인은 다 나왔는데 테스트 페이지 하나 보여줄 수 없다는 말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오랜 기간 웹디자인 쪽 일을 하면서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완성하지 못하는 프로그래머들을 종종 봐 왔는데 시간을 끌다가 그들은 사라졌다. 나는 호세에게 혹시 모르니 이 앱을 진짜 런칭하고 싶으면 다른 프로그래머도 섭외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했지만 그는 프로그래머를 굳게 믿고 있었고 나의 시간은 흘러만 갔다. 이제 정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기가 되어 호세에게 준비가 되면 관련 서류를 보내달라고 하고 누리아 가족과 이별을 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아쉽게도 프로그래머는 게임앱을 만들지 못했고 호세는 이 프로젝트를 접어야 해서 나의 정규직 계약도 물거품이 되었다. 다른 일을 하며 경비를 모아 2년 뒤, 나는 은의 길을 완성하기 위해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서 싸모라행 버스를 타고 이전에 내가 묵었던 알베르게에 다시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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