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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Salamanca 밤새 발이 엄청 아려왔다. 다들 코고는 소리도 요란했다. 오늘 35km를 가야하는 레미가 아침 일찍 침대로와 인사하고 갔다. 아~ 헤어지다니 너무 아쉬웠다. 레미도 아쉬웠는지 아들이랑 동갑내기인 나랑 같이 걸어 좋았는데 너무 아쉽다고 호스피탈레라 누란자에게 그랬단다. 벌써 보고 싶다. 아침에 보니 왼쪽 발이 통통 부어있다. 누란자의 조언은 오늘은 돌아다니지 말고 찬물에 발을 자주 담그고 발을 쉬어줘야 한단다. 그래, 쉬어 주라고 엄청난 붓기로 신호를 보내오는데 쉬어줘야지. 기부제로 운영되는 살라망까의 알베르게라 실은 하루만 묵을 수 있는데, 아프거나 자리가 넉넉한 시기는 하루 더 묵게 해준다. 그래도 아홉시에서 열두시까지는 청소도하고 정리도 해야 해서 나가 있어야하는데, 누란자가 내 발을 보더니 나가지 않아도 되니 침대에 누워서 발을 쉬어주란다. 나는 찬물에 소금을 좀 풀었다. 붓기 뿐 아니라 곳곳에 나타나신 물집도 잠재워 줘야했다. 열한시 반이 되니 벌써 20km를 걸어온 무쇠군단 독일인들과 네덜란드인이 왔다. 알베르게 안에 있는 나를 보더니 신발부터 벗어야하는데 내부로 훅 들어와 반가이 인사했다. ㅎㅎ 그렇게 좋아? 난 무쇠군단들이 무섭다 ㅠㅠ 나이들도 다 나보다 많으면서 엄청난 속도로 걷는다. 오늘 오후 여섯시에 한동안 같은 알베르게에서 보낸 순례자들 끼리 모이잔다. 내일을 기점으로 누구는 집으로 돌아가고 누구는 살라망까에 더 머무르니 일정이 달라질 거라고... 유럽이나 스페인 사람들은 시간날 때 조금씩 일정 구간을 걸어 산띠아고 데 꼼포스델라까지 까미노를 완성한다. 순례자 여권인 크리덴시알Credencial에 도장들이 지나온 길을 증명하므로 어떤 속도로 길을 지나왔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지나야 하는 길을 어떤 굽이 길들을 지나왔느냐가 순례를 완성한다. 인생처럼 어떤 길들을 어떻게 지나와서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하는가? 얼마나 빨리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나가는가? 그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느끼는가? 그러므로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것이 순례를 완성한다. 점심 거리를 해결할 겸 밖에 나갔다. 살라망까 건축물은 다들 웅장했다. 쭉 뻗은 까데드랄 종탑과 튼튼한 벽, 화려한 건물 조각상이 벽면을 가득 채운 건물들이 고등학교나 대학 건물로 쓰인다. 스페인에서 꽤 오래된 대학이 있는 곳인데다가 대학들이 많다. 고로 학생들도 많다. 바에 맥주와 따파스도 2유로면 즐길 수 있다. 플라자 마요르Plaza de Mayor는 마드리드Madrid의 광장과 비슷한 모양새지만 인근 대학의 학생들이 그룹으로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이야기하며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뭘 깔고 앉는 그런 거 없이 온돌방에 앉는 거 마냥 그렇기 편안하게 앉거나 누워 있어서 젊음과 자유가 동시에 느껴졌다. 저녁에 알베르게에 있는 순례자들이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무뚝뚝한 독일인들도 기념으로 사진 찍는 걸 좋아하다니! 나는 또 그들의 어떤 기억에 자리 잡아 추억에 사진에 걸려 질까? 사진사를 자처한 누란자가 사진기 카메라에 손가락을 가리거나 셔터를 대충 눌러서 사진 찍는 데만 한참이 걸렸다. ‘사진 찍는거 보다 걷는 게 더 쉬웠어요’를 외쳤다. 저녁에 산 에스테반San Esteban과 산 빠블로San Pablo성당의 미사를 하는데 성당에서 기도만 드리고 나왔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내일도 비가 온단다. 발 상태를 보고 35km를 걷던지 29km를 걷던지 해야 한다. 일이 있어 일요일엔 세비야로 다시 내려 가야한다. 그리고! 슬프게도 내 윌리(영화 캐이스 어웨이Cast away에 무인도에 갖힌 톰 행크스 배우의 유일한 무인 친구였던 배구공 극중 이름)인 나무 지팡이를 누가 가져가 버렸다. 세비야 지방의 기예나를 지나 올리브 나무가 많은 농장을 지나올 때 길에서 주워온 친구인데 ㅠㅠ 20여 일의 산과 들판을 내 손때가 묻게 같이 잘 걸어왔는데 흑흑흑... 물길을 지날 때면 물 높이와 돌이 튼튼한지 먼저 짚어 나를 보호해주던 소중한 지팡이인데... 나보다 먼저 산띠아고에 가겠구나. 제발 중간에 아무렇게나 버리지 않길... 크기며 무게며 높이며 손의 그립감이며 나에게 딱 맞았는데, 그립다. 나무 지팡이 윌리야! 벌써 길을 걷다가 내일 내가 지나갈 길 중 어떤 길이 쉽다고 레미가 메일을 보내왔다. 보고 싶어요 레미! 하루에 두개의 이별은 너무 가혹하지만 내일도 걸어가야지.... 내일도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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