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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모리예 Morille ~ 살라망까 Salamanca : 20km 레미와 함께 아늑했던 모리예 마을을 빠져 나오자 탁 트인 들판이 보였다. 오늘따라 해가 좀 더 일찍 뜬 거 같았다. 탁 트인 들판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멋진 농장을 지나쳤다. 레미가 '이 문이 250번째 여는 농장 문이야'라고 했다. 그걸 이제까지 다 세어보면서 걸었냐고 하니 씩 웃으며 농담이란다. 이런! 니콰라과 출신 아내를 둔 레미는 남미와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여러 해 동안 프랑스 NGO 활동을 했단다. 그리고 여러 차례 아내와 함께, 친구와 함께 여러 까미노의 다양한 루트를 걸었다고 한다. 스페인어를 매우 잘 하는데다가 호기심이 많아 이것 저것 지나가게 되는 마을 마다 동네 사람에게 잘 물어보고 많은 정보를 얻는다. 그리고 나에게도 알려준다. 돼지 농장을 지날 때는 돼지가 주로 먹는 나무 열매를 한참 동안이나 찾아 나에게 건네주었다. 한국이랑 조금 다른 모양새지만 도토리였다. 도토리를 먹고 자연에서 잘 자란 돼지로 만드는 하몽은 정말 맛있을 것 같다. 10여 km를 레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으니 멀리서 웅장하게 솟은 살라망까 대성당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어제 너무 많이 걸어서 그런지 왼쪽 발등이 아파왔다. 석회암으로 구성된 언덕을 오르니 작은 나무조각상으로 된 산띠아고와 함께 노란색의 철로 된 십자가가 있었다. 신발을 벗고 한참 쉬고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온 살라망까 청년이 사진을 부탁했다. 앞으로 5km 정도 더 걸어가야 한다. 양떼와 도시외곽 공원을 지나 시내로 접어들었다. 로마시대의 길고 튼튼한 다리를 지나자 살라망까 센트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살라망까의 알베르게는 멋진 공원 옆에 있다. 한 시부터 네 시까지는 알베르게가 문을 닫는데 이탈리아 호스피탈레라 누란자가 아직 오후 2시 반인데도 고맙게 문을 열어주었다. 가방이라도 맡길 수 있게 순례자를 배려해서 문을 열어 준 것이다. 나는 가방을 맡기고 네 시까지 센트로에서 점심을 먹고 장을 봤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살라망까 거리는 꽤 추웠고 한국인 그룹 관광객이 많이 보였다. 내일은 하루 더 살라망까에 묵는다. 왼쪽 발도 너무 부어서 아무래도 쉬어 줘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교육의 대도시 살라망까를 하루 더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 같은 레미와 작별하자니 서운했다. 다정하게 잘 챙겨주고,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고, 뒤쳐지면 기다려주고, 벌레 물린데 더 부을까봐 삼일 내내 밤마다 알러지약까지 챙겨주는 다정함. 너무 고맙다. 세비야 떠나온 지 20일 만에 살라망까에 도착했다. 은의 길 전체 루트 중 반 이상은 걸어왔다는 뜻이다. 스페인을 가로 지르는 루트를 보며 스스로 약간 대견스럽다. 이 길을 내가 다 걸어왔다니! 내일은 발도 쉬어주고 살라망까 탐험을 해야지. 내일도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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