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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갈리스떼오 Galisteo ~ 까르까보소 Carcaboso : 11km 알베르게를 나와 갈리스테오 센트로 성벽을 따라올라 다시 내려가다 긴 다리를 지났다. 강 주변엔 쉴 수 있는 탁자와 벤치가 많았는데 독일인 로지가 잠시 출발 전 쉬는게 보였다. 강 위의 다리에서 보는 갈리스테오는 멋졌다. 큰 학이 집을 지으려고 짚을 물고 날아가는 명장면도 보았다. 차도가 나오자 이제 까르가보소까지는 쭉 차도를 따라 가야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잠바를 벗어 가방에 묶으니 로지가 올라왔다. 그녀와 어제 알베르게에서 만난 엄청난 코를 고는 독일 여성 세 명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제 밤엔 사상 최대의 코골이 독일 할매들과 프랑스 할배와 방을 썼다. 방이 떠나가는 줄 알았다. 쭉 뻗은 나무 숲 옆 도로를 지나니 중간 마을이 보여다. 화장실도 해결할 겸해서 커피 한잔을 시켜 먹고 나니 오늘의 짧은 일정을 같이할 다른 순례자들도 까페 속속 도착해 목을 축였다. 그리고 도로를 따라 금방 까르바로소에 도착했다. 더 가고 싶으나 다음 마을 알베르게가 닫아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대신 내일 40km를 걸어야한다. 다행히 문을 연 슈퍼에서 점심과 저녁거리를 사서 밥을 해먹고 소금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발아 고생시켜 너무 미안하다. 군데군데 물집이 굳어진 것과 새로 생겨난 물집들이 아우성이다. 미안하니 잘 가라 앉아 다오. 내일 길게 걸어 고생할 텐데 무사히 견뎌다오. 갈리세오에서 오늘 출발할 때 멋진 무지개를 보았다. 모든 근심과 힘겨움이 날아가길 바라는 하늘의 메시지라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오후 시간이 여유로워 사람들에게 한글로 이름을 적어줬다. 알베르게 할매가 좋아하셨는데 전에 수도원에 수녀님처럼 볼을 쓰다듬어 주셨다. 순식간에 손녀 된 느낌이다. 다정함이 다정함을 낳는 현상이랄까? 작은 성의가 계산 따위 없이 따뜻함으로 돌아온다. 네덜란드인 에두아르도 할배는 글을 쓴다고 했는데 너무 웃긴 행동을 많이 한다. 호기심 많은 청년 같다. 처음에 그 행동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할배가 오늘 겪은 자기 모자에 똥 싸고 간 제비 이야길 하는데 웃겨 죽는 줄 알았다. 똥을 맞은 모자를 씻은 뒤 나에게 들고 와 그걸 내밀며 ‘냄새 맡아 볼래?’라고 해서 넘어 가시는 줄 알았다. 좀만 젊으셨어도 내가 무지 반했을 건데.... 새똥 냄새 맡아 볼래라고 해서 내가 반하는 게 아니고 날카롭게 생긴 지적인 사람이 허당미가 있어서 반한다는 이야기이니 곡해하지 마시길! 내일은 40km를 걸을지 20km를 걸을지 생각해봐야한다. 오후에 숙소에 있으며 새로 들은 정보로는 세마나 산타라 이 지역 알베르게가 다 찼단다. 다들 다음 구간의 알베르게나 호스텔에 예약을 한다. 잠자리가 없을까봐 말이다. 순례자가 걸은 만큼 가서 자고 자리가 없으면 다음 마을로 가는 거지 예약이라니! 다급해지니 사람들이 도무지 알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아니면 예약하지 않는 내가 이상한건가....? 걷다보면 그날그날 답이 나온다. 순례자가 예약이라니...하지만 숙소 예약 어플이 생겨나고부터 순례자들이 사설 알베르게에 예약을 하고 걷는 것이 21세기 순례자들의 모습이긴 하다. 내가 너무 고지식한 것일 수도 있는데, 순례자 경험이 우선이 나는 프랑스 작가 드니 디드로의 책 ‘운명론자 자크’처럼 운명에 맡겨보기로 매번 시험을 한다. 심란한 와중에 에두아르도 할배가 내가 선물로 드린 한국 화선지를 잘 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며 혼자 부스럭거리더니 지팡이에 테이프로 감싸고 뿌듯해하신다. 아놔~ 할배가 많이 그리울 거예요. 내일도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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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유저님의 포스팅을 보았습니다. 캄이노 순례자로서의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서 글로 표현해주셔서 저도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고생하는 발에 멘탈 후원을 드립니다! 무지개도 보셨다니 정말 좋은 날이었을 것 같아요. 갈리스떼오에서의 멋진 추억과 함께 내일도 좋은 하루 되시길 응원합니다.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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