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또레메히아 Torremejía ~ 알후센 Aljucén : 33.2km
아침에 메리다로 걸어가면서 시간 계산을 했다. 은의 길을 시작한지 10일째가 되어 초반보다 걸음이 빨라지고 체력이 좋아진 것 같다. 그래서 생각보다 일찍 메리다에 도착할듯하여 여유가 되면 17km를 더 걸어가야지 생각했다. 전체 일정을 계산을 해보니 다음 달 말까지 도착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걷는 내내 복잡한 도시에 반나절을 발을 절뚝거리며 관광객이 되는 것보다 순례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메리다에 도착하기까지 N-630 고속도로의 갓길을 걷고, 거기를 벗어나니 어제와 같은 자잘한 돌길이 이어졌다. 메리다가 보일 때 쯤 도시 외곽은 늘 삭막하고 을씨년스럽다. 심지어 세퍼트 같이 크고 검은 개 가 내가 지나는 좁은 골목의 담벼락에 붙어 있었는데 주변을 지날 때 조금 무서웠다.
스페인의 작은 로마라고 불리는 메리다에 들어서며 드넓은 강가에 로마 시대 지어진 다리가 보였다. 다행히 공원이 있어 휴식을 취하며 도시락을 먹고 한참동안 다리를 보았다. 고대 로마 유적이 도시 곳곳에 남아있는 스페인 최대의 로마 유적지라고 한다. 메리다 시내를 들어서며 예쁜 도시라는 생각을 했다. 이천년의 로마 건축물이 곳곳에 그대로 살아 있는 신비로운 도시다. 복잡한 도심에서 종종 그렇듯 또 까미노 화살표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멋진 광장을 구경하고 길을 묻고 도시를 나오기 전, 까페 꼰 레체에 얼음을 잔뜩 넣어 마셨다. 동네 할배에게 도시를 나가는 길을 묻고 다시 출발했다. 메리다의 시내를 빠져나오는데 공원 같은 지역에 멋진 로마시대 수로가 보였다. 이천 년 된 건축물이 저렇게 멋지게 남아있다니! 그리고 수로가 저렇게 아름답다니! 주말이어서 그런지 곳곳에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더욱 멋있어 보였다.
여유로운 사람들을 뒤로하고 어렵게 차도를 따라 까미노 표시를 따라 뙤약볕을 걸었다. 교차로를 지나는 차에 탄 스페인 여인이 나를 보고 엄지를 치켜들고 지나갔다. 한 청년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런 이름 모를 사람들의 순례자를 향한 응원에 힘입어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토요일 낮이라 가족모임과 외곽나들이들로 도로에는 차가 많았다. 다행히 자전거와 도보길이 잘되어 있어서 호수가 보이는 곳까지 오르막과 시원한 내리막을 걸었다.
프로 세르피나 저수지Presa Romana de Proserpina에 도착하는 순간 너무 멋져서 오후 세시에 갈 길이 태산인데도 사진도 찍고 일일이 구경을 다했다. 기원전 1세기에 건설된 로마의 저수지란다.
두 개의 하천에서 물을 모아 저수지로 건설했는데 2천년이나 관리를 잘 해서 그대로 보존되어 온다는게 더 신기했다. 다음에 휴양지를 가라면 단연 여기로 해야지 싶었다. 까미노 경로는 호수를 따라 걸어서 나오도록 되어 있었다. 이 멋진 곳을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까페에 앉아 음료를 주문했다. 누가봐도 순례자의 몰골에 뜨거운 햇살에 얼굴이 다 익은 동양녀에게 까페 직원이 미가스migas(빵부스러기를 튀긴 간식거리)까지 서비스로 주었다. 고맙게스리...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잠깐의 휴식 후 힘을 다시 내어 걷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산의 농장과 언덕들이 펼쳐지고 오늘의 목적지와 가까운 마을에 도착하기까지 10km를 더 걸었다. 산인데도 모래 길이 많아 신기했다. 오후 다섯시 반. 오늘 종일 30km를 걸으니 마을에 도착할 즈음 발이 너무 무거웠지만 마침내 도착했다.
한적한 시골의 작은 알베르게 인데 사람이 북적인다.
주인장이 알후센Aljucén 마을의 교회에 오늘 묵는 순례자들을 데려가 일일이 그곳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고마웠고 이런 친절은 까미노 프랑세스 때 마법 같은 그라뇽Grañon 이후로 처음이다. 긴 하루였지만, 더운데 많이 걸어 발도 아프지만, 인터넷이 없지만!
오늘, 여기오기 잘한 것 같다.
좋은 날씨에다 한 적한 곳이어서 밤의 별이 아름답게 빛났다.
내일도 부엔까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