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6 -합리적 경험. 생각의 흐름은 점점 현실화되어가며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고대 그리스를 지나 중세 유럽으로 들어서면서 인간은 개별적 자아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기 시작했고 절대적인 권력에 매몰된 기득권과 각기 다른 양상으로 투쟁하며 가치 기준을 세워가곤 했다. 당시 사유와 인식의 근원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경험론과 합리론이다. 엄연히 다른 이론이지만 경험론과 합리론은 동일한 출발선상에 서 있었다. 사유와 인식의 주체를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나'로 보고 있다는 점. 즉 절대 권력의 지식과 힘에 복종하는 것이 아닌 오직 '나'에게서 비롯된 인식과 지식에 힘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두 이론 모두 독립적인 개인을 주체로 보긴 하지만 또 다른 차이점 역시 있다. 합리론은 개별적인 나로부터 만들어진 인식이 보편적인 인식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즉, 이성적인 사고로 보편적 인식을 도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일반화할 수 있는 명제와 보편적인 시각을 정립할 수는 있으나 자칫하면 권위라는 명목으로 휘두르기에도 꽤 쉽다. 내게서 비롯된 사고가 가장 합리적인 이성이자 이것이 곧 보편성을 띠니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며 내뱉을 수 있는 명목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경험론은 나라는 주체에서 시작된 사유가 곧 구체적이고 독립적인 나의 인식으로 귀결된다고 본다. 인식에도 개별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모든 것은 후천적인 경험을 통해 쌓이고 만들어져 가는 관념이라 주장한다. 분명 차이가 있어 보인다. 권력의 횡포로 획일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리스크만 줄인다면 합리론은 꽤 매력적인 편이다. 또한 나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 만연한 세상만 아니라면 경험론 역시 매혹적이다. 그러므로 합리론과 경험론 모두 가치가 있으며 연결되어 있다. 개인의 사색과 사유가 각자의 영역에서 자연스레 움직이며 하나의 인식이 되어가는 힘을 가진다. 그러다 개인의 이성적 사유가 어떤 지점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만난 또 다른 개인의 사유가 나의 것과 결을 같이 한다면 개인의 이성적 사유는 집단의 이성적 사고가 된다. 그리고 집단의 이성적 사고가 힘을 가져 큰 사회의 이성적 사고가 되면 이것이 곧 보편적 인식으로 탄생한다. 나는 나한테서 일어난 생각이었는데, 살다 보니 누군가에게서 일어난 생각이 나의 것과 비슷하면 눈덩이 불어나듯 힘을 갖게 되고 점점 생각이란 것에 응집력이 생기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존재했으나 독립적 공간이 아닌 개방적 공간에서 융합되어 가기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보편적 인식은 그 자체로 단단하게 존재하지만 또 각각 자신만의 인식과 사유의 명제는 정립해가고 있다. 이 독립적인 인식 역시 많은 후천적 경험의 적극 지지를 받아 또 다른 힘을 갖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각기 다른 형태의 인식은 서로를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보편적인 인식의 덩어리가 크다고 해서 독립적인 인식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며 개인에게 작용되는 지점과 원리가 다를 뿐이다. 있는 그대로 존재하되 내게 맞는 원리를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개별적 주체가 소유하지 못한 에너지는 후천적 경험을 통해 충전하면 되고, 혹여나 후천적 경험으로 얻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보편적 인식의 기운을 빌리면 된다. 그 반대 역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서 시작된 인식은 사회의 힘이 되기도, 개인의 힘이 되기도 한다. 정답은 없다. 단, 그 모든 힘은 독립적으로 가치 있게 존재할 뿐이며 어떤 것을 선택할지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몫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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