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ached to post
5. 엘 레알 데 라 하라 El Real de la jara ~ 모나스떼리오 Monasterio:20.4Km 레알 데 라 하라를 빠져나오며 세비야 주와 안녕해야 했다. 원래는 길이었으나 비 때문에 불어난 시냇물을 요리조리 건너니 엑스드레마두라Extremadura 주의 바다호즈 지역으로 넘어왔다. 주인 없는 오래된 성터는 새들의 집이 되었다. 아름다운 농장을 양 옆으로 십 킬로미터 쯤 걸었다. 풀밭에 앉아 햇살을 즐기는 팔자 좋은 소와 양떼를 보았다. 봄의 들꽃들이 쉼 없이 펼쳐졌다. 소가 풀을 뜯어 씹다가 나를 보고 멈추는 모습과 한 무리의 소가 멀뚱히 나를 신기하게 한 참 바라 보는게 너무 웃겼다. 십오 킬로미터 지점에서 안내책자에서 말한 두개의 고속도로, N-630와 A-66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비가 쏟아 붓기 시작했다. 레스토랑에 들러 까페 콘 레체Café con leche 와 또르띠야 데 파따따Tortilla de patata를 시켜 먹고 (한 동안 점심은 야외에서만 먹어서 오늘은 너무 반가운 식당이었다) 비가 그치길 기다렸으나 야속하게도 비더 더 세차게 내렸다. 우비를 쓰고 길을 가는데, 고속도로 교차로를 도로의 쥐처럼 요리조리 살피며 건너야 했다. 그러고 이어진 길은 고속도로 갓길인데 짧은 구간이었지만 좀 위험해 보였다. 혹여나 순례자가 길을 잃을까 깨알같이 화살표를 많이 표시해 둬서 간간이 나를 빵 웃게 만들었던 세비야 주와 좀 다르게 무심한 까미노의 노란 화살표가 듬성듬성 보였다. 중간에 길에서 처음으로 다른 순례자를 만났는데 별 반가워하는 기색도 없이 속도를 내어 내 옆을 지나가버렸다. 그 뒤에 만난 네덜란드 여자도 미친 속력으로 나를 앞서 갔다. 꽃도 나무도 둘러보지 않고 그렇게 빠른 속도로만 가버렸다. 그들은 오늘 거의 사십 킬로미터를 걷는 듯 했다. 나의 이틀 치 거리를 그들은 하루 만에 걸어도 나는 하나도 그들이 부럽지 않다. 각자의 방식과 속도니까. 비를 맞으며 오르막길을 다 오르니 금세 오늘의 목적지인 모나스떼리오가 얼핏 보인다. 나는 오늘의 목적지가 보이는 마을 초입의 언덕배기 공원에서 한참 쉬다가 왔다. 마을 입구에는 돼지 넓적다리 형상을 한 모나스떼리오의 하몽Jamón 철제 조각에서 웃음이 터졌다. 게다가 조금 더 걸어가니 급기야 하몽 박물관 나왔다. 오늘따라 기운이 남아돌았는지 구경하기로 결심하고 하몽 박물관에 들어갔다. 매우 친절한 직원 덕에 자료도 받고 관람도 했다. 박물관에는 하몽 만드는 과정이 사진과 영상으로 잘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너무 리얼한 돼지 목을 따서 잡는 장면과 그 고기로 하몽과 초리소를 만드는 영상을 보니 좀 안쓰러웠다. 모나스떼리오의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한국인들이 쓴 반가운 방명록을 보고 호스피탈레로에게 살짝 무슨 뜻인지 알려주었다. 약국에서 난리난 발을 감쌀 밴드를 사고, 장을 보고, 씻고 밥을 먹고 내일을 준비한다. 오늘 걸으며 생각한 건, 누구나 최선을 살고 있다는 거! 누구나 이게 아니라고 하는 순간에도 그 당시엔 최선의 것을 늘 최선의 것을 찾는 다는 것. 그래서 하루 한 시간 한 순간 최선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최고가 아니라고 실망하지 말자는 것이다. 까미노가 주는 최고의 선물은 깊은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순례를 하는 것은 자연 속에 두발로 걷는 행위가 바쁘고 번잡한 상황에서 지나친 것들의 심연, 내자신의 심연을 탐색할 환경을 제공해 준다. 그래서 나는 아마도 외롭지만 혼자 걷는 까미노가 좋다. 내일도 부엔 까미노!
콘텐츠를 더 읽고 싶다면?
원티드에 가입해 주세요.
로그인 후 모든 글을 볼 수 있습니다.
댓글 1

어떤 고속도로를 건너야 했는지, 어떤 레스토랑에서 어떤 메뉴를 먹었는지, 혹은 어떤 박물관에서 무엇을 봤는지 등 자세하게 기록하셨군요! 그리고 마지막에 말씀하신 '누구나 최선을 살고 있다는 거'라는 감명 깊게 받아가네요. 또한 하루의 생활을 하면서 느낀 생각들을 솔직하게 표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행의 순간 순간을 저희와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도 부엔 까미노!
답글 달기